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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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익태◆ 인쇄

한자 安益泰

   安益泰(1905∼1965). 작곡가. 지휘자. 첼리스트. 세례명은 리카르도. 평양(平壤) 출생. 평양 숭실학교(崇實學校)를 수료하고 도일(渡日), 일본 구니다찌음악학교(國立音樂學校)에서 첼로를 전공한 뒤 1930년 다시 도미(渡美), 필라델피아 커티스음악학교와 신시내티음악학교에서 첼로와 작곡을 공부하였다. 1936년 유럽으로 건너가 1937년 빈(Wien)에서 리히아르트 슈트라우스(R. Strauss)에게 사사, 이 때 영국민요 'Auld lang syne'의 곡조에 맞추어 불려졌던 애국가를 새로 작곡하였다. 1939년 헝가리 부다페스트 국립음악학교에 입학, 공부를 마친 후 각국을 순회하며 교향악단을 지휘하였다. 1945년 영세, 입교하고 스페인 여인 타라베라와 결혼한 뒤 스페인에 정착, 마드리드 마요르카 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가 되어 그 뒤 사망하기까지 세계 각국의 200여 교향악단을 지휘,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1957년 귀국하여 <강천성악>(降天聲樂), <한국환상곡>(韓國幻想曲) 등을 지휘했고, 1961년부터 1963년까지 매년 귀국하여 서울에서 국제음악제를 개최하는 한편, 1958년에는 유럽순방 중인 노기남(盧基南) 주교스페인으로 초청, 한국 교회의 재정적 후원을 돕기도 하였다. 평소 음악을 신(하느님)의 영감(靈感)을 인간에게 전하는 ‘신의 메시지’라고 말하고 자신의 소명(召命)이 바로 그 메시지의 전달자임을 확신하고 있었다. 음악적 계보는 후기 낭만파에 속하고 베토벤, 브람스, 드보르작, 리히아르트 슈트라우스의 작품을 즐겨 지휘하였다. 1965년 7월 런던에서 뉴필하모니 교향악단의 초청지휘자로 자신의 최후작품인 <애(哀)! 강상(江上)의 의기(義妓) 논개(論介)>를 연주하고 그해 9월 17일 스페인 바로셀로나병원에서 사망하였다. 1957년 정부로부터 문화포상을 받았고 1965년 문화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으며 1977년 7월에는 유해스페인으로부터 동작동 국립묘지에 이장되었다.
출처 : [가톨릭대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