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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아모스 | No37 | 성서구약성서해설 | 종류예언서 | |||||
누가 썼나요? 예언자 아모스가 전한 하느님의 말씀이 이 성서의 주된 내용이지요. 아모스란 이름의 뜻은 ‘주님을 짊어진 사람’입니다. 그는 본래 남 유다 사람으로 “목자요 돌무화과를 가꾸는 농부”(아모 7,14)였습니다. 그렇지만 그가 가난하고 무식한 농부는 아니고 상당한 자기 재산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더구나 주변의 국제정세나 유다와 이스라엘의 국내 사정에 밝은 걸 보면, 그는 꽤 많이 배운 사람이었으리라 여겨집니다. 아모스는 본래 예언자 가문에 속하지도, 왕실 예언자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북 이스라엘의 사마리아와 베델에 가서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의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말씀을 전한 뒤, 그는 남 유다로 추방되었다고 여겨집니다. 구약의 위경들이 전하는 전설에는 아모스가 베델의 사제 아마니야의 아들에게 살해되었다, 또는 남 유다의 왕 우찌야에게 살해되었다고 합니다. 특히 아모스는 하느님의 현존과 정의를 크게 강조하였기에 ‘정의의 예언자’란 별명을 얻기도 했지요. 언제 쓰여졌나요? 예언자 아모스가 활동한 때는 북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2세(기원전 786-746) 시절로서 대략 기원전 760년경으로 추정됩니다. 아모스의 예언활동이 그친 얼마 뒤에 그와 가까운 사람들이 아모스가 선포한 신탁들을 모우고, 또 자신이 직접 밝힌 자서전적인 내용(7,1-9; 8,1-3; 9,1-4)을 덧붙여 아모스서의 골격이 이루었을 것입니다. 그의 예언은 남 유다에서도 계속 살아 움직여서 유다에 관한 내용이 뒷부분에 덧붙여졌지요. 아마 최종적인 아모스서의 형태는 다른 예언서들처럼 유배기나 그 이후에 이루어졌다고 추정합니다. 왜 쓰여졌나요? 아모스가 예언자로 등장한 때는 북 이스라엘의 전성기가 저물어갈 무렵이었습니다. 주변 강대국들의 세력이 위축된 탓에 기를 펴고 살면서 상업으로 부를 축적한 북 이스라엘의 부유층은 가난한 동족을 괴롭히는 불의를 자행하며, 자만과 향락 속에 빠져 안일하게 살고 있었지요. 그러면서도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하느님께 선택받았으므로 그분의 보호를 받아 아무 일도 당하지 않으리라는 믿음의 환상을 지니고, 자기식의 예배행위에만 열중하고 있었지요. 이렇게 태평스레 있는 백성들에게 아모스는 무서울 정도로 엄하고 가혹한 하느님의 심판을 선포합니다. 이 심판은 그들의 잘못에 대한 처벌을 넘어, 하느님을 잊고 사는 사람들에게 하느님은 실제로 계시며 그분은 정의를 원하신다는 것을 분명히 일깨워주는 수단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자기 중심적인 생활에서 하느님 중심적인 생활로 되돌아갈 것을 강하게 일러준 것이죠. <새김과 나눔> 모든 일이 순탄하게 진행될 때, 우리는 별 문제가 없다고 여기며 현실에 안주하기 쉽습니다. 아모스의 예언은 불과 몇십 년이 지나지 않아 실현되었습니다. 나는 지금 어떻게 하느님의 현존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살고 싶으냐? 야훼를 찾아라 (아모 1-9장) 아모스서는 9장인데, 내용에 따라 세 부분으로 나눠 볼 수 있습니다. 나 야훼가 선고한다(아모 1,1-2,16) 하느님께서 심판을 선고하신 나라는 모두 몇 나라입니까?(2,21-24) 하느님께서 외치시면 가르멜 산마루의 푸른 초원이 말라버릴 정도로, 말씀의 힘은 살아 있고 대단합니다. 이제 그 하느님께서 다마스커스, 불레셋 등 여러 민족의 죄상을 드러내며 그들에게 멸망을 선고합니다. 그들의 죄는 다른 민족 사람들을 마구 다루고 죽인 잘못입니다. 그 누구라도 형제를 괴롭히고 생명을 짓밝는 자는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을 욕보이는 짓입니다. 유다와 이스라엘 역시 죄없는 사람을 괴롭히고 우상을 섬겨 하느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더럽힌 잘못을 범했다고 고발되죠. 그들은 자신들의 전존재를 하느님께 맡겨야 하는 하느님의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말씀과 규정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아 심판을 받게 된 것이에요. 네 하느님과 만날 채비를 하여라(아모 3,1-6,12) 아모스가 하느님을 찬미하는 두 가지 송가를 크게 읽어 보십시오(4,13; 5,9-8) 이제 본격적으로 이스라엘의 죄를 고발하는 아모스의 외침이 터져 나옵니다. 아모스는 자신이 원하거나 자의 적인 판단에 따라 예언자가 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에 붙잡혀 순종하는 것임을 밝힙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수도인 사마리아의 왕실과 부유한 세도가와 그들의 귀부인들이 저지르는 불의를 규탄하며 멸망을 선고합니다. 그들은 하느님과 다른 형제들을 자기 욕망 충족의 대상으로 삼아 무시하고 괴롭히며, 오직 자기 중심적으로 허영심과 자만심에 빠져 살아가고 있을 따름입니다. 그들도 성소에서 하느님께 제물을 드리고 십일조를 봉헌하며 감사예물을 끊임없이 바치지만, 아모스는 이 것 역시 살아 계신 하느님께 대한 깊은 경외심과 순종함이 없는 자기 기만적인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합니다. 그렇기에 결국 하느님과 떨어져 죽음의 길을 가는 그들에게, 생명의 원천이신 하느님께 돌아와 살 길을 찾으라고 부르짖습니다. 다시는 뿌리뽑히지 않으리라(아모 7,1-9,15) 아모스가 본 다섯 가지 환시의 내용과 뜻은 무엇입니까?(7,1-9; 8,1-3; 9,1-4)) 아모스가 본 환시들은 심판의 말씀을 한층 더 생생하게보완해 줍니다. 그러나 베델의 사제 아마지야는 그를 추방하여 그 말씀을 무시하려고 하죠. 하지만 먹을 양식은 넘쳐도 참된 하느님의 말씀에 굶주리는 처지는 외적인 불행보다 더 심한 내적인 고통이요 심판입니다. 결국 아모스가 선포하는 요점은 하느님을 무슨 안전장치 쯤으로 여기고 안일하게 살아가는 이들에게, 참되고 결정적인 힘이신 하느님의 실재를 깨우쳐주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나 중심에서 하느님 중심으로 돌아가(회개하여) 하느님만을 유일한 주님으로 섬기고 그분에게서 비롯되는 형제들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삶을 살 때, 그분께서 약속하신 구원이 오리라는 선포랍니다. 누구든 하느님과 함께 있으면 살고 떨어지면 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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