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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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정의◆ 인쇄

한자 社會正義
영어 social justice

   가톨릭 교회는 그 본질상 세상의 빛과 소금(마태 5:13-16)이다. 교회교회 자체를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이 사회의 어두운 곳에 빛을 던지고 썩어 가는 양심을 일깨워주기 위하여 존재한다. 특히 보잘것없는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들을 구원하는 것(마태 25:31-40)이 가톨릭 교회의 가장 큰 존재이유이다. 따라서 현대의 가난한 사람과 고통에 신음하는 모든 사람들의 슬픔과 번뇌는 바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자들의 슬픔과 번뇌인 것이다(사목헌장 1).

   그러나 과거의 교회는 성속이원론(成俗二元論)이 지배하여 세상이나 사회를 외면하고 교회만이 완전사회이며 선(善)을 독점한다고 생각하여 왔다. 따라서 사회문제에 대한 예언직(豫言職)은 망각되고 인간자유, 인간의 권리, 인간의 해방 등에 대해서 외면하였으며, 때때로 사회문제에 대한 참여를 단죄(斷罪)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교회가난한 자에게 희망용기주기는커녕 인간을 억압하는 사회체제와 공존하기도 하였다. 교회는 이 사회 안에서 그리스도의 구원사업을 수행하는 도구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현실 안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드러내지도 못하였다. 특히 산업혁명으로 인한 노동자의 빈곤에 대해서 오직 침묵을 지킴으로써 교회는 약한 자의 편이 되지 못하였다.

   그러나 레오 13세가 <레룸 노바룸>(Rerum novarum, 1891)을 발표함으로써 교회사회적 책임이 강조되기 시작하였다. 요한 23세의 말대로 이 회칙은 '경제사회 대헌장'이었다. 그 후 비오 11세의 회칙 <콰드라제시모 안노>(Quadragesimo anno, 1931)는 사회문제에 대한 교회의 역할을 재천명하고 인간평등성에 의하여 계급간의 관계가 균형잡혀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요한 23세는 <어머니와 교사>(Mater et magistra, 1961)와 <지상의 평화>(Pacem in terris, 1963)를 통하여 가톨릭 교회사회정의를 뚜렷하게 재정립하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는 "교회는 볼 수 있는 단체요 영적 공동체로서 전인류와 함께 길을 걸으며 세계와 같은 운명을 겪고 있다"(사목헌장 40)고 천명하면서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인권운동을 높이 평가하였다.(사목헌장 41).

   바오로 6세에 이르러 가톨릭 교회사회적 책임이 더욱 강조되었다. <민족들의 발전 촉진에 관한 회칙>(1967(에서 세계인류 공동체는 서로 협력하여 빈부의 격차를 없애고 서로 형제처럼 살아야 한다고 말했고, 레룸 노바룸 반포 80주년(1971년)을 맞이하여 가난하고 소외된 계층을 위해서 교회는 적극적인 활동을 개시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이 모든 회칙들은 교회는 현실에서 도피하지 말고 역사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봉사해야 하며 사회의 양심이 됨으로써 이 지상에서 하느님나라의 가치를 선포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더구나 이 세상의 모든 사회문제는 바로 인간윤리의 문제이며 인간윤리의 문제는 바로 교회문제이기 때문에 교회사회문제를 외면한다는 것은 교회의 책임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이러한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오늘의 교회는 많은 사회문제에 적극 참여하여 사회의 누룩 역할을 하고 있다.

   오늘날 가톨릭 교회정의로운 사회를 건설하기 위하여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교황청 정의 평화위원회와 각국의 정의 평화위원회의 활동이 대표적이다. 가톨릭 교회지향하는 정의는 모든 인간이 동등한 품위를 인정받아야 한다는 것, 모든 인간하느님의 창조목적에 따라 행복한 생활을 하며,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권리가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 모든 사람은 중요한 생활필수품을 공정히 분배받아야 하며, 각자의 정당한 포부가 이루어지고 진리를 탐구할 수 있어야 하며, 인종 · 종교 · 연령 · 언어 · 계급 · 성의 차별 없이 인격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인간이 어떠한 체제의 객체(客體)가 아니라 역사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교회는 압제적 제도, 불의에 가득찬 사회를 정력적으로 비판하여 그 시정을 주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가 부정과 불의를 보고 침묵만을 지키면 교회가 부정과 불의를 저지른 자와 공범자(共犯者)로 취급당하게 된다. 부정과 불의 중에서 가장 현저한 것은 권력 · 부의 특권화다. 따라서 교회권력을 장악한 자와 부를 누리는 자가 권력과 부의 노예화에서 해방되도록 각성시켜야 하며, 이 세상에서 야기되는 압박과 착취의 상황을 진보와 희망으로 이끌어 가야 한다. 교회는 세계 안에서 일어나는 불의의 상황들을 공동선(公同善)을 추구하는 복음화로 이끌어 가도록 해야 한다. 특히 교회는 인류 구원은 영신적 구원만이 아니라 현세적 구원까지도 포함된다는 것을 명심하여 인간의 구원이 요구한다면 불의를 규탄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교회와 인권 57).

   교회의 사회참여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인권의 문제다. 인간인권이 소중하다는 것은 성서와 모든 교회문헌의 핵심사상이다. 특히 가난한 자의 인권을 수호하는 것은 교회의 가장 큰 의무다. 그러기 때문에 인권이 침해되는 경우 교회는 주저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예언직을 수행해야 한다. 그리스도는 인권옹호의 고무자였다는 점에서 인권문제에 대해서는 중립을 지킬 수 없다. 인권의 신장은 복음의 요구이며 성직의 책임이다. 또 인권이 없는 곳에는 평화도 없다. 따라서 교회인권수호자라는 것을 깊이 인식해야 하며 인간의 기본권, 영혼의 구원에 필요할 때 교회정치질서에 대한 윤리적 판단을 내리는 것도 당연한 것이다.(사목헌장 76).

   물론 교회가 이 사회의 모든 문제를 책임지고 해결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사회문제에 소극적으로 대처해서는 안 된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교회사랑·봉사·희생을 바라고 있다. 따라서 교회는 교세의 양적 증가에 힘쓰는 한편 사랑사도로서의 영성을 깊이 자각해야 할 것이다. 교회사회참여나 사회운동은 교회적인 방법으로 수행되어 나가야 한다. 따라서 배타적이거나 독선적이어서는 안 되고 사랑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그리고 성직자 중심이 아니라 평신도의 능동적 참여가 요구된다. 평신도야말로 복음의 증거자로서 세상 안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정의를 가시적으로 드러내야 하기 때문이다.

   교회는 인권문제에 있어서 인간의 권리만을 강조할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의무에 대해서도 의식화시켜야 한다. 특히 인권문제에 있어서 교회 내의 인권존중이 선결되어야 함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교회사회운동은 자연법과 복음의 한계 내에서 보편성과 일치를 추구해야 한다. 폭력그리스도교인적인 것도 아니요 복음적인 것도 아니다. 따라서 평화적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비폭력과 피동은 다르기 때문에 단순한 평화주의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교회는 특정한 사회문제에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할 필요는 없다. 더구나 어떠한 특정한 사회체제를 주장하거나 배격해서도 안 된다. 결국 교회정의공동선에 일치하는 체제는 그것을 찬양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배격할 의무가 있다. 교회사회문제에 대한 예언직은 교회의 많은 사명 중의 하나이지 전부는 아니다.

   한국 교회는 1960년대 이후 사회정의를 위하여 많은 활동을 전개하여 왔다. 1960년대에 이르러 노동청년회와 농민회가 조직되어 노동자의 권익과 농민의 이익을 위해서 많은 공헌을 하였다. 그런가 하면 1970년대에 이르러 한국 천주교 정의평화위원회가 조직되고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이 조직되어 부정과 불의 및 인권의 침해에 대해서 항의해 왔다. 또 한국 천주교 주교단강화도 심도직물 사건 때 성명서를 통해 "교회는 그리스도교적인 사회정의의 원리를 가르칠 권리와 의무가 있다. 노사협조만이 승공(勝共)의 길이다. 인간의 존엄성은 평등하다. 노동자는 결사의 자유정당한 임금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을 천명하였다. 이것은 바로 <레룸 노바룸>의 정신이 한국적으로 표현된 것으로 한국 천주교회가 사회정의를 위하여 그 예언자적 사명을 수행하기 시작한 획기적 사건이었다.

   그 후 1975년 2월 28일 주교단지학순(池學淳) 주교사건을 계기로 메시지를 발표하여 부정부패 · 사회부조리 · 인권유린에 대한 교회의 예언직 수행을 재천명하였다. 그런가 하면 한국 천주교 정의평화위원회도 1977년 3월 28일의 성명서를 통해서 교회인권과 관련하여 정치질서에 대한 윤리적 판단을 내릴 권리가 있다는 것, 김지하(金芝河)를 석방할 것, 성직자에 대한 연금과 감시 연행을 중지할 것 등을 정부당국에 요구하였다. 1978년 7월 11일 및 7월 25일에도 한국 천주교 정의평화위원회는 사회정의의 구현, 민주정치의 회복을 주장하는 성명서를 발표하였고 동년 8월과 9월에는 오원춘(吳元春) 사건을 계기로 인권침해를 규탄하는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한편 한국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은 1974년 11월 6일 언론의 자유, 학원의 자유를 주장하는 시국선언을 발표하였고, 1975년 3월 21일에는 동아일보사건에 즈음하여 언론의 자유를 선언하고 한일외교정상화에 대한 태도를 밝혔으며 구속양심범의 석방을 요구하였다. 그 후 1977년 4월 18일에도 시국선언을 발표하여 정치권력의 본질은 공동선의 추구에 있다는 것, 유신헌법과 긴급조치를 철폐할 것, 3.1구국선언은 신앙고백이라는 것을 천명하였다.

   이상으로 가톨릭 교회사회정의, 인권, 특히 가난하고 버림받은 자를 위하여 예언직을 수행하고 직접 참여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가톨릭 교회사회참여나 사회운동은 고립되어서는 안 되며 모든 선의의 사람들과 협력해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오늘날 이 사회에는 많은 종파가 있고 무종교자도 있다. 따라서 그들 중에서 하느님나라의 건설을 위해서 협력할 수 있는 사람도 많다는 것을 의식하고 같이 협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것은 정의구현과 인권수호가 가톨릭 교회의 독점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 교회정의를 구현하려고 할 때 불의를 자행한 사람과의 대화도 등한시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가톨릭 교회가난한 자만이 아니라 가진 자도 구원해야 하는 보편적 사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가톨릭 교회사회참여나 사회운동은 그리스도 교인이 그리스도의 사랑계명과 일치의 소명에 충실히 응답함으로써만이 그 의미를 부여받을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의 예언직과 활동은 언제나 교회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결코 어떤 사람이나 어떤 계층이 구원의 대상에서 제외될 수 없다는 대원칙에 입각해야 한다. (⇒) 정의 (韓庸熙)

   [참고문헌] 한용희, 가톨릭 정치윤리, 분도출판사, 1980 / 사회정의, 가톨릭출판사, 1976 / 교회인권, 분도출판사, 1975 / J. 회프너, 그리스도교 사회론, 분도출판사, 1979 / 현대 가톨릭사상, 서광사, 1980.
출처 : [가톨릭대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