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비교

성서해설 내용
이전글 미가
다음글 하바꾹
제목 나훔 No41 성서구약성서해설 종류예언서
나훔은 어떤 책인가요?

나훔은 어떤 책인가요?

나훔은 12 소예언서 중에서 일곱번째로 나오는 성서로, 예언자 ‘나훔’이 하느님의 말씀을 전한 책이라, 그 이름을 따서 붙여졌어요. 나훔은 ‘위로 내지 연민’이라는 뜻이에요. 대제국 아시리아에 짓눌려 고통을 겪는 유다인들이, 니느웨가 멸망하리라는 나훔의 예언에서 하느님의 위로와 연민을 느낄 수 있었을 거에요.

 누가 언제 썼나요?

“엘코스 사람 나훔이 니느웨가 받을 벌을 내다보고 적은 책”(1,1)이라는 내용으로 보아, 나훔 예언자가 활동하던 시기에 쓰여졌음을 알 수 있어요. 나훔이 예언자로 활동하던 때에는 아시리아의 수도 니느웨가 아직 건재해 있었다는 것도 알 수 있구요. 니느웨가 멸망한 직후에 쓰여졌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겠지만, 학자들은 대부분 메대와 바빌로니아 연합군의 공격을 받아 니느웨가 함락당하던 기원전 612년 이전에 나훔서가 쓰여졌을 거라고 보아요.

그리고 본문에 기원전 663년에 있었던 이집트의 수도 데베스(노 아몬)의 약탈 장면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3,8-10), 집필연대가 아무리 빨라도 기원전 663년을 넘지 못할 것은 분명해요. 따라서 기원전 663-612년 사이에 나훔서가 집필되었다고 포괄적으로는 말할 수 있지만, 더 정확한 연대를 밝히기는 어려워요.

학자들 중에는 압제자 아시리아에 대항하는 구심축이 된 나보폴라살이 바빌론 왕으로 즉위한 625년경이라고 조심스럽게 추정하기도 하고, 니느웨가 멸망한 612년에 근접한 연대를 내세우는 사람도 있답니다.

 왜 썼나요?

2세기 가량 시리아와 팔레스티나에 큰 영향력을 행사해 온 대제국 아시리아는 기원전 7세기에 접어들면서 약해지기 시작했어요. 아시리아 최후의 위대한 통치자 아슈르바니팔이 기원전 626년에 죽고, 갈대아인 나보폴라살이 기원전 625년에 바빌론 왕으로 즉위함에 따라, 지금까지 아시리아 중심으로 이루어진 국제정세가 재편될 수밖에 없었어요. 그동안 여러 나라를 잔인하게 정복하고 엄격하게 다스려 온 정책 때문에 아시리아를 극도로 미워해 온 피정복 민족들은, 아시리아와 맞서 싸우면서 새롭게 일어나는 바빌론에게서 자기 민족의 해방을 꿈꾸어 볼 수 있었습니다. 도저히 무찌를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아시리아 제국도 바빌론 및 메대 제국과의 싸움에서 밀리기 시작했으니까요.

나훔은 바로 이렇게 아시리아의 위세가 한 풀 꺾이게 된 국제정세를 지켜보면서, 오랜 세월 강대국에 짓눌려 위축된 삶을 살아야 했던 백성에게 희망에 찬 전망을 열어주고자 했어요. 그래서 다른 예언자들처럼 이스라엘이 저지른 죄악을 고발하며 회개할 것을 외치는 대신에, 아시리아의 수도 니느웨의 멸망을 소리높여 외침으로써 민족주의 색채를 강하게 드러내고 있어요. 그동안 쌓였던 아시리아에 대한 미움을 분출시키는 동시에 영원히 지속될 것만 같았던 대제국도 순식간에 무너뜨릴 수 있는 야훼 하느님의 권능을 다시 한 번 높이 천명하려고 했던 것이죠.

 <새김과 나눔>

우리 시대에도 국력이 약한 나라는 통상이나 무역에서 불이익을 당하곤 합니다. 이스라엘을 억눌렀던 대제국 아시리아의 힘을 오늘날 우리는 언제 어떤 방식으로 체험하게 되나요?

하느님께서 폭풍 속을 뚫고 오신다(나훔 1,1-8)

야훼 하느님은 어떤 신이신가요?(1,2)

야훼 하느님은 죄 지은 자를 벌하지 않은 채 버려 두시는 분이 아니라서, 발길로 구름을 먼지처럼 일으키시며 태풍과 폭풍 속을 뚫고 오셔요. 그분 앞에서는 강도 마르고 언덕들은 비틀거리며 세상과 그 안에서 숨수는 모든 것이 꺼져 버리죠. 이렇게 놀라운 권능을 지니신 분이 분노하시면 바위도 깨지는 만큼 당해낼 사람이 없어요. 하느님은 당신께 바라는 사람이 곤경에 빠졌을 때 따뜻하게 돌보아 주시는 자상한 분이시만, 당신께 대적하는 자들은 순식간에 빛 없는 곳으로 몰아내시는 엄한 분이시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거에요.

아시리아에는 벌을, 유다에는 구원을(나훔 1,9-2,3)

유다를 억누르던 적의 멍에를 부러뜨리시는 분은 누구세요?(1,12-13)

야훼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적들이 두 번 다시 일어나지 못하게 끝장을 보는 분이셔요. 그러니 원수를 갚고야 마시는 하느님께 음모를 꾸미다가는 가시덤불처럼 태워 없애질 수밖에 없어요. 그런 하느님이 유다에게 적의 병력이 아무리 많고 강하여도 당신께서 낫질하듯 없애버리리라고 약속해 주시니 얼마나 든든하겠어요? 니느웨의 이름을 이을 자손을 남기지 않으리라는 야훼 하느님의 판결이 내려졌으니, 머지 않아 광복의 소식을 전하는 발길이 산을 넘고 넘어 달려올 거에요. 그러니 이제는 축제 준비를 하면서 하느님께 서원제물을 바쳐야지요. 적들이 짓밟고 털어간 야곱의 포도덩굴, 이스라엘의 자랑을 하느님께서 다시 일으켜 주실 테니까요.

저주받을 도시 니느웨의 멸망(2,4-3,19)

야훼 하느님에 의해서 완전히 멸망한 도시의 이름은 무엇이죠?(2,9)

침략자들이 치러 올라오는 날에는, 파수꾼이 성루에 올라가 눈에 불을 켜고 길을 지켜본다 하더라도 아무 소용이 없어요. 미친듯이 날뛰는 적의 기마며 거리를 누비는 적의 병거바퀴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니까요. 정예부대를 앞세워 돌격하는 적의 기세 앞에 마침내 성문이 활짝 열리고, 대궐은 아수라장으로 변모될 수밖에요. 이제껏 도시를 지켜왔던 여신상은 바깥으로 들어내지고, 금은과 값진 세간을 털리는 모습을 보고 가슴이 떨리지 않을 사람이 없을 거에요.

이제 니느웨를 칠 것이라는 야훼의 말씀이 떨어졌으니, 그동안 약탈을 일삼고 노략질을 해온 니느웨가 끝장날 날이 멀지 않았죠. 그때에는 완전히 망한 니느웨를 보는 사람마다 피해가며 비웃을 거에요. 이집트의 서울 데베스의 시민들을 사로잡아 종으로 부려먹던 그 옛날의 영화는 한순간의 꿈으로 그치고, 쳐들어 오는 원수를 피해 살 수 있는 구멍을 찾아 헤매게 될 테니까요. 성채들이 하나하나 떨어지며, 굳게 닫힌 성문 빗장은 불타 없어질 터이니 그에 대한 대비를 아무리 한들 소용이 없을 거에요. 목자들은 잠들고 용사들은 흩어지게 될 아시리아의 임금을 애도할 수밖에요.

<새김과 나눔>

하느님은 압제를 일삼은 강대국을 하루 아침에 없애버리시는 분이시죠. 요즘처럼 모든 인류를 한순간에 사라지게 할 수 있는 핵강대국들의 횡포는 누가 막을 수 있을까요?

성서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