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사전

검색
※ 단어, 외국어, 관련어, 문장으로 검색하세요. 예)부활,사순 시기, liturgy, Missa, 천사와 악마, 종부성사, 그리스도의 탄생,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 등

◆양심◆ 인쇄

한자 良心
라틴어 conscientia
영어 conscience
[관련단어] 양심선언 

   1. 양심의 이해와 본질 : 어원적으로 볼 때 양심이라는 개념은 그리스어 suneidesis로부터 유래하며, ‘함께 안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즉 인간하느님과 함께 안다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가톨릭 교회는 양심을 ‘하느님의 목소리’로 이해하고 있다. 사목헌장 16항에는 “인간은 양심 속 깊은 데서 법을 발견한다. 이 법은 인간이 자신에게 준 법이 아니라 인간이 거기에 복종해야 할 법이다. 이 법의 소리는 언제나 선을 사랑하며 행하고 악은 피하도록 사람을 타이르고 필요하면 ‘이것은 행하고 저것은 피하라’고 마음의 귀에 들려준다. 이렇게 하느님이 새겨 주신 법을 인간은 그 마음에 간직하고 있으므로 이 법에 복종하는 것이 바로 인간의 존엄성이며 이 법을 따라 인간심판을 받을 것이다. 양심은 인간의 가장 은밀한 안방이요 인간이 저 혼자서 하느님과 같이 있는 지성소(至聖所)이며 그 깊은 곳에서 하느님의 목소리가 들려온다”고 쓰고 있다.

   물론 하느님의 목소리는 단순한 물리적인 음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존재성과 행위의 문제를 해명하고자 시도했던 오랫동안의 신학적 반성의 결과로서 절대적인 윤리 요구와 당위성을 인식하는 인간의 주관적인 의식과 체험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목소리는 인간의 자율적인 의식과 체험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자아와 다른 실재로부터 주어지는 요구에 대한 의식과 체험을 의미한다. 자아와 다른 실재를 교회하느님의 절대적 실재로서 이해한다. 물론 양심에 대한 교회의 이해와 상이한 이해가 없는 것은 아니다. 사회학은 인간의 양심을 사회적 억압 또는 강요의 산물로 이해하고, 심리학은 이상적인 부모상을 모방하고 내면화시키는 것 또는 초자아의 표현으로 이해하며, 생물학은 주위세계에 적응하려는 노력의 결과로 이해한다.

   인간은 윤리적 존재로서, 자신의 삶을 윤리적 땅위에 따라 자유스럽게 영위해야 할 책임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 자유는 결코 절대적인 의미의 자유가 아니라 상대적인 의미의 자유이다. 인간의 행위는 절대적인 자유로부터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주위세계, 선천적 소질, 전통, 문화, 역사로부터 유래하는 당위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당위에 따른 자유스러운 인간의 자아형성은 윤리적 당위가 인간의 의식 속에 나타나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인간의 의식 속에 나타나는 이 당위를 포착하는 능력이 바로 양심이다. 그러므로 양심은 일차적으로 인식과 깊은 관계를 지니고 있다. 윤리적 당위와 요구는 인간에 의해 인식되어야 한다. 이 인식을 토대로 해서 인간의지가 작용하여 구체적인 행위를 유발시키기 때문이다. 양심이 지니고 있는 인식의 내용은 윤리적 당위, 즉 선과 악을 구별하는 것이고, 이 구별을 구체적인 행위에 적용시킨다. 윤리적 당위를 인식하는 데는 오류의 가능성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이 인식을 구체적인 행위에 적용시키는 데는 오류의 가능성이 발생한다. 바로 여기에 양심의 갈등 현상이 대두한다. 양심은 윤리적 당위의 내용을 인식하고, 그것을 구체적인 행위에 적용시키는 인간의 능력을 의미하며, 이 능력은 인식과 의지라는 두 가지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이 능력은 어원 자체가 암시하듯이 신적인 차원에까지 깊이 침투하고 있다.

   2. 양심의 존재 :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윤리의 당위를 인식하고, 그것을 구체적인 행위에 적용시키는 능력을 양심이라고 한다면,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윤리의 당위성을 부정하는 견해가 없지 않다. 윤리적 당위는 단순히 개별적인 감정, 느낌, 심미적 판단에 불과한 것이라고 하며, 그 결과 보편적인 윤리의 당위성을 인식하는 양심의 존재를 거부한다. 양심이란 단지 환상이고, 잘못된 교육의 산물에 불과한 것이라고 한다. 양심의 존재를 부정하는 견해에 직면하여, 계시진리를 포함하고 있는 성서를 중심으로 양심의 존재를 고찰해 보고자 한다.

   구약성서는 ‘양심’이라는 전문용어를 사용하고 있지 않다. 예외적으로 지혜서 17장 11절에 양심이라는 단어가 한 번 등장하고 있으나, 아마도 철학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구약성서는 양심의 현상에 대해서는 다양한 상징적 방법으로 묘사하고 있다. 예를 들면 양심의 가책 현상이 원조의 범죄 후(창세 3:7-11), 카인이 형제 아벨을 살인한 후(창세 4:10-12) 그리고 다윗에게서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아울러 구약성서는 양심이라는 전문용어 대신 마음 또는 심장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2사무 24:10, 욥기 27:6). 신약성서의 경우 공관복음과 요한복음에는 양심이라는 단어가 전혀 사용되고 있지 않은 점이 특이하다. 그러나 구약성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양심의 현상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있다. 양심의 가책현상이 유다스(마태 27:4), 베드로(마르 14:72)에게서 나타나고 있으며, 예수께서는 양심 대신 마음(심장)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계시다(마태 5:8, 마르 7:20-23, 루가 6:45).

   이와는 달리 바울로서간과 기타 서간의 경우 항상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지는 않지만 양심이라는 단어가 거의 집중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바오로 서간은 18번(1고린 4:4, 8:7 · 10 · 12, 10:25 · 27-29, 2고린 1:12, 4:2, 5:11, 로마 2:15, 9:1, 13:5, 1디모 1:5 · 19, 3:9, 4:2, 2디모 1:3, 디도 1:15), 히브리서는 5번(9:9 · 14, 10:2 · 22, 13:18), 사도행전은 2번(23:1, 24:16), 그리고 베드로서는 3번(1베드 2:19, 3:16, 3:21) 양심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물론 바울로와 그의 신약의 서간들은 양심이라는 단어를 그리스 세계의 대중철학으로부터 전수했지만 그러나 이 단어를 그리스도교적인 의미로 변형시켰다. 바울로는 자기 양심의 증명을 주장하고(로마 9:1, 2고린 1:12, 사도 23:1, 24:16), 좋은 양심(1디모 1:15), 순수한 양심(1디모 3:9, 2디모 1:3), 그리고 깨끗하지 못한 양심(디도 1:15)에 대해 반복해서 언급하고 있다. 모세율법을 지니고 있지는 않으나 그 율법의 요구를 지키는 이방인들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로마 2:15). 이로써 바울로는 양심을 모세법과 이방인들의 마음에 쓰여진 자연 윤리법을 위한 인식기관으로 이해하고 있다. 아울러 바울로성령의 작용과 신앙을 통해 신앙인들의 양심은 완전한 가치를 드러낸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로마 9:1 참조). 신앙인들에게 있어서 양심에 따라 행동한다는 것은 신앙에 의해 행동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로마 14:23 참조). 베드로도 ‘깨끗한 양심으로 살겠다고 서약하는 것…’(1베드 3:21)으로 세례를 규정지으면서, 그리스도인은 항상 깨끗한 양심을 지니고 살아야 한다(1베드 3:16)는 사실을 제시해 주고 있다.

   3. 양심의 발달과 형성 : 현대의 심리학은 인간의 양심이 여러 단계를 거쳐 점차적으로 발달하고 형성되며 그에 따라 윤리적 요구와 당위를 성취시킨다는 사실을 제시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양심은 장기간의 발달과정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양심이 발달과정의 산물이라고 해서 단순히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부과물이나 또는 우연히 습득되는 기능은 아니다. 양심은 가능성을 지닌 씨앗으로서 성숙되고 교육되어야 할 것이다.

   역사적 존재로서의 인간은 미래와 초월을 향해 자신을 개방하고 있는 한, 그는 필연적으로 윤리적인 존재이다. 궁극적이고 초월적인 의미에 대한 인간 행위의 지향은 주관적 체험에 속하는 것이고 양심은 바로 이 주관적인 체험에 관심을 기울인다. 인간은 자신의 발달과정 안에서 자신의 인격을 발달시키는 한 자신의 양심도 발달시킨다. 물론 이러한 발달이 침해를 받는다든지 아니면 양심이 잘못 형성될 가능성이 배제되는 것은 아니다. 양심의 발달과 형성에 있어서 올바른 교육뿐 아니라, 주위환경, 인간관계, 문화 등 다양한 요인들도 더불어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양심의 발달과 형성은 점차적으로 이루어지지만 어떤 고정된 법칙에 따라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인 특수 각인도 영향을 미친다. 특히 어릴 때의 어머니와의 관계가 중요하다. 신뢰사랑을 토대로 한 어머니와의 관계가 중요하다. 신뢰사랑을 토대로 한 어머니와의 인격적인 관계는 안정과 보호를 보장해 주고 좌절을 예방해 주기 때문이다. 신뢰사랑의 관계가 침해받으면 지나친 공포와 공격성이 발생하여 타인과 자신을 동일화시키는 가능성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양심의 발달과 형성의 목표는 올바르고 건전하게 작용하는 양심을 창조하는 것이다. 즉 윤리적 당위에 항상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이 당위를 올바르게 통찰하고 포착하여 완성시키는 양심을 창조하는 것이다. 윤리적 당위는 인간의 의식 속에 어떠한 반향을 일으키는지는 양심의 교육에 따라 좌우된다. 의식이 윤리적 당위를 향해 개방되어 있어서 양심의 자극에 기꺼이 응하는 상태의 양심을 깨어 있는 양심 또는 예민한 양심(conscientia vigilans et tenera)이라 한다.

   이와는 반대로 윤리적 당위에 무디게 반응을 일으키고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양심을 이완된 양심(conscientia laxa)이라 한다. 만일 윤리적 당위가 의식 속에 전혀 나타나지 않아 무감각과 마비의 상태가 계속되는 경우 이것을 마비된 양심(conscientia cauteriata)이라 한다. 이와는 달리 윤리적 요구에 지나치게 민감한 반응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 그 결과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당위를 심각하게 생각하여, 실제로 중요한 윤리적 당위가 침해를 받게 된다. 이런 경우의 양심을 응축된 양심(conscientia angusta et strica)이라 하며, 이 양심의 특수한 형태가 세심(conscientia scrupulosa)이다.

   양심의 발달과 형성은 다만 양심의 정당한 작용뿐 아니라 인식 내용의 정당성도 지향해야 한다. 양심의 인식 내용이 실제적으로 윤리적 당위와 일치할 경우 이것을 정당한 양심(conscientia recta)이라 한다. 그러나 인식의 내용은 윤리적 당위와 항상 일치 하지 않고 오류에 빠질 가능성도 있다. 이런 경우 그릇된 양심(conscientia erronea)의 현상이 발생한다. 이러한 경우 윤리적 당위는 있는 그대로 통찰되지 못한다. 자신의 잘못없이 오류를 범하거나, 오류의 사실을 깨닫지도 못해 오류의 가능성을 극복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이것을 불가항력적 오류의 양심(conscientia invincibiliter erronea)이라 하며, 오류를 극복할 수 있는 경우를 가항력적 오류의 양심(conscientia vincibiliter erronea)이라 한다. 인간은 가끔 두 가지 서로 상반되거나 아니면 두 가지 중요한 윤리적 요구를 동시에 추종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여 갈등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의 양심을 투미한 양심(conscientia perplexa)이라고 한다.

   4. 의심스러운 양심의 해소 : 오류에 대한 위험성이 없는 정당하고 확실한 양심(conscientia vecta et certa)은 무조건적인 행동의 규범이 된다. 그러나 인간은 항상 확실하고 정당한 양심에 입각해서 행동하지 못할 상황에 현실적으로 직면하게 된다. 불확실하고 의심스러운 양심(conscientia dubia)은 실천적으로 많은 어려움과 갈등을 야기시킨다. 의심스러운 양심이 발생할 경우 그 해소방법을 고찰해 보고자 한다. 우선 불확실한 행위는 명확한 결론이 나기 이전에 결정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아마도 윤리적으로 부당한 행위를 하게 될 위험이 배제되지 않고 남아 있기 때문이다. 숙고할 시간적 여유가 없고 즉시 결단을 해야 할 경우 윤리적 질서는 아마도 나쁘다고 생각되는 것을 단념하도록 요구한다. 만일 주어진 사태, 그리고 윤리적 기본명제의 적용을 통해 의심스러웠던 행위의 확실한 판단을 얻게 된다면 의심은 만족스럽게 해소될 것이다. 이러한 해소방법을 직접적인 방법이라 한다.

   그러나 의심이 항상 만족스럽게 해소되지 못한 채 결단을 내려야할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간접적인 방법이 도움을 제공할 수 있다. 이 방법은 직접적으로 문제의 해결을 시도하지 않고 경험이나 기타 유사한 경우에 일어났던 일련의 행동사례에 의존한다. 그래서 이 간접적인 방법을 ‘반성의 윤리’라고도 한다. 몇 가지 중요한 원리를 예시하겠다.

   ① 모호한 법칙은 준수되지 않아도 된다. ② 공동선을 개인의 선익보다 우선한다. ③ 현재의 점유자가 소유권을 행사한다. ④ 일반적으로 일어났던 일에 대한 의심은 어떤 특별한 의심이 있어도 평상시와 동일하게 일어난 것으로 판단된다. ⑤ 사실은 추정되어서는 안 되고 중명되어야 한다. ⑥이미 이루어진 행동에 대한 의심은 그 반대사실이 증명되지 않는 한, 유효한 것으로 추정한다. ⑦ 진상이 분명치 않을 경우 피고인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린다.

   인간은 윤리적 당위를 의식적으로 자유스럽게 성취시켜야하고, 그리고 위해서 양심의 자극을 인정해야 한다. 인간이 어떠한 이유로든지 이 양심의 자극을 인정하지 않는 곳에 첫 실수가 발생한다. 인간은 양심의 자극을 인식하는 능력을 기르고, 이 능력을 계속 유지해야 할 것이다. (⇒) 양심선언 (安明玉)

   [참고문헌] J. Stelzenberger, Syneidesis conscientia Gewissen, Paderborn 1963 / W. Heinen, Das Gewissen Sein Werden und Wirken zur Freiheit, Augsburg 1971 / K. Golser, Gewissen und Objektive Sittenordnung, Wien 1975 / J.G. Ziegler, Vom Gesetz zum Gewissen, Freiburg 1968 / G. Griesel Gewissen Ursprung-Entfaltung-Bildung, Augsburg 1970 / N. Petrilowitsch, Das Gewissen als Problem, Darmstadt 1966 / K. Hormann, Lexikon der chrislichen Moral, Innsbruck 1969 / F. Bockle 著, 성염 譯, 기초윤리신학 신학총서 제2권, 분도출판사, 1975 / 교회헌장 16항 / 사목헌장 16항 / 최창무, 사회와 양심, 가톨릭사회과학연구, 제2집, 1983.
출처 : [가톨릭대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