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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구약 여행37: 나는 유배자들과 함께 크바르 강 가에 있다(에제 1,1)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5-08-29 조회수5,203 추천수1

[안소근 수녀와 떠나는 구약 여행] (37) “나는 유배자들과 함께 크바르 강 가에 있다”(에제 1,1)


하느님이 떠난 이유는 그들에게 있었다

 

 

아시리아 커룹, 부조.

 

 

성경을 공부하고 싶은데 지리를 도무지 파악할 수 없다든가, 아니면 역사를 전혀 이해할 수 없다든가 하는 경우들이 있지요. 특히 연대표에 약하신 분들에게 에제키엘서는 고마운 책입니다. 군데군데 예언자가 언제 이러한 말을 했는지 정확히 표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연대들이 상당히 중요합니다. 구약 성경에서 단 하나의 연대만 외우려고 한다면 반드시 외어야 할 연대인 기원전 587년, 예루살렘 함락과 성전의 파괴, 바빌론 유배를 중간에 끼고 있어서 그렇습니다. 에제키엘은 대략 기원전 592년부터 571년 정도까지 활동합니다. 

 

유배 전 예언자들은 나름대로 특징이 있고, 유배 중-유배 후 예언자들은 또 나름대로 특징이 있습니다. 그런데 에제키엘은 한 사람의 예언자가 두 시대에 걸쳐 활동하면서, 587년 이전에 선포한 내용과 그 후에 선포한 내용이 확연히 차이가 납니다. 대략 말한다면 유배 전 예언자들은 심판을 선고하고, 유배 중-유배 후 예언자들은 구원을 선포하지요. 그런데 에제키엘은 한 사람이 그 두 가지 모두를 선포합니다. 1-24장에서는 주로 심판을 선고하고, 이민족들에 관한 예언이 나온 다음(25-32장) 마지막 33-48장에서는 구원을 선포합니다. 심판과 구원의 분기점이 되는 것이 유배입니다. 오늘은 그 가운데 심판을 선고한 부분을 읽어 보겠습니다.

 

 

하느님의 집이 무너질 수 있다는 말인가? 

 

정확히 말한다면, 기원전 587년 예루살렘이 완전히 함락되고 왕국이 멸망하기 10년 전인 기원전 597년에 이미 제1차 유배가 있었습니다. 당시의 임금이던 여호야킨을 비롯하여 중요한 인물들이 이때에 유배를 갔고, 사제였던 에제키엘도 바빌론으로 갔습니다. 그래서 에제키엘서 1장 1절에서 에제키엘은 “유배자들과 함께 크바르 강 가에” 있는 것입니다. 에제키엘은 유배를 가 있는 그곳에서 예언자로 부르심을 받습니다(에제 1-3장). 

 

하지만 이 시기에 아직 사람들은 유배라는 문제를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아직은 나라가 멸망한 것도 아니었고, 처음 유배를 갔던 이들은 이 유배가 오래가지 않을 것이며 곧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에제키엘은 그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유배 전 예언자의 특징, 심판 선고이지요. 그는 이미 있었던 것보다 더 큰 재앙이 다가오고 있다고 선언합니다.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말리라고, 성전까지도 파괴되는 일이 일어나리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그 말을 믿지 않습니다. 어떻게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질 수 있다는 말인가? 성전은 하느님께서 계시는 곳, 하느님의 집이 아닌가? 아무리 외적이 쳐들어와도, 그 성전 안에 머무시는 하느님이 우리를 지켜 주시는 것이 아니던가? 만일 바빌론군이 쳐들어와 성전을 무너뜨릴 수 있다면, 바빌론의 신 마르둑이 우리의 하느님 야훼보다 강하다는 뜻이 되지 않는가? 

 

이러한 질문들은 나름대로 근거도 있었습니다. 2장에서 에제키엘을 예언자로 부르시면서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이스라엘이 마음이 완고해서 예언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은 것도 있지만(에제 2,4 참조), 신학적으로도 예루살렘의 함락이란 설명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사야 시절에는 예루살렘을 지키시는 하느님을 믿어야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요? 아시리아의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공격했을 때에는, 하느님의 천사가 하룻밤 사이에 아시리아군 십팔만 오천 명을 친 일도 있지 않았던가요? 이 시기에 에제키엘이 한 일은, “어떻게 예루살렘이 함락될 수 있는가?”라는 신학적 질문에 대답한 것이었습니다. 

 

8장에서 에제키엘은 환시를 봅니다. 바빌론에 유배가 있는 에제키엘에게 하느님은 예루살렘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보게 하십니다. 그가 본 장면은 예루살렘에서 사람들이 우상을 숭배하고 있는 모습들입니다. 한 장면 한 장면을 보여주실 때마다 하느님은 “너는 더 역겨운 짓들을 보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은 주님께 등을 돌리고 온갖 종류의 우상들을 숭배하고 있고, 심지어 성전에서도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이스라엘이 당신을 성전에서 떠나가게 하려고 그런 짓들을 하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결국 하느님은 성전을 떠나기로 작정하시고, 10장에서는 주님의 영광이 성전 동쪽 문으로 나와 그 문밖에 대기하고 있던 커룹들을 타고 성전을 떠나십니다. 이제 성전에는 하느님이 계시지 않습니다.

 

 

성전이 무너지기 전에 떠나신 하느님 

 

그렇다면 예루살렘 성전이 함락되는 것은, 바빌론군이 성전을 공격할 때 하느님이 그들보다 약해서 밀려나시는 것이 아닙니다. 바빌론군이 오기 전에 하느님은 먼저 성전을 떠나셨고, 그 이유는 이스라엘의 우상 숭배에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예루살렘이 함락될 수 있는가?”에 대한 에제키엘 예언자의 대답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진 원인은 하느님의 무력함에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원인은 이스라엘의 우상 숭배에 있습니다. 그들이 하느님을 성전에서 떠나시게 했고, 그래서 바빌론군이 성전을 불태울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바빌론 유배는 구약 시대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치명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다윗 왕조가 무너지고 성전이 불타 없어진다는 것은, 이스라엘에게는 그들이 딛고 서 있는 땅이 꺼지는 것과 같은 사태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느님이 성전을 지킬 힘이 없으셨기 때문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하느님으로 하여금 그들을 떠나갈 수밖에 없게 만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거룩하신 하느님은 우상을 숭배하는 이들과 함께 머물 수 없으십니다.

 

[평화신문, 2015년 8월 30일,  안소근 수녀(성 도미니코 선교수녀회, 대전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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