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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경웅◆ 인쇄

한자 吳經熊

   吳經熊(1899∼1986). 현대 중국의 법(法) 사상가. 아명은 덕생(德生). John C.H.Wu. 세례명요한. 중국 남부의 영파(寧波)에서 부유한 은행가의 2남 1녀 중 차남(次男)으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한학(漢學)을 수학하고 영파의 한향소학(翰香小學), 효실중학(效實中學)을 거쳐 1916년 상해의 호강대학(-江大學)에서 자연과학을 공부하였다. 1917년 북양대학(北洋大學)을 거쳐 동오학원(東吳學院)에 입학, 1920년 법과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미시간대학 대학원에서 법학공부를 계속하였다. 1921년 미국에서 다시 파리로 가서 파리대학교에서 법학을 연구, 이어 1923년에는 미국의 하버드대학 연구생으로 법학을 연구했고, 1924년 귀국하여 상해에서 <중국법학잡지>를 창간하는 한편 1927년 판사로, 1929년에는 부장판사로 임명되어 판사로서 명성을 얻게 되었다. 1929년 판사직을 사임하고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1년간 법학을 강의한 후 1930년 다시 귀국하여 변호사를 개업하고 1935년 월간 법학지 <천하>(天下)를 창간하였다. 1937년 만주사변의 발발로 피신, 이때 성녀 소화 데레사에 관한 책을 읽고 감동하여 감리교에서 천주교개종한 후 이듬해 홍콩으로 건너갔다. 1941년 홍콩이 일본군에게 점령되자 이듬해 홍콩을 탈출, 이후 중국의 입법원위원, 법제위원장, 외교위원장 등을 역임하면서 중화민국 헌법을 기초(起草)하고 유엔헌장의 기초에도 참여하였다. 1947년 로마 교황청 주재 중화민국 공사로 임명되었고, 1949년 교황포검시종(敎皇袍劍侍從)에 임명되었다. 1949년 하와이대학 법학교수로 부임한 이후 현재까지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다. 주요저서로 잘 알려진 ≪동서의 피안≫, ≪내심낙원≫(內心樂園), ≪정의의 원천≫ 등과 이외 다수 법학논문들이 있다.

   오경웅은 한국의 김홍섭(金洪燮) 판사, 일본의 다나까 고따로(田中耕太郞) 등과 함께 동양의 3대 법사상가로 불린다.

   [참고 : 오경웅은 1986년 2월 6일 대북(臺北) 양명산(陽明山) 자택에서 86세를 일기로 작고하였다]
출처 : [가톨릭대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