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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썼나요? 유대의 탈무드 전승에서는 “사무엘의 역사서”(1역대 29,29)에 근거하여 사무엘이 썼다고 주장해요. 그렇지만 사무엘의 죽음이 두 번이나 기록된 것으로 보아(1사무 25, 1; 28, 3) 사무엘이 썼다고 보기는 어려워요. 탈무드는 사무엘의 죽음과 그 이후 내용은 예언자 나단과 가드가 써서 사무엘의 역사서에 덧붙였다고 밝히지만, 이 역시 근거가 약해요. 오늘날 학자들은 옛부터 전해오는 법궤 설화와 사울과 다윗이 왕이 된 이야기, 다윗에서 솔로몬으로 왕위가 넘어간 이야기 등 주요한 전승들을 바탕으로 신명기계 사가가 편찬했다고 보고 있어요.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절대 순종을 강조했던 그들의 견해가 사무엘서의 주된 흐름을 이루고 있거든요. 언제 썼나요? 사울이나 다윗의 이야기의 어떤 부분은 상당히 구체적이어서 당대에 가까이 있던 사람이 썼다고 여겨질 정도에요. 아마도 골격을 이루는 이야기의 많은 부분은 다윗이나 솔로몬 시대부터 전해오는 여러 전승이었을 거에요. 그러나 이러한 전승들을 새롭게 해석하고 그 의미를 밝혀서 하나의 연속적인 결정본으로 만든 이는 포로기에 활동한 신명기계 학파랍니다. 왜 썼나요? 사무엘서는 이스라엘의 역사 중 왕정체제로 나아가려고 하는 변혁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요. 이 변혁기에 이스라엘이 하느님의 백성으로 여전히 남아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길이 제시되어요. 이 때 나타나는 계층이 사무엘로 대변되는 예언자와 사울과 다윗으로 이어지는 왕이에요. 이스라엘도 주변 민족처럼 왕정체제로 나아갈 수 있지만, 그 왕국의 모습은 다른 나라와 달라야 한다는 거에요. 즉 왕은 절대자가 아니라 야훼 하느님의 뜻대로 나라를 다스려야 하고, 예언자는 이를 늘 왕에게 알려주어야 한다는 것이죠. 이스라엘의 참된 왕은 여전히 하느님이시니까요. 사무엘서는 이를 둘러싼 갈등과 해결책을 서술하고 있어요. 하느님에 의해 세워졌지만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던 사울 왕조는 몰락하였지만, 늘 하느님의 뜻을 따르고 그분께 대한 믿음을 잃지 않은 다윗은 든든히 서리라는 약속을 받게 되지요. 결국 사무엘서는 역사적 사건을 통해 이스라엘 민족의 희망은 하느님의 뜻에 순종할 때 있음을 보여주어요. 그럼으로써 역사의 격변기에서는 무엇보다 하느님을 찾고 그분께 의탁할 것을 호소하는 것이죠. <새김과 나눔> 현재 우리가 사는 20세기말도 산업사회에서 정보사회로 넘어가는 큰 변혁기랍니다. 이 때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바람직한 길을 어디에서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요? 사무엘 상권 사무엘의 출생과 소명(1사무 1,1-4,1a) * 하느님이 부르셨을 때 사무엘은 무엇이라고 대답하였습니까?(3,10) 돌계집이었던 한나는 실로에 있는 하느님의 성전에서 기도하여 마침내 사내아이를 낳고 이름을 사무엘이라 짓습니다(그 이름의 뜻은 ‘하느님의 이름’ 또는 ‘그의 이름은 하느님이다’). 한나는 하느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면서(루가복음에 나오는 마리아의 노래와 비교해 보세요), 사무엘을 성전에 봉헌합니다. 사제 엘리의 밑에서 큰 사무엘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이스라엘의 예언자로 활동하게 된답니다. 예언자의 새 시대가 열리는 서막입니다. 하느님의 궤는 거룩하니(1사무 4,1b-7,1) 불레셋 군이 쳐들어와 이스라엘이 패하자 하느님의 궤까지 모시고 가지만 그 궤마저 빼앗겨 버렸어요. 또 하느님의 말씀처럼 그 싸움에서 사제 엘리의 두 아들이 죽는 등 그 가문이 무너져 버려요. 그러나 전리품으로 빼앗아간 하느님의 궤 때문에 불레셋 족들은 떼죽음을 당하는 등 큰 곤경에 처하죠. 그래서 그들은 면죄제물을 담아 이스라엘로 다시 궤를 돌려보냅니다. 이는 하느님 야훼의 능력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모두에게 보인 사건이었죠. 사울을 왕으로 세우고(1사무 7,2-12,25) * 사울은 어느 지파의 어느 갈래 출신입니까?(9,1; 10,20-21)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판관으로 통치합니다. 그의 통치 중에 이스라엘은 하느님께 돌아와 회개합니다. 미스바 모임은 바로 그런 회개의 자리였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보시고 하느님은 이스라엘을 쳐들어온 불레셋 족을 물리쳐주십니다. 그러나 사무엘이 늙고 그의 두 아들이 올바로 판관 역할을 못하자 백성들은 왕을 세워달라고 요구합니다. 사무엘은 왕정이 가져올 폐해를 일러주지만 백성들이 왕을 고집하자, 하느님은 그들의 말을 들어주라고 일러주시며 사울을 왕으로 지명하십니다. 사울은 가장 작은 지파의 보잘것없는 집안 출신이지만 기름부음을 받고 왕으로 세워집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기운으로 암몬 군을 물리쳐 왕으로 인정받고 길갈에서 즉위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 그 능력과 자격을 하느님으로부터 인정받아야 제대로 할 수 있답니다. 사울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아 버림받고(1사무 13,1-15,35) * 하느님의 지시를 어긴 사울에게 사무엘은 무엇이라고 말하였습니까?(15,22-23) 이스라엘은 불레셋 족과 계속 싸워야 했습니다. 그 당시 불레셋 족은 청동기는 물론 철기까지 다루는 앞선 문명을 지녔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퍽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또 다시 불레셋 족이 쳐들어왔을 때에는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지혜롭게 하느님의 뜻을 분별하여 앞장서서 싸운 덕분에 크게 이겼습니다. 사울은 주변 국가들과 싸울 때마다 승리를 거두어 왕위를 굳힙니다. 그러다가 아말렉을 쳐부수고 모든 생명체를 죽이라는 하느님의 지시를 사무엘에게서 받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말렉을 이기고서도 전리품이 아까워 다 죽이고 없애라는 하느님의 지시를 어깁니다. 그 결과 사무엘은 하느님의 말씀을 어긴 것은 그분께 대드는 죄이며 큰 잘못이기에 왕의 자리에서 파면되었다는 선언을 내립니다. 이스라엘에 승리는 주시는 분도 하느님이시고, 왕을 이끄시는 참된 왕도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새김과 나눔> 사무엘은 후대 예언자들이 반복하여 강조한 것처럼, 하느님의 말씀을 명심하는 것이 염소의 기름기보다 낫다고 말합니다. 이 가르침의 뜻을 우리의 신앙생활에 비추어 생각해 봅시다. 다윗이 기름부음을 받다(1사무 16,1-13) * 다윗은 이새의 몇째 아들이며 무엇을 하는 사람이었습니까?(16,10-11) 야훼 하느님께서는 사무엘을 유대 베들레헴으로 보냅니다. 명목은 제사드리러 간 것이지만 사실은 새로운 왕에게 기름을 붓기 위해서이죠. 이새와 그의 아들들을 초청한 사무엘은 큰 아들부터 차례로 보지만 누구도 아니었어요. 사무엘이 그럴 재목이라고 생각한 아들도 하느님은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겉모양을 보지만 하느님은 속마음을 들여다 보시니까요” 마침내 그 자리에 없던 막내를 지목한 사무엘은 하느님의 지시대로 그에게 기름을 붓습니다. 그러자 하느님의 영이 다윗에게 내립니다. 다윗이 사울 왕실에서 득세하나(1사무 15,14-20,42) * 다윗이 불레셋 장수와 싸울 때 누구의 이름을 믿고 나갔습니까?(17,45) 다윗이 사울 왕실에 들어가게 된 계기는 여러 가지로 소개됩니다. 맨 먼저 악령에 시달리는(아마도 조울증 같은 정신질환인 듯) 사울을 치료하는 수금타는 사람으로 궁정에 들어갑니다. 그 다음 계기는 불레셋 장수를 이긴 전과입니다. 또 다시 불레셋 족과 싸움이 벌어졌을 때 형들의 안부를 알기 위해 진지에 간 다윗은 엄청난 불레셋 장수가 하느님을 모독하는 말을 듣습니다. 그는 하느님의 이름에 의지해나가 돌팔매로 그들 이겨요.(그 장수 이름을 골리앗이라 한 것은 후대에 붙여진 것 같아요. 엘하난이 골리앗을 죽였다고 나오거든요. 2사무 21,10을 보세요.) 다윗이 사울의 군사령관으로서 자꾸 승전하여 백성들의 인기가 높아가자, 사울 왕은 다윗을 질투하고 불안해지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호시탐탐 죽일 기회를 노리는데,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 사울의 둘째딸로 다윗의 아내가 된 미갈이 다윗을 감싸 위기를 넘겨주지요. 다윗은 사울에게 쫓겨 다니고(1사무 21,1-27,12) * 다윗은 왜 두 번이나 사울을 죽일 기회에서 살려줍니까?(24,11-16; 26,23-24) 다윗은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 사울 왕궁을 벗어나 여기저기로 떠돌아 다닙니다. 놉의 제관 아히벨렉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갓 나라에 가서 미친 행세도 합니다. 그러다 유다에 가서 부하 육백 명을 모아 여러 곳을 약탈하며 점차 힘을 키웁니다. 마온 지역의 유지인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을 아내로 맞이한 것도 그의 힘 덕분입니다. 다윗을 죽이려고 나선 사울 왕을 두 차례(마온 광야와 지브 광야)나 죽일 기회가 있었지만, 다윗은 하느님께서 기름부어 세운 왕을 사람이 죽일 수는 없다하여 살려줍니다. 늘 하느님을 두려워하며 사는 다윗의 경건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마침내 사울은 전사하니(1사무28,1-31,13) 불레셋 족에게 몸을 위탁한 다윗은 아마렉 족 등 주변의 이방민족들을 약탈하지요. 그러는 가운데 또 불레셋 군이 대대적으로 이스라엘을 쳐들어왔어요. 길보아 산에서 벌어진 이 전투에서 사울과 그의 아들은 전사하고 이스라엘은 완전히 패배하였어요. 하느님의 도움이 없었기 때문이지요. 이스라엘의 첫 왕인 사울은 이렇게 하여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집니다. <새김과 나눔> 하느님이 당신의 사람을 선택하시는 기준은 우리의 기준과 다릅니다. 사울과 다윗의 소명 기사를 생각해보며 우리 각자의 소명을 되새겨 봅시다. 사무엘 하권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다(2사무 1,1-5,5) * 다윗은 어디에서 얼마 동안 왕위에 있었습니까?(5,4-5) 다윗은 뒤늦게 한 아말렉 젊은이로부터 사울과 요나단의 사망 소식을 듣고 몹시 슬퍼합니다. 그는 사울왕의 물품에 손댄 그 젊은이를 죽여 사울에 대한 충성심을 보입니다. 그런 뒤에 다윗은 하느님의 지시를 받아 헤브론에 가 자리잡고 유다의 왕으로 임명됩니다.한편 북쪽 지파들은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왕으로 삼고, 다윗의 유다 가문과 대치합니다. 두 왕실 사이에 싸움이 계속되는 동안 다윗은 점차 강해집니다. 마침내 북 왕실에서 내분이 일어나 우두머리가 모두 사라지자, 복쪽 지파는 다윗과 조약을 맺고 그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습니다. 이리하여 다윗은 이스라엘 전체 지파의 왕이 되었습니다. 성서 저자는 늘 모든 것에서 야훼 하느님의 뜻을 물으며 그대로 시행하는 다윗의 믿음을 계속 강조합니다. 다윗이 예루살렘을 차지하다(2사무 5,6-8,18) * 다윗에게 왕조의 지속성을 일러준 예언자는 누구입니까?(7,4-17) 아직도 유다와 이스라엘 사이에는 여부스 족이 사는 예루살렘 같은 이방민족의 도시들이 남아 있었습니다. 다윗은 높은 언덕에 자리잡고 방어시설이 잘 된 예루살렘을 정복한 뒤 자신의 도성으로 삼습니다. 남과 북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예루살렘은 두 나라를 잇는 도성으로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됩니다. 다윗은 불레셋 군을 물리친 뒤, 하느님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 옵니다. 거룩한 그 궤를 경솔하게 만진 우짜는 죽고 잘 모신 오베데돔은 복을 받습니다. 또 궤를 모셔오면서 덩실거리며 춤춘 다윗을 비웃은 미갈은 돌게집이 되고 맙니다. 다윗은 그 궤를 모실 성전을 짓고자 하지만, 하느님은 다윗의 자식대에 가서야 성전을 지을 것이며, 다윗 왕조를 흔들리지 않게 하겠노라는 말씀을 내리십니다. 이에 다윗은 감격하여 하느님의 위업을 찬양하는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다윗은 계속하여 주변 민족을 무찔러 영토를 넓히고 국력을 키웁니다. 결국 이 모든 일은 다윗이 아니라 야훼 하느님이 하신 구원행위였음이 강조됩니다. 다윗이 죄를 짓다(2사무 9,1-12,31) * 솔로몬의 또 다른 이름은 무엇이며,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무엇입니까?(12,24-25) 다윗은 예전에 요나단과 맺은 우정을 기억하여 그의 아들인 므비보셋을 잘 대우해 줍니다. 신의에 충실한 다윗의 모습이죠. 또 다윗은 자신을 모욕한 암몬과 아람을 쳐 대승을 거둡니다. 이 전쟁 중에 다윗은 예루살렘에서 헷 사람 우리야의 아내인 바쎄바를 데려다가 정을 통합니다. 그녀가 임신하자, 다윗은 남편을 전쟁터에서 불러와 잠자리를 하도록 함께 계략을 세우지만 실패하고 맙니다. 그리하여 결국 우리야를 전쟁터에서 죽게하는 최후의 수단을 씁니다. 하느님은 예언자 나단을 시켜 다윗이 저지른 불의를 고발하고 엄중히 처벌할 것을 예고합니다. 다윗이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참회하자, 하느님은 그 죄는 용서하지만 벌로써 다윗과 바쎄바 사이에 난 아이가 죽습니다. 이처럼 성서 저자는 성왕이라 일컬어진 다윗이 지은 큰 죄를 숨김없이 드러내면서, 죄의 무서움과 참회의 자세를 강조합니다. <새김과 나눔> 다윗은 늘 하느님께 여쭈어보며 행동하는 신앙인이지만, 인간적인 욕정에 이끌려 죄를 범합니다. 그에 비추어 우리의 신앙 자세를 되새겨 봅시다. 잘못을 드러내고 고백하는 참회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묵상해 봅시다.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키다(2사무 13,1-19,9a) * 아히도벨의 좋은 수를 꺾으신 이는 누구입니까?(17,14) 다윗의 맏아들 암논이 배다른 누이 다말을 욕보이고 내쫓았는데도 다윗은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습니다. 앙심을 품은 다말의 오빠 압살롬은 암논을 죽이고 외갓집인 그술 왕에게 망명합니다. 세월이 흐른 뒤 요압이 꾀를 내어 압살롬을 예루살렘에 오게 하고, 마침내는 왕의 용서를 받아 예전의 지위를 차지하게 합니다. 그 뒤 압살롬은 친위부대를 만들고 재판에 관여하여 이스라엘 사람들의 환심을 산 다음, 헤브론에서 왕의 즉위식을 갖고 반란을 일으켜 예루살렘으로 쳐들어옵니다. 다윗은 급히 요르단 강 건너편으로 피신합니다. 급팽창하던 압살롬의 세력은 후새의 계략에 넘어가 전투에서 지고 압살롬 자신도 비참한 최후를 맞습니다. 성서 저자는 이 모든 일의 배후에 하느님이 계시다고 일러 줍니다. 다윗이 다시 왕위를 차지하다(2사무 19,9 b-20,25) * 아벨 벳마아가 성을 함락의 위기에서 구한 사람은 누구입니까?(20,16-22) 압살롬이 죽자 이스라엘 사람들은 다시 다윗을 왕으로 모시자고 논의합니다. 또 다윗은 유다 지파에게 자신을 왕으로 모시도록 촉구합니다. 이를 보면 당시 다윗이 온 이스라엘 사람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지 못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아무튼 유다 백성의 마음이 돌아와 다윗을 왕으로 맞이합니다. 다윗은 잘못한 이들을 용서하는 등 너그러움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선수를 빼앗긴 이스라엘 지파들과 유다 지파 사이에 다툼이 시작됩니다. 아직도 두 그룹은 하나의 민족으로서 공동체를 이루지 못하고 갈등관계에 있음이 드러납니다. 그러나 베냐민 사람 세바의 주동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제각기 고향으로 돌아가고 맙니다. 또다시 분열의 위기에 처하자, 다윗은 세바를 죽여 왕권을 굳힙니다. 그가 죽음으로써 일단 갈등은 가라앉지만, 솔로몬 대에 가서 결정적으로 갈라지게 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다윗이 하느님을 찬양하다(2사무 21,1-24,24) * 다윗은 하느님을 자신의 무엇이라고 고백합니까?(22,2-51) 사무엘서 하권의 끝부분에는 다윗 시대에 있었던 몇가지 사건이 앞뒤없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먼저 삼 년이나 흉년이 들었을 때, 그 원인이 사울 가문이 기브온 사람들을 학살한 데 있다는 신탁이 나옵니다. 그래서 사울 가문의 일곱 명을 기브온 사람들에게 넘겨 처형시킵니다. 그러나 다윗이 그들의 뼈를 잘 매장해 줄 때 하느님께서 기도를 들어주셨다고 합니다. 아마도 이는 피의 복수에 따른 정의를 나타내는 고대의 이야기를 빌어 전왕에 대한 다윗의 충성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하느님께서 불레셋을 이기게 해주신 날, 다윗은 자신의 생애를 통해 끊임없이 은혜를 베푸신 하느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릅니다. 하느님의 능력의 크심을 기리고, 하느님의 이름을 널리 알릴 수밖에 없음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다윗이 병적조사를 하여 하느님의 진노를 사 전염병으로 숱한 백성이 죽습니다. 다윗이 잘못을 고백하고 제사를 지낸 뒤에야 재앙이 그칩니다. 병적조사는 다윗이 자신의 힘을 확인하고 드러내려는 짓으로서, 하느님만을 믿고 의지하는 참된 신앙에서 벗어난 일이었기에 그런 재앙을 가져온 것입니다. <새김과 나눔> 다윗은 “한 마음으로 당신을 위하면 당신께서도 한 마음으로 위해 주십니다”(22,26)라고 찬양했습니다. 우리의 생활과 신앙은 얼마나 갈라져 있는지 묵상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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