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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어, 외국어, 관련어, 문장으로 검색하세요. 예)부활,사순 시기, liturgy, Missa, 천사와 악마, 종부성사, 그리스도의 탄생,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 등

◆종말론◆ 인쇄

한자 終末論
라틴어 Eschatologia
영어 eschatology

   종말론은 신학에서 인생과 세계의 ‘마지막 사건들’(exchata)을 취급하는 부분이 에스카톨로지아(Eschatologia)의 서투른 번역이다. 금세기 중엽까지 신학교본들은 그 끝 부분에서 인간의 종말적 사건인 죽임, 심판, 천당, 연옥, 지옥에 관하여, 그리고 세상의 종말적 사건인 그리스도의 재림, 공심판, 세계의 경신 등을 논술하는 ‘데 노비시미스’(De novissimis)라는 분야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교본들의 경향이 장래에 도래할 이러한 사건들에 대하여 성서의 단편적 제시와 추리에 의하여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근래에는 구세사 자체를 종말론적으로 관찰한 후에 비로소 개별적 종말사건들을 다루는 방향전환을 모색하고 있으므로 종말론은 아직 형성도상에 있는 분과학문이라고 볼 수 있다.

   1. 구약의 종말 사상 : 고대 유태인들의 관념에 의하면, 인간생명(nephes)은 단순히 존재한다는 뜻이 아니고 살아서 활동하는 모든 작용을 포함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인간이 죄의 벌로서 죽을지라도(창세 2:17) 인간존재는 계속되는 것이었다. 죽은 사람들은 셰올(Sheol, 저승, 명부, 下界)에 있는데(창세 37:35, 42:38, 민수 16:29 · 33) 셰올은 땅 밑에 있고 어둡고 쓸쓸한 곳이며, 세상의 축소판이거나(1사무 28:14-19) 세상과는 관계없는 망각과 무위의 상태이거나(욥기 14:21, 집회 9:5) 하느님께 버림받은 곳(시편 88:6)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현세에서의 상선벌악(賞善罰惡)에 관한 전통적 인식이 개개인의 경험에 비추어 맞지 않는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하느님정의와 개인의 운명과의 상충현상에 대하여 고민하는 모습이 바빌론 유배를 전후하여 역력히 드러난다(욥기, 지혜문학). 유배에서 돌아와서부터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심이 영성화하는 과정에서 하느님정의가 실현되고 그 정의대로 인간이 인과응보를 받으려면, 살아서 뿐 아니라 죽은 다음에라도(인간의 존재는 계속되기 때문에) 적절한 응보가 있어야 하느님정의가 달성될 것이라고 생각하여 영혼불멸과 육신부활사상이 움트고 있었으며, 의인은 영원히 하느님과 함께 있기를 바라면서 후기 지혜문학과 묵시문학에서 종말론적 테마가 계시되고 있다.

   유태인들의 본래의 전통은 영혼 · 육신을 갈라서 생각하지 않았기에 사람의 불멸을 바라는 생각에는 자연스럽게 인간부활을 포함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헬레니즘 시대의 저술인 지혜서에는 영혼 · 육신을 구별하여(지혜 9:15) 영혼의 불멸성을 의인의 상급으로 인정하고(지혜 2:22, 3:1-4, 4:14) 악인의 영혼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묵시문학적 저서인 다니엘서는 “티끌로 돌아갔던 대중이 잠에서 깨어나 영원히 사는 이가 있는가 하면 영원한 모욕과 수치를 받을 사람도 있으리라”(다니 12:2)하면서 부활을 시인하고 있다. 마카베오 후서는 부활과 영생에 대한 믿음으로 죽은 이를 위하여 기도하고 있다(2마카 6:26, 7:9, 11.14. 23, 14:46).

   야훼께서 전능을 발휘하시어 이스라엘의 원수들을 징계하시는 것을 ‘야훼의 날’(아모 5:8, 이사 28:14, 미카 1:2)이라 하는데, 이러한 심판이스라엘에게도 적용될 수 있고(예레 15:22, 에제 12장), 이스라엘의 원수들에게도 작용된다(스바 2:4-15, 이사 13장, 34장). 그러나 유배에서 돌아온 이스라엘은 그들의 최후의 승리 즉 ‘야훼의 날’은 세상의 종말에 올 것으로 인식하기 시작하였다. 이 날은 야훼의 전능으로 심판하시는 날이며(말라 3:20) 야훼께서 진노하사 세상을 진멸하시는 날이다(스바 1:14-18). 그리스도 직전 시대의 위경들에도(헤녹스, 모세 승천기, 제4에즈라서) 심판에 관한 사상이 뚜렷하다.

   2. 신약의 종말사상 : 예수시대의 대부분의 유태인들은 의인은 죽은 후에 낙원(Eden)에서 상을 받고 악인은 지옥(Gehenna)에서 벌을 받는다고 믿었고, 예수도 같은 사상을 표명하고 있다. 거지 라자로와 부자의 이야기(루가 16:22-26), 우도에게 낙원약속(루가 23:42-43), 스캔들을 경고하심(마르 9:43-48) 등 외에도 여러 번 내세의 응보를 말씀하셨다(마르 4:19, 10:30, 마태 12:32, 13:39-40, 루가 16:8, 18:30, 20:34). 부활을 믿지 않는 사두가이파에 대하여 부활을 강력히 주장하셨고(루가 20:34-36, 마태 22:30-32, 미르 12:25-27), 부활인간천사와 비슷하다고 하셨으며(루가 20:35-38), 영생을 위한 부활뿐 아니라(루가 14:14,요한 6:39-40), 심판을 위한 부활도 주장하셨다(요한 5:29). 심판에 관해서 하신 선언에는(마태 13:39-43 ,24:30-31, 25:31-46, 26:64) 심판관이 인자(人子)이신 당신 자신이라 하셨고(요한 5:22, 23:27), 심판의 광경은 구약의 묘사와 비슷하다.

   성전파괴를 예언하면서(마태 24:1-2, 마르 13:1-2, 루가 21:5-6) 그리스도의 재림세상의 종말을 예언하였는데, 마태오는 내림이라 하고 마르코는 종말이라 하고 루가인자의 날이라 한다. 내세의 상급은 영원한 삶이요(루가 14:14, 마태 13:43), 잔치요 통치이다(루가 22:16-18, 마태 14:25). 내세의 처벌인 지옥은 지독하고 영구하다(루가 12:58-59, 마태 5:25:26, 18:34-35). 그러나 영생과 영벌을 표현하는 잔치나 불은 상징적인 것이다. 세계의 경신에 관한 주님의 말씀은 불분명하다. 경신인지(마태 19:28) 멸망인지(루가 21:23)뚜렷하지 않다.

   열렬한 바리사이파였던 바울로는 유태인의 종말관에 의한 메시아를 고대했으나, 개종하여 예수를 이미 오신 메시아로 인정했기에 심판을 위해서 재림하실 그리스도를 기다린다. 유태인들에게는 악한 세상메시아 왕국이 공존할 수 없으나, 그리스도 교인에게는 이 두 개의 세상은 현세에 공존하고 있다. 그리스도 교인은 예수로 말미암아 이미 구원되어 암흑의 세계에서 광명의 세계로 옮겨졌으나(갈라 1:4, 1고린 11:32, 골로 1:13, 에페 5:8, 6:12) 우리가 살고 있는 현세는 사탄과 그 세력들과 투쟁해야 될 세상이므로(2고린 4:4, 에페 2:2, 골로 2:20, 갈라 4:9) 구원의 완성은 종말에 있다(골로 2:19, 에페 4:15-16).

   개인의 종말에 관한 바울로의 관념은 당시의 유태인의 생각 그대로이니 죽음, 부활, 영생에 관하여 여러 번 언급하였다(사도 23:6, 26:6-8, 필립 1:21-23, 2고린 5:1-3). 특히 고린토 전서 15장과 데살로니카 전서 4-5장에서 부활재림심판에 대해서 상세히 언급하였다. 우리 부활의 가능성은 그리스도의 부활로써 증명되었고(1고린 15:3-8, 21-22, 1데살 4:14), 부활한 육신은 불멸성과 열광과 능력을 가진 영신적 몸으로 변할 것이다(1고린 15:42-22). 심판에 관한 그의 증언은 전통적 유대이즘을 반영하고 있다. 심판은 ‘주의 날’이고(1고린 5:5, 2고린 1:14) 그리스도께서 심판하시며(1데살 3:13, 2데살 1:7, 로마 2:15) 죄와 죽음을 극복하시고(1고린 15:54-56) 만물을 굴복시키시어(1고린 15:25-27) 구원하신 세상성부께 바치실 것이다(1고린 15:28). 바올로는 그리스도의 강생구속으로 시작된 은총의 세계(현세)와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확정될 영광의 세계(내세)의 연속성을 강력히 주장한다. 세례로써 받은 하느님의 자녀다운 영광은 계속 발전하여 영생에로 연결된다(1고린 13:8.13, 로마 8:21).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이미 구원되었으나(에페 2:5.8, 1고린 1:18, 로마 1:16, 7:24) 천상 영광 중에 완성될 것이니(2디모 2:10, 4:18, 1고린 5:5) 우리의 신앙은 종말지향적인 것이다.

   신약의 기타 서간에서도 바울로와 비슷한 종말관을 보여준다(1베드, 히브리서). 묵시록은 묵시문학적 수법으로 이미 도래한 하느님의 나라와 사탄의 세력과의 투쟁을 묘사하고 하느님의 나라가 최후의 승리로 장식된다는 역사신학을 전개하고 있다. 그러나 묵시문학의 특성인 상징성과 탈시간적인 묘사로 인하여 체계적인 재래식 종말론을 구성하려는 모든 시도는 실패하게 마련이다.

   3. 종말론의 재검토 : 신학은 오랫동안 성서의 단편적 증언을 토대로 하여 미래 세계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자 하였다. 언제 어떻게 심판이 이루어질 것이며, 천당 · 지옥이 어디에 있고 그것이 얼마나 좋고 얼마나 흉한 것인지 알고자 하였으며, 심지어 원죄도 사하지 못하고 본죄도 없는 사람은 천당에도 못 가니 이들이 있을 곳으로 임보(limbus)를 상상해 보기도 하였다. 결과적으로 인생과 세상의 종말에 관하여 신학은 성서보다도 더 많은 알고 더 많이 가르친다는 묘한 아이러니가 성립되고 말았다. 19세기말부터 자유 프로테스탄트들이 그리스도교에서 모든 초자연적 신비적 요소를 자연과학의 이름으로 배척하여 심판, 천당, 지옥그리스도교신비들을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러한 경향에 대하여 바르트(K. Barth), 브룬너(E. Brunner), 볼트만(R. Bultmann)이 강력히 반발하여 실존적인 종말론의 재검토를 주장하였다. 가톨릭도 2차 세계대전 때부터 종말론을 재검토하기 시작하였다. 아직 모색단계에 있는 새로운 종말론의 중요한 방향을 살펴보기로 한다.

   ① 구세사 자체를 종말론적으로 본다. 그리스도교하느님, 인간, 세계 등에 관한 존재론적 체계만이 아니고 구세사의 정점인 그리스도 안에 과거가 수렴되고 미래가 내포되는 하느님구원의 경륜이다. 그래서 그리스도교역사초월하면서도 역사 안에 실존한다. 그래서 종말론은 미래의 사건들을 예상하여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러한 종말사건들이 현재의 그리스도인의 존재양상을 규정하고 지도하고 해석하고 있다는 현실을 설명하고자 한다. 성서가 말하는 마지막 때는 우주의 물리적 종말의 때가 아니고 그리스도의 빠스카 이후시대이며, 이때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구원은 ‘이미’(jam) 주어졌으나 그 완성은 ‘아직’(nondum) 오지 않았으므로 이 ‘이미’와 ‘아직’의 변증법적 긴장 안에 그리스도인의 실존이 있고 현세교회의 존재양상이 있다.

   ② 종말사건에서 종말 자체에로 지향한다. 이 말은 미래사(未來事)의 종말에서 종말사(終末事)의 현재화(現在化)로 관심을 집중한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미래에 올 개개의 사건에 대하여 호기심을 부리는데 그치지 않고, 그러한 종말사건들의 알파요 오메가이신 하느님 자신에게로 관심을 집중시킨다는 뜻이다. 그러려면 우리가 종말사건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우주론인간학적 관념에서 벗어나서 탈시간적 탈공간적 천당 · 지옥의 관념을 가져야 하고, 그것이 미래의 사건이 아니라 현재하는 절박한 결단과 참여를 요구하는 실존적 현실임을 의식해야 한다. 천당 · 지옥인간이 죽은 다음의 문제가 아니고 지금 당장 나의 문제라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르스 폰 발다살은 아우구스티노를 인용하면서 “하느님 자신이 창조의 목적이다. 하느님은 그를 얻는 자에게 천당이요, 그를 잃는 자에게 지옥이요, 그가 조사하는 자에게 심판이요, 그가 정화하는 자에게 연옥이다” 하였다.

   우리는 성서가 증언하는 심판, 천당, 지옥에 관한 교회의 도그마를 다 믿으면서도 그 도그마의 우주론인간학적 표현에 대해서는 재해석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또 지금까지 우리가 그런 것들에 대하여 안다고 착각하였던 것보다 훨씬 적게 알고 있다는 것을 시인해야 된다. 고딕 시대나 바로크 시대의 의인화(擬人化, anthropomorphic)된 묘사들은 신학적으로 별반 가치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종말에 관한 계시는 깊은 신비의 장막으로 싸여 있고, 종말론은 신학의 분야 중에서 가장 덜 천착된 분야이다. (鄭夏權)

   [참고문헌] G. Hoffmann, Das Problem der letzten Dinge in der neueren evangelischen Theologie, 1929 / K. Rahner, Theological Investigations, Ⅳ, 1966 / A. Michel, Les mysteres de l'Au-dela, 1953 / B. Besret, Incarnation ou eschatologie?, Paris 1964 / J. Danielou, Christologie et Eschatologie, in A. Grillmeier and H. Bacht, eds, Das Konzil von Chalkedon, 3 vols. 1951∼1954.
출처 : [가톨릭대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