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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사야 No29 성서구약성서해설 종류예언서
이사야는 어떤 성서인가요?

이사야는 어떤 성서인가요?

이 성서는 예언자 이사야의 말을 모아 놓은 것이라 하여 그 이름을 따서 “이사야”라 불렀어요. 이사야란 말은 ‘야훼께서 구원하시다’ 또는 ‘야훼는 구원이시다’라는 뜻이지요. 예언서 중에서 가장 길고 분량도 가장 많아 대예언서라 일컬어지죠.

이사야

 누가 썼나요?

물론 예언자 이사야이지요. 그가 직접 책을 쓰지는 않았지만 그의 말을 적은 책이기에 그를 저자라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일찍이 이사야서의 문학양식이나 기술된 내용의 역사적 상황, 문체 등으로 미루어 보아 적어도 이사야서는 두 명 이상의 작품이라고 보았어요. 오늘날 이사야서는 크게 세 사람 이상의 공동작품이라 보아요. 즉 앞부분(1-39장)을 쓴 이사야, 가운데 부분(40-55장)을 쓴 제2 이사야, 끝부분(56-66장)을 쓴 제3 이사야가 그들이지요. 그렇지만 이름을 알 수 없는 두 번째 이사야와 세 번째 이사야 모두 이사야의 후계자로서 그의 정신과 지향을 따랐기에, 이사야를 하나의 통일된 작품으로 보고 있답니다.

 언제 쓰여졌나요?

쓴 사람이 셋이니까 쓰여진 시기도 각각 다르겠지요. 이사야는 유다의 요담, 아하즈, 히즈키야 왕이 재임하던 기원전 742년경부터 40여 년간 활동했어요. 제2 이사야는 바빌론 유배 기간 중에, 대략 바빌로니아가 멸망할 무렵인 기원전 550년에서 고레스 칙령(기원전 538년)이 내려지기까지 10여 년 동안 활약했어요. 제3 이사야는 유배에 돌아온 다음, 기원전 530-510년경에 일했구요. 이러한 여러 작품이 함께 편집되어 묶여진 때는 그 뒤인 기원전 4-3세기였어요.

 왜 썼나요?

이사야의 활동시기를 보면 유다가 바빌로니아에게 멸망당하기 전,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암담한 시기였어요. 이렇게 캄캄한 때에 하느님은 예언자 이사야를 불러 당신 백성들이 살아날 길을 알려주신거죠. 당시 지도층은 인간적 지혜를 써서 외세인 아시리아와 이집트에 빌붙어 살아나려고 했지만, 이사야는 이스라엘의 왕이신 거룩하신 야훼 하느님을 굳게 믿고 따르는 길만이 삶의 길임을 역설하지요. 하느님의 힘은 엄청나므로 그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게 해주신다고 일러주지요.

유다가 이사야의 말을 듣지 않아 결국 멸망당하고 유배당했을 때, 제2 이사야는 다시금 하느님의 구원과 새로운 창조와 출애굽을 선포하면서 희망을 가질 것을 호소해요. 귀환 후 참담한 현실에 힘 빠져 있는 유다인들에게 새 하늘 새 땅을 선포한 제3 이사야도 그런 믿음과 희망을 강조했구요.

결국 이사야는 하느님의 거룩하심과 그분의 도움을 신뢰하며 그분 말씀대로 사회정의를 지킬 때 구원이 임함을 알려준답니다. 또 하느님은 우리와 함께 계신 임마누엘 하느님이시고, 참된 메시아가 오시면 온 세상에 하느님의 평화와 정의가 가득 차고 그분의 영광이 빛나리라고 예언하여, 신약성서에 자주 인용되지요.

 <새김과 나눔>

벼랑 끝에 서 있는 조국의 현실 앞에서 이사야는 인간적 지혜 대신 하느님께 대한 신뢰를 강조했습니다. 삶의 고비에서 우리는 무엇을 선택하였는지 함께 의견을 나눠보십시오.

야훼께서 말씀하신다

(이사 1-27장)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이사 1,1-12,6)

하느님의 심판에서 살아 남을 사람들을 무엇에 비겨 말합니까?(6,13)

 맨 먼저 하느님의 백성으로 불린 유다가 우상을 섬기고 불의를 저지르며 형제들을 괴롭히는 죄악을 고발하고(1,2-31; 3,1-31), 그들이 회개하지 않을 경우 하느님의 심판이 임하리라고 예고해요(3,13-4,1; 5,1-30). 아울러 그들을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평화가 그들에게 임하리라는 희망의 메시지도 선포하지요(2,1-22; 4,2-6). 이러한 내용은 하느님의 백성답게 살아가라는 호소인 셈이죠.

한편 이사야는 놀라운 환시 중에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게 되어요. 하느님은 당신의 거룩하심을 무시하는 유다 백성에게 심판과 희망의 메시지를 선포할 예언자로 이사야를 택하여 그의 죄를 없애주신 거죠(6장). 우리가 미사 때마다 외치는 “거룩하시다”가 바로 여기서 비롯됩니다.

이사야가 활동할 당시 유다는 진퇴양난의 어려움에 처해 있었어요. 무자비한 나라 앗시리아가 노리고 있는 가운데, 시리아와 이스라엘 연합군이 함께 아시리아와 싸우지 않으면 침공하겠다고 을러댔습니다. 이 때 이사야는 그 어느 나라에도 의존하지 말고 오직 하느님께 굳건히 서라고 일러줍니다. 그러면 하느님께서 함께 계실 것(임마누엘)이라고 약속하지요. 그러나 아하즈 왕은 아시리아의 봉신이 될 것을 약속하며 이사야의 충고를 거절해요. 그래서 이사야는 유다와 주변 국가가 당할 재앙을 선포하며, 믿는 자에게 임할 하느님의 평화를 다시금 밝혀요(9,1-6; 11,1-12,6).

“너희가 굳게 믿지 아니하면 결코 굳건히 서지 못하리라”(7,9). “진정 하느님은 나의 구원이십니다. 내가 당신을 의지하니, 무서울 것이 없습니다. 야훼는 나의 힘, 나의 노래, 나의 구원이십니다”(12,2).

 이방 민족들에 대한 멸망의 예고(이사 13,1-23,18)

하느님께서 이방 민족들을 치시는 뜻은 어디에 있습니까?(19,22)

유다와 예루살렘을 위협했던 주변의 강대국들, 바빌로니아와 아시리아, 불레셋, 모압, 다마스커스와 에브라임, 이디오피아, 이집트 등이 멸망당하리라는 예언이 선포되어요. 그들이 자신들의 힘으로 약한 나라들을 괴롭히며 횡포를 부렸기 때문이죠. 지상에서는 그들의 힘이 강하여 누가 상대할 수 있을까 하지만, 하느님의 능력은 그보다 훨씬 강하여 그분이 “생각한 대로 반드시 되고 그분이 정한 대로 반드시 이루어집니다”(14,24). 따라서 그런 나라에 의지하거나 희망을 두지 말고 오로지 하느님만을 믿고 따라야 한다는 것이 다시금 강조된 것이죠.

 심판의 그 날이 오면(이사 24,1-27,13)

밤낮으로 당신께 신실한 이들을 돌보시는 하느님을 누구에 비깁니까?(27,3)

 이 대목은 흔히 ‘이사야의 묵시록’이라 불립니다. 세계를 정의로 심판하시는 하느님의 위력과 당신 백성을 돌보아주시고 지켜주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노래하고 있기 때문이죠. “죽음을 영원히 없애 버리시고 모든 사람의 얼굴에서 눈물을 닦아 주시는”(25,8) 하느님께서는 “마음이 한결같아 당신께 몸을 맡기는 그들을 번영과 평화로 지켜 주십니다"(26,3). 그렇기에 이사야는 혼란과 불안에 빠진 유다 백성들에게 “영원히 야훼를 믿고 의지하여라”(26,4)고 강력히 권고합니다.

용기를 내어라(이사 28-48장)

아! 네가 비참하게 되리라(이사 28,1-35,10)

이사야는 이스라엘이 구원받을 길을 무엇이라고 일러줍니까?(30,15)

 하느님께서는 이사야를 통해 계속해서 사마리아와 예루살렘 지도자들의 죄악을 고발하며 회개를 촉구하십니다. 그 당시 아시리아의 위협은 코앞에 당도했는데도 사람들이 그 사태의 심각성을 충분히 깨닫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웠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지도자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기보다 자꾸 이집트에 빌붙어 살 길을 찾으려고 했습니다. 그런 자세는 “군마에 희망을 걸고 많은 병거와 수많은 기병대를 믿는”(31,1) 일로서 “굽고 어긋난 것을 믿어 의지하려는”(30,12) 잘못된 행위지요.

하느님께서는 다시금 강대국의 멸망을 일러주시고 당신의 보살피심과 새롭게 설 정의의 나라에 대한 희망을 불어 넣어주십니다. 그분이 오시면 “소경은 눈을 뜨고 귀머거리는 귀가 열리리라. 절름발이는 사슴처럼 기뻐 뛰며 벙어리도 혀가 풀려 노래하리라”(35,5-6). 이미 여러분은 알고 계시죠? 언제 이런 일이 이루어졌는지. 누가 그런 일을 이루셨는지! 잘 모르시는 분들은 마태오 복음 11,4-5와 루가 복음 7,22을 읽어 보십시오.

 야훼여, 나를 구해주신 이는 당신(이사 36,1-39,8)

하느님께서는 히즈키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어떻게 하시겠다고 밝히십니까?(37,33-36)

 기원전 701년경 유다의 히즈키야 왕 재위 14년에 아시리아 왕 산헤립이 유다를 침공하였습니다. 이미 이스라엘을 멸망시켰을 뿐 아니라 주변 국가를 모두 제압해버린 아시리아의 위력은 엄청났죠. 그런 아시리아가 쳐들어와 유다의 주요 성읍들을 다 점령한 뒤 마지막 남은 예루살렘을 공격했습니다. 풍전등화, 절대절명의 위기였어요. 바로 이때 하느님께서는 히즈키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당신께서 보호해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있던 산헤립은 어느 날 갑자기 포위를 풀고 돌아가 버렸어요. 아시리아 궁정 내부에서 심각한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죠. 그러나 유다는 이를 만민의 하느님께서 계획하신 일로 믿고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히즈키야 왕은 자신을 구원하여 주시고 병을 고쳐주신 하느님께 감사와 찬양의 기도를 드렸죠. 우리도 신앙의 눈을 뜨고 바로 본다면, 세상사와 내 인생사 안에서 당신의 구원사업을 이뤄가시는 하느님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요?

 너희를 해방시켜 주리라(이사 40,1-48,22)

하느님께서 고레스에게 부여하신 사명은 무엇입니까?(44,28-45,6)

 마침내 억눌려 사는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시는 하느님의 고함이 누리에 퍼집니다. 모든 것을 지으신 창조주 하느님이시요,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느님께서는 새로 생긴 나라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을 당신의 도구를 택하시어 바빌로니아에 끌려와 있던 유다인들에게 광복의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이것은 “야훼밖에 다른 신이 없음을 해뜨는 곳에서 해지는 곳에까지 알리려는 것”(45,6)이었어요. 그분은 “정의를 세워 구원을 이루는 하느님이시니, 온 세상 모든 인간들아, 머리를 돌려 나에게로 와서 구원을 받아라”(46,21-22)고 초대하십니다. 그 초대의 말씀,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일이 먼저 그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체험한 하느님의 백성이 해야 할 선교이지요.

야훼의 구원이 횃불처럼

타오르기까지(이사 49-66장)

고난받는 야훼의 종의 노래(이사 49,1-55,13)

야훼의 종이 맞고 처형된 이유는 무엇입니까?(53,10-12)

 이사야서에는 야훼의 종이 부르는 노래가 네 편 나와요. 그런데 각 노래마다 종의 처지는 달라요. 첫번째 노래에서 종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 못하는 귀머거리와 소명 같은 이스라엘이지요(42,1-23). 두 번째 노래에서는 “지배자들의 기막힌 멸시를 받으며 종살이하는”(49,7) 유배된 이스라엘 백성이 종으로 소개되지요. 그런데 세 번째 노래(50,4-9)와 네 번째 노래(52,13-53,12)에서는 하느님의 뜻을 따르느라 고통받고 핍박받는 한 인물이 종으로 소개되어요. 그래서 그 종을 예언자 같은 한 개인으로 보기도 하고 야훼께 충실한 일단의 이스라엘 백성으로 풀기도 하지요.

여하튼 구약성서에서 야훼의 종의 정체는 분명치 않아요. 그래서 나중에 신약시대의 새로운 하느님의 백성들은 이 구절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하게 실현됨을 깨닫게 되었지요. 그분은 “자신의 생명을 속죄의 제물로 내놓았기”(53,10) 때문이죠.

이 대목에서는 야훼의 종의 노래 이외에 시온에 전하는 하느님의 위로와 충고, 희망의 메시지가 가득 담겨 있어요. “반가와라, 기쁜 소식을 안고 산등성이를 달려오는 저 발길이여. 평화가 왔다고 외치며 희소식을 전하는구나”(52,7). 그리하여 그분에게 “걸었던 희망이 하나도 어긋나지 않는 줄을”(49,23) 알게 해 주시죠. 우리가 하느님을 굳게 믿고 따르면, 하느님께서는 “산들이 밀려나고 언덕이 무너져도 나의 사랑은 결코 너를 떠나지 않는다”(54,10)고 보장해 주신답니다. “귀를 기울이고 나에게로 오너라. 나의 말을 들어라. 너희에게 생기가 솟으리라”(55,3).

 일어나 비추어라. 너의 빛이 왔다

(이사 56,1-66,24)

예언자가 전할 기쁜 소식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61,1-9; 참조 루가 4,16-21)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유배에서 귀환시켜주셨지만, 아직도 저만 잘 되겠다고 욕심부리며 우상을 섬기는 이들이 여전히 있었어요(56,9-57,13). 형식적으로 하느님께 제의를 드리면서도 공평은 뒤로 제쳐 놓았고 정의는 얼씬못하게 하는 무리들이 있었지요(59,1-15). 그렇지만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 외에 야훼께로 개종한 외국인이나 고자 같은 불구자도 모두 당신 백성으로 모아들이겠다고 약속하셔요. 그렇게 모인 하느님의 백성은 바른 제의로 그분을 섬길 것을 요구받죠. 그분이 기뻐하시는 단식은 “네가 먹을 것을 굶주린 이에게 나눠주는 것, 떠돌며 고생하는 사람을 집에 맞아 들이고 헐벗은 사람을 입혀주는”(58,6-7) 실제적인 사랑의 나눔이지요.

비록 현실은 어둡고 힘들어도 언젠가 하느님은 만방이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를 찬양하려고”(60,3-16) 모여들게 하시고, 정의와 평화로 다스려지는 새 세상을 이루시겠다고 약속하셔요. 그것을 위해 “우리 하느님의 봉사자”(61,6)로 불린 하느님의 백성은 “억눌린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면서”(61,1), 그분이 오실 “큰 길을 닦고 또 닦아야”(62,10) 합니다. 그분이 이룰 새 하늘과 새 땅은 “늑대와 어린 양이 함께 풀을 뜯고”(65,25) “다시는 울음소리가 나지 않겠고 부르짖는 소리도 들리지 아니하는”(65,19) 평화의 세상이죠. 왜 신약성서에서 이사야서를 자주 인용하였는지, 대림절의 독서가 왜 이사야서인지 이제는 잘 알게 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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