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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환◆ 인쇄

한자 李家煥

   이가환(1742∼1801). 남인학자. 성호 이익(星湖 李瀷)의 종손(從孫)이며 이승훈(李承薰)의 외숙(外叔)이 된다. 그는 당대의 대표적인 유학자(儒學者)로, 이벽(李檗)이 수표교(水標橋)에서 처음으로 서교(西敎)를 선교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슬프도다. 나도 일찍이 ≪천주실의≫(天主實義)와 ≪칠극≫(七克)을 보았는데 비록 그것이 명설(名說)이라 할지라도 정학(正學)은 아니다. 이벽이 그것을 우리의 도(道)와 바꾸려 하다니 어찌될 것인가”라고 말하면서, 토론으로 그를 설득코자 찾아갔다. 그러나 이벽의 이론에 굴복당하여 그는 오히려 그에게서 천주교 서적을 구해다 읽고 연구한 끝에 믿을 것을 결심하였을 뿐 아니라 제자들에게도 전교하고, 이벽, 권철신(權哲身), 정약용(丁若鏞)과 늘 왕래하면서 교회일에 많은 협력을 하였으므로 반대파로부터 사교(邪敎)의 교주라는 말까지 듣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입교 여부는 분명치 않고 1791년 신해(辛亥)박해 때 반대파의 모함으로 천주교인으로 몰려 체포되었다가 석방되고, 광주부윤(廣州府尹)이 된 후로는 천주교를 탄압하는데 앞장을 섰다. 그 뒤 관직이 승진되어 개성부 유수(開城府留守)가 되었으나 1795년 주문모(周文謨) 신부의 밀입국 사건으로 충주목사(忠州牧使)로 좌천되어 여전히 천주교를 탄압하였다. 그러면서도 1801년 신유박해이승훈, 홍낙민(洪樂敏), 정약용(丁若鏞) 등과 함께 사학의 괴수라는 혐의로 투옥되어 그 해 4월 8일(음 2월 26일)에 60세로 옥사하였다.
출처 : [가톨릭대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