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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하바꾹 | No42 | 성서구약성서해설 | 종류예언서 | |||
하바꾹은 어떤 책인가요? 하바꾹이란 성서 이름은? 하바꾹은 12 소예언서 중에서 여덟번째로 나오는 성서입니다. 예언자 ‘하바꾹’이 하느님의 말씀을 전한 책이라, 그 이름을 따서 붙여졌지요. 하바꾹은 ‘합바쿠쿠 내지 함바쿠쿠’란 정원식물의 이름에서 유래했을 거라고 봐요. 누가 썼나요? 예언자 하바꾹이지요. “예언자 하바꾹이 환상으로 받은 말씀”(1,1) 내지 “예언자 하바꾹의 기도”(3,1)라고 분명히 언급되어 있으니까요. 그러나 그가 어떤 인물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나타나 있지 않아요. 많은 학자들은 하바꾹서에 반영된 전례적인 형태를 바탕으로 성전의 제의 예언자였을 거라고 추정해요. “눈에 불을 켜고 망대에 서서 기다려 보리라”(2,1)는 상황도 유배 이후에 성전에서 거주하던 레위인과 사제들의 상황(느헤 13,30; 2역대 7,6)과 비슷하거든요. 일부에서는 제의와 무관하게 환시를 받은 예언자로 여기기도 하고, 이사야 전승과의 연계성을 조심스럽게 타진해 보기도 한답니다. 언제 썼나요? 하바꾹서에는 예언자 하바꾹이 활동하던 역사적 상황에 대해서 거의 언급되어 있지 않아요. 따라서 하바꾹서가 언제 쓰여졌는지에 대해서 학자들마다 의견이 분분해요. 아시리아의 산헤립 왕이 유다를 침입한 기원전 8세기 말서부터 알렉산더 대왕이 근동 지역을 점령한 기원전 4세기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제기되고 있어요. 대부분의 학자들은 “내가 바빌론을 일으키리니”(1,6)란 내용으로 미루어 보아, 7세기 말 신바빌로니아 제국이 일어나던 시기에 쓰여졌을 거라고 보아요. 요시아 왕(기원전 640-609) 통치 말기서부터 여호야킴 왕(기원전 609-598) 치세 내지 여호야긴 왕(기원전 598) 시절에 집필되었을 거라는 거죠. 하지만 하바꾹서의 연대 추정은 ‘정의’(1,4. 13; 2,4)라든가 ‘못된 자’(1,4. 13; 3,13), 화를 입으리라는 신탁(2,6-20)과 갈대아인들에 대한 언급(1,6)을 바탕으로 추정한 연대라 확실하지가 않아요. 왜 썼나요? 대제국 아시리아의 수도 니느웨는 기원전 612년에 메대와 바빌론의 연합군에 의해서 마침내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오랫동안 아시리아에 예속되어 온 유다 왕국이 독립할 수 있는 이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죠. 아시리아 제국이 쇠퇴해 갈 무렵에 즉위한 요시아 왕(기원전 640-609)은 개혁을 통해 유다가 독립할 수 있는 기반을 꾸준히 닦아 왔으니까요. 하지만 아시리아 세력이 물러가기가 무섭게 팔레스티나 지역을 넘보고 있던 이집트 왕 느고와의 므기또 싸움(기원전 609)에서 요시아가 전사함으로써, 유다 왕국은 이집트의 세력권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여호야킴 시절에는 신흥대국인 신바빌로니아 군대에 또 다시 점령당하는 불운을 겪어야 했지요. 이렇게 역사가 흘러가도 강대국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유다 왕국의 비참한 현실을 돌아보면서 하느님의 정의가 어디에 있는지를 깊이 생각하고자 쓰여졌어요. <새김과 나눔> 유다 왕국은 역사가 흘러도 주변의 강대국에 의해서 예속받는 불운을 겪었습니다. 강대국들의 협상으로 나라가 두 동강난 우리나라가 강대국들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나는 야훼 안에서 환성을 올리렵니다 야훼여, 어찌하여 잠자코 계십니까?(하바 1,1-2,4) 의로운 사람은 무엇으로써 살게 될까요?(1,2) 하바꾹은 못된 자들이 착한 사람을 등쳐 먹고 정의가 짓밟히는 세상이 되었다면서, 어인 일로 이렇듯이 애매한 일을 당하게 하시고 이 고생살이를 못 본 체 하시느냐고 야훼께 항의해요. 이에 야훼 하느님은 사납고 날랜 바빌론 족속을 일으켜서 제 힘을 하느님처럼 믿다가 죄를 지은 자들을 바람에 날려가듯 사라지게 할 것임을 밝혀요. 그러자 하바꾹은 어찌하여 그들을 재판관으로 세우셨느냐고 다시 항의해요. 그들 민족은 그물을 쳐서 사람을 끌어내고 좽이로 사람을 잡아내며 칼을 빼어들고 무자비하게 뭇 민족을 죽이는 자들이라면서, 어찌하여 그들을 채찍으로 삼아 벌하시느냐고 의문을 제기해요. 그리고는 눈에 불을 켜고 망대에 서서 기다려 보겠다는 하바꾹에게, 야훼 하느님은 그가 받은 말씀과 환시는 반드시 이루어진다면서 의로운 사람은 신실함으로써 살리라고 약속해 주셔요. 화를 입으리라! 화를 입으리라!(하바 2,5-20) 어떤 이들이 화를 입으리라고 선포되나요? 기억나는 대로 말해 보세요(2,7. 9. 12. 15. 19). 재물은 조금도 믿을 것이 못 되어서, 돈이 있다고 우쭐대다가는 나둥그라지고, 뭇 민족을 끌어들인다 해도 비웃음만 당할 것임이 선포되어요. 남의 것을 먼지까지 긁어 모아 치부하는 사람들에게는 빚장이들이 달려들 날이 있을 거구요. 저만 잘 살겠다고 남을 등쳐 먹는 자들도 재앙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려고 애써 보았자, 뭇 백성을 망친 죄를 받지 않을 수가 없다고 이야기돼요. 그리고 죄없는 사람의 피를 빨아 성읍을 세우고 남의 진액을 짜서 성을 쌓는 이들도 화를 피할 길이 없어요. 홧김에 이웃에게 술을 퍼먹여 곯아 떨어지게 하고는 그 알몸을 헤쳐 보는 자들도 똑같은 능욕을 받게 될 거구요. 끝으로 나뭇조각을 보고 일어나시라고 하며, 말 못하는 돌멩이를 보고 주무시라고 하는 우상숭배자들도 아무 이익을 못 볼 것임이 선포되어요. 야훼여, 우리 시대에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바 2,4-3,19) 밭곡식과 양떼·소떼가 없어도 우리는 누구 안에서 환성을 올릴 수 있을까요?(3,18) 훼께서 하신 일들을 자신들의 시대에도 보여주시기를 바라면서, 아무리 노여우셔도 자비를 베풀어 주시기를 잊지 마시라고 간청해요. 역신이 앞장서고 열병이 뒤따르는 하느님께서 발길을 멈추시면 땅이 흔들리고 노려 보시면 민족들이 떨 만큼 큰 위력을 떨치시는 분이시니까요. 주께서 오시는 소리를 들으면 입술이 떨리고 뼛속이 녹아 내리며 아랫도리가 후들거리지만, 자신들을 덮쳐 오던 백성에게 재앙이 떨어지는 날만 기다리는 희망에는 변함이 없어요. 비록 농사는 망하고 밭곡식은 나지 않아도, 우리에 있던 양떼는 간 데 없고 목장에는 소떼가 보이지 않아도, 나를 구원하신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뛸 수 있을 테니까요. <새김과 나눔> 정의가 짓밟히는 세상에서도 의로운 사람은 신실함으로써 살아가게 됩니다. 신앙인인 우리는 이 세상을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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