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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한나의 기도(1사무 1,9-20)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9-07-16 조회수3,979 추천수2

[부르심에 응답한 사람들] 한나의 기도(1사무 1,9-20)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정착한 다음부터 왕정이 탄생하기까지 이백여 년은 혼란스러운 판관시대였다. 이 시대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민족이 침범할 때에만 열두 부족의 원로들이 모여 임시 지도자인 판관을 뽑아 난국에 대처하였다. 그러나 이런 느슨한 부족 동맹으로는 평소 강력한 군대를 길러두었다가 한 임금의 지휘 아래 일사분란하게 전쟁을 치르던 주변 민족들과 겨룰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여러 가지 폐단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면서도 왕정제도의 도입을 서두르게 되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마지막 판관으로, 이스라엘의 왕정을 탄생시킨 위대한 인물이었다. 사울과 다윗이 그의 손을 거쳐 기름부음을 받고 성별(聖別)되었다. 다음은 그를 낳아준 어머니 한나의 이야기이다.

 

1 : 9 실로에서 음식을 먹고 마신 뒤에 한나가 일어섰다. 그때 엘리 사제는 주님의 성전 문설주 곁에 있는 의자에 앉아있었다. 10 한나는 마음이 쓰라려 흐느껴 울면서 주님께 기도하였다. 11 그는 서원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만군의 주님, 이 여종의 가련한 모습을 눈여겨보시고 저를 기억하신다면, 그리하여 당신 여종을 잊지 않으시고 당신 여종에게 아들 하나만 허락해 주신다면, 그 아이를 한평생 주님께 바치고 그 아이의 머리에 면도칼을 대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12 한나가 주님 앞에서 오래도록 기도하고 있는 동안에 엘리는 그의 입을 지켜보고 있었다. l3 한나는 속으로 빌고 있었으므로, 입술만 움직일 뿐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엘리는 그를 술취한 여자로 생각하고 14 그를 나무라며, “언제까지 이렇게 술에 취해있을 참이오? 술 좀 깨시오!” 하고 말하였다. 15 그러자 한나가 이렇게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나리!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닙니다. 저는 마음이 무거워 주님 앞에서 제 마음을 털어놓고 있었을 따름입니다. 16 그러니 당신 여종을 쓸모없는 여자로 여기지 말아주십시오. 저는 너무 괴롭고 분해서 이제껏 하소연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l7 그러자 엘리가 “안심하고 돌아가시오.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당신이 드린 청을 들어주실 것이오” 하고 대답하였다. 18 한나는 “나리께서 당신 여종을 너그럽게 보아주시기 비랍니다.” 하고는 그 길로 가서 음식을 먹었다. 그의 얼굴이 더 이상 전과 같지 않았다.

 

19 다음날 아침, 그들은 일찍 일어나 주님께 예배를 드리고 라마에 있는 집으로 돌아갔다. 엘카나가 아내 한나와 한자리에 들자 주님께서는 한나를 기억해 주셨다. 20 때가 되자 한나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다. 한나는 “내가 주님께 청을 드려 얻었다.”고 하면서, 이이의 이름을 사무엘이라 지었다(구약성서 새 번역).

 

에브라임 사람 엘카나에게는 아내가 둘 있었다. ‘은총’이라는 뜻의 한나는 남편의 사랑을 받았으나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였다. 반면에 ‘진주’라는 뜻의 브닌나는 아이들을 여럿 두었으나 한나만큼 남편의 사랑을 받지는 못하였다.

 

그 시절 하느님의 집인 만남의 장막은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칠십 리 정도 떨어진 실로에 있었다. 하느님의 계약궤도 그곳에 안치되어 있었다. 해마다 엘카나는 온 가족을 데리고 실로에 있는 하느님의 집에 가서 ‘만군의 주님’께 제사를 드렸다. 제사가 끝나면, 엘카나는 가장으로서 제물로 바친 고기의 일부를 가족들에게 나누어주었는데, 한나에게는 자식이 없었기 때문에 한몫밖에 줄 수 없었다. 적수를 공격할 절호의 기회를 브닌나가 놓칠 리 없다. 자녀들 몫까지 합하여 여러 몫을 받은 브닌나는 적은 몫을 받아든 한나 앞에서 샐쭉거리고 거드름을 피워, 한나의 속을 뒤집어놓았다. 이렇게 브닌나는 제삿날이 돌아올 때마다 한나에게 평소 남편의 사랑을 빼앗긴 분풀이를 마음껏 해댔다.

 

모두들 축제 분위기에 휩싸여 먹고 마시고 춤추며 흥겨워하는데, 한나만이 슬픔에 젖어 울면서 아무것도 먹으려 하지 않았다. 엘카나는 이런 한나가 안쓰러워, “여보! 왜 먹지도 않고 울기만 하오. 당신에게 내가 아들 열보다 더 낫지 않소?” 하고 달랬다.

 

한나는 남편의 한결같은 사랑에 고마워하며 억지로 남편과 음식을 먹고 마신 다음, 만남의 장막으로 들어갔다. 쓰라린 마음을 부여안고 한나는 주님께 애원하였다.

 

“주님, 이 가련한 여종에게 아들 하나만 점지해 주십시오. 그러면 그 아이를 한평생 주님께 바치고 아이 머리에 면도칼을 대지 않겠습니다.”

 

면도칼로 머리를 밀지 않겠다는 약속은 삼손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아이를 주님께 거룩한 몸으로 바치겠다는 뜻이다. 나지르인들의 서약에도 평생 또는 일정한 기간 동안 머리를 자르지 않는다는 규정이 있다.

 

실로의 주임 사제 엘리는 한나가 주님 앞에서 기도하는 모습을 문설주 곁에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오래도록 흐트러진 자세로 흐느껴 울며 입술만 움직이는 한나를 보고 엘리는 그녀를 술취한 여자로 오해하였다.

 

“이봐요! 언제까지 이렇게 주님 앞에서 술주정을 할 셈이오? 그만 일어나시오.”

 

“나리! 잘못 아셨어요. 저는 술에 취하지 않았어요. 다만 마음이 무겁고 영혼이 견디기 힘든 고통에 짓눌려 주님께 하소연하고 있을 따름이에요. 저는 지금 너무 괴롭고 분하답니다.”

 

“상심말고 돌아가시오.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반드시 당신의 하소연을 들어주실 것이오.”

 

엘리 사제의 말을 듣고 힘을 얻은 한나는 그 길로 돌아가 음식을 먹고 기운을 차렸다. 한나가 밝은 얼굴로 집에 돌아와 남편과 잠자리에 드니, 주님께서 한나를 기억하시어 그 태를 열어주셨다. 주님께서 한나에게 그녀의 이름 그대로 ‘은총’을 내리신 것이다. 주님의 ‘은총(한나)’이 세상의 ‘진주(브닌나)’보다 더 소중하다는 사실이 드러난 순간이기도 하다. 한나는 아들을 낳자, ‘내가 주님께 청을 드려서 얻었다.’고 고마워하며 아이의 이름을 사무엘이라 지었다. 사무엘은 ‘주님께서 들어주셨다.’는 뜻이다.

 

한나는 아이가 젖을 뗄 때까지 데리고 있다가, 약속대로 아이를 하느님께 바치기 위하여 실로에 있는 하느님의 집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가져온 황소를 잡아 제물로 바치고 난 다음, 한나 일행은 아이를 엘리 사제에게 데려갔다.

 

“나리! 저를 기억하시는지요. 저는 나리가 지켜보는 가운데 주님께 아들 하나만 점지해 주시라고 간청하던 바로 그 여자입니다. 나리께서는 저를 술취한 여자로 오해하셨지요. 그런데 주님께서 제 청을 들어주시어 이 아이를 얻었습니다. 저도 그때 약속한 대로 이 아이를 주님께 바칩니다. 이제 이 아이를 제 품에서 떠나보내 평생 주님께 맡겨드리니, 받아주십시오.”

 

한나는 주님께 받은 은총에 고마워하며 그 은총의 열매를 다시 주님께 돌려드림으로써 약속을 지켰다. 이 여인은 은총의 결과인 자식한테 인간적으로 애착하지 않고 자신이 은총을 입은 사실 그 자체만으로 만족하였다. 아이를 낳지 못해 부끄럽고 원망스럽던 자신의 처지를 주님께서 돌아보심에 감사하며 한나는 마리아의 찬가(마니피캇)와 맥을 같이하는 노래를 이렇게 읊었다(1사무 2,1-10에서 발췌).

 

제 마음이 주님 안에서 기뻐 뛰고

제 이마가 주님 안에서 높이 들립니다.

아이 못 낳던 여자는 일곱을 낳고

아들 많은 여자는 홀로 시들어간다.

주님께서는 가난하게도 가멸게도 하시는 분,

낮추기도 높이기도 하신다.

주님께서는 당신 임금에게 힘을 주시고

기름부음 받은 이의 뿔을 높이신다.

 

가난한 이는 불행과 고통 한가운데에서 가장 든든한 후원자이신 하느님께 의지하고 호소한다. 그분께서 은총을 내려주시면, 가난한 이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것을 소중히 받아들인다. 그러나 은총의 결과를 자기 것으로 삼지 않고 그 결과를 하느님께 다시 돌려드린다. 그리고 그는 자기의 뒤바뀐 운명을 주님께 대한 찬미의 노래로 엮어 모든 이에게 들려준다. 위대한 구원역사의 바탕에는 이런 이의 청초한 삶이 한폭의 동양화처럼 조용히 자리잡혀 있다.

 

* 정태현 갈리스도 신부는 광주 가톨릭 대학교를 졸업하고 벨기에 루벵대학에서 신약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하느님과 함께 걸으며”, “모든 이에게 평화의 복음을”이 있고, 역서로는 “성서시대의 보물들” 등이 있다. 지금 주교회의 성서위원회 총무(사도직)를 맡고 있다.

 

[경향잡지, 1998년 1월호, 정태현 갈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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