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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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요나 No39 성서구약성서해설 종류예언서
요나는 어떤 책인가요?

요나는 어떤 책인가요?

요나란 성서 이름은? 요나는 히브리어 성서에서는 다섯번째에, 그리스어 성서에서는 여섯번째에 나옵니다. 그런데 몇 번째에 나오느냐에 관계없이 언제나 ‘오바디야’ 다음에 나와요. 니느웨에 가서 말씀을 전하는 요나서의 내용이 “야훼께서 만방에 전령을 보내시어 하시는 말씀”(오바 1,1)과 잘 어울리기 때문이지요.  요나는 12 소예언서 중의 하나이지만, 다른 예언서와는 많이 달라요. 예언서는 보통 하느님께서 그 예언자를 통해 들려 주시는 말씀이 상당 부분을 차지합니다. 예언자들의 행적도 간간히 들어 있긴 하지만요. 그런데 요나가 선포한 하느님의 말씀은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는 잿더미가 된다”(3,4)는 한 마디뿐이어요. 하지만 하느님께서 전하시는 뜻은 말만으로 한정되지는 않지요. 오히려 삶으로 드러내는 하느님의 뜻이 더 큰 힘을 발휘할 때가 많으니까요. 대부분의 책 내용이 요나의 삶에 관한 것이라서, 책 이름도 요나라고 했답니다.

요나

 

누가 언제 썼나요?

다른 예언서와는 달리 어느 왕 시절에 활동하였다는 기록이 전혀 나타나 있지 않아서, 예전에는 여로보암 2세(기원전 787-747) 시절에 활약한 예언자 요나(2열왕 14,25)와 동일인물로 여겼지요. 그래서 12소예언서 묶음에 들어갈 수 있었고, 그 안에서도 연대적으로 보아 중간에 위치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요나가 예언자라는 말이 전혀 나오지 않는 것을 비롯하여 사용된 문체로 보아 여로보암 시대의 작품으로 볼 수가 없게 되었어요. 더군다나 본문 중에 “니느웨는 …… 곳이었다”(3,3)로 언급되어 있는 것을 보면, 니느웨가 이미 멸망한 기원전 612년 이후에 요나서가 쓰여졌으리라는 것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으니까요. 누가 썼는지는 알 수 없지만, 기원전 6-4세기경에 쓰여졌을 것이라고 보아요.

왜 썼나요?

요나는 자기 민족은 하느님께서 특별히 선택하신 백성이라서 하느님의 사랑과 구원의 은총을 누릴 수 있지만, 다른 민족은 그럴 수 없다는 배타적이고 편협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유다인들의 시야를 트여주기 위해서 쓰여졌어요. 그래서 첫 장면서부터 야훼를 공경하는 히브리 사람 요나는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도망가는 모습을 보여주지요. 반면에 북왕국 이스라엘을 멸망한 아시리아의 수도 니느웨에 살던 이방인들은 요나가 전하는 하느님의 말씀에 곧바로 단식을 선포하며 왕에서부터 짐승에 이르기까지 베옷을 입고는 하느님께 탄원하는 경건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마음을 고쳐 먹고 행실을 바꾸기로 한 니느웨 주민에게 징벌을 내리실 수는 없지요. 하지만 요나는 여전히 징벌만을 요구하는 편협하고 옹졸한 태도를 보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편협한 선민의식에 사로잡혀 이웃 민족을 배척하는 것이 과연 합당하느냐는 물음을 제기하고자 쓰여졌답니다.

<새김과 나눔>

우리는 하느님을 믿고 따르는 그리스도인임을 자처하면서도 실제 행동은 그렇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느 때 누구에게 그런 행동을 했는지 한 번 생각해 보세요.

니느웨로 가서 외쳐라

야훼의 눈앞을 벗어날 셈으로(요나 1,1-16)

요나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어떤 사람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까?(1,9)

요나가 니느웨에 가서 그들의 죄악이 하늘에 사무쳤다고 외치라는 하느님의 말씀을 받고는 하느님의 눈앞에서 벗어나려고 다르싯(= 스페인)으로 가는 배를 타요. 바다에 풍랑이 일자 모든 뱃사공이 짐을 바다에 던지면서까지 살아남으려는 노력을 하는데, 요나는 오히려 배 밑창에 내려가 잠들어 버립니다. 하느님의 일에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 인간의 일에도 무관심해지는 법이죠.

이렇게 눈앞의 현실을 보지 않고 자기 안에만 숨어드는 요나를 깨운 이는 바로 함께 배를 탄 선장이었습니다. 제비를 뽑은 결과 요나의 잘못 때문에 풍랑이 일게 되었음이 확실히 밝혀지게 되었죠. 뱃사공들은 달리 방도가 없어 마침내 요나를 바다에 집어 던지게 되었는데, 놀랍게도 바다가 잔잔해지는 것을 보고 야훼 하느님께 제물을 잡아 바쳐요.

물고기 뱃속에서 기도를(요나 2,1-10)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몇 일을 보내죠?(2,1)

바다에 떨어진 요나는 큰 물고기에게 삼켜져 컴컴한 뱃속에서 사흘을 지내면서 하느님께 기도를 드려요. 그 기도를 듣고 하느님께서 요나를 물고기 뱃속에서 꺼내 주셨지요. 하느님을 떠나 사는 생활은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숨이 막히고 죽음만을 느낄 뿐이지만, 정신이 가물가물거리는 데도 야훼님을 잊지 않고 빌면 주님께서 다시 살려주신다고 찬미 노래를 불러요.

니느웨에 말씀을 선포하니(요나 3,1-10)

요나가 니느웨에서 선포한 말씀이 뭐죠?(3,4)

물고기 뱃속에서 사흘만에 극적으로 살아돌아온 체험을 한 요나에게 하느님의 말씀이 다시 내려요. 이번에는 곧바로 길을 떠나 니느웨로 가서 사십 일 후에 재앙이 내릴 것이라고 선포하지요. 그런데 이 말씀을 듣고 니느웨 사람들은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 할 것 없이 모두 굵은 베옷을 입고 단식해요. 심지어 니느웨 임금이하느님께 간절히 기도하라는 칙령까지 내려요. 이렇게 온 국민이 합심해서 나쁜 행실을 뉘우치는데, 하느님께서 재앙을 내리실 리가 없지요.

사랑이 한없으신 하느님(요나 4,1-11)

요나가 화난 이유를 짧게 이야기해 보세요(4,2-3).

하느님께서 니느웨에 내릴 재앙을 거두셨다는 것을 알아차린 요나는 화가 치밀어 하느님은 애처롭고 불쌍한 것을 그냥 보아 넘기지 못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왜 몰랐겠느냐면서, 이럴 바에는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고 투정을 부려요. 앞으로 니느웨가 어떻게 될 건지 두고 보겠다며 초막을 치는 요나의 머리 위로, 하느님은 아주까리가 자라나게 해서 더위를 막아주게 한 뒤에, 그 다음날에 말라 죽게 만들어요. 그리고는 아주까리가 죽었다고 아까워 하는 요나에게 하느님께서는 어린이만 해도 십이만이나 되는 니느웨를 어찌 아끼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일깨워 줍니다.

<새김과 나눔>

하느님으로부터 아무리 벗어나려고 해보아도, 결국에는 하느님 품에 다시 돌아오고야 마는 체험을 때때로 하게 됩니다. 우리는 언제 하느님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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