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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칼◆ 인쇄

원어명 Pascal, Blaise

   Pascal, Blaise(1623∼1662). 프랑스의 수학자, 물리학자, 그리스도교 사상가. 클레르몽에서 태어나 파리에서 죽었다. 사법관의 아들로 3세 때 모친을 여의고, 부친의 사직(辭職)과 동시에 파리로 이주하였다. 어려서부터 비상한 재능을 보야 12세 때 혼자 힘으로 유클리드기하학 정리 32까지 생각해냈다고 한다. 부친의 친구인 수학자 데자르그(Gerard Desargues, 1593∼1662)의 영향을 받고, 16세 나이로 유명한 ≪원추곡선 시론≫(Essai pour les coniques, 1640)을 썼다. 1639년 부친의 복직으로 일가는 루앙(Rouen)에 이주하였다. 계산기를 발명, 1648년에는 파스칼의 원리(수압기의 원리)를 발견, 그 후에도 1654년부터 1658년 사이에 수학분야에서 정수론(整數論), 확률론, 적분법에 관한 많은 발견을 하였다. 이러한 과학연구와 함께 가족 모두가 얀센주의 신앙을 믿어, 1646년에 그 자신도 ‘제1차 회심(回心)’을 체험하였다.

   1650년 일가는 다시 파리로 옮겨, 그는 사교계의 교양있는 인사들과 접촉, 인간완성의 이상을 추구, 문학자로서의 자질을 연마하는 동시에 수학적 사색에 더욱 몰두하였다. 그러나 이 세상의 삶과 신앙과의 모순에 관해 내면적으로 심각한 고민에 빠진 끝에 마침내 1654년 11월 결정적 회심이라 일컬어지는 이상한 신비적 체험을 가졌다. 이 체험에서 그는 사람의 아들이자 신(神)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인격적 종교적인 신앙 속에 가장 확실한 것을 얻었다고 믿었다. 그것은 합리적 확실성을 초월한 감정 · 의지 등 전인적(全人的) 활동을 감싸고 충만케 하는 확실성이었다. 누이동생 자클린(Jacqueline)에 뒤이어 1655년 포르르와얄(Port Royal) 수도원의 객원(客員)이 되어, 성서교부의 연구에 몰두하였다. 얀센주의에 공명하는 이 수도원은 당시의 예수회로부터 수도원장 아르노(A. Arnauld)를 비롯해 심한 공격을 당했고, 결국 얀센주의는 이단 판결을 받았다. 파스칼은 아르노의 위촉을 받고 1651년부터 1657년까지 연달의 익명의 공개장 ≪시골사람들에게 보내는 편지≫(Lettres crites a un provincial)를 발표, 처음에 은총에 관한 신학문제를 논하고, 이어서 예수회의 파성적이고 부패된 도덕을 규탄해서 크게 인심을 동요케 하였다. 이 서한은 문학사적으로 근대 프랑스 산문의 모범으로 손꼽히는 명문(名文)이다. 이보다 앞서 그는 과학적 사대정신(회의주의, 이상주의, 수학)과 그리스도교 신앙을 대결시키는 그리스도교 변증론의 구상을 짜기 시작하였으나, 이 저술은 완성을 못보고 단편적 초안만 남겨졌다. 이것이 유명한 수상록 ≪팡세≫(Pensees sur la region)이며, 그가 별세한 후에 출판되었다. 또한 1658년에는 ‘나선(螺旋)’의 문제에 관한 사색을 했고, 미적분학(微積分學)을 발표하여 훗일의 라이프니츠 미적분학의 선구(先驅)가 되었다. 만년에는 지병(持病)에 시달리면서 고뇌 속에 사색을 계속하였다.

   사상사적으로 그의 업적을 생각해 보면, 르네상스 이래로 일어난 근대 자연과학, 인문주의적 인간 형성, 종교개혁운동을 계기로 대두된 아우구스티노적 종교사상 등 세 가지를 계승 발전시켰는데, 이것은 그가 수립한 3개의 질서(물체 · 정신 · 자애)에 각각 자리를 잡을 수 있다. 그는 도덕가로서 개아(個我)의 완성사상을 추구했는데, 이것은 이 3개 질서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단순한 인간중심주의의 오류에 빠지지 않는다. 자연 · 인간 · 신의 문제가 저마다 실재성을 드러내면 전개되고 있다. 자연과학에 있어서 그는 스콜라적 자연학이나 데카르트자연학에 대해, 갈릴레이에서 뉴턴으로 발전하는 근대적 실증적 자연과학 계열에 있으며, 인간문제 있어서는 데카르트적 합리주의에 대해 주체적 고찰방법에 의해 후세의 실존적 사유(思惟)를 예시(豫示)하였다. 종교문제에 있어서는 스콜라적 주지주의적인 교의학 및 윤리학을 타파하고, 의지결단과 내면성을 중시하는 근대 · 현대 가톨릭시즘의 선구를 이루고 있다. 그는 르네상스 인문주의의 뒤를 잇는 프랑스 도덕가의 한 사람이지만, 그 인간완성은 인간자연적 능력에 내재(內在)하지 않고 하느님의 초자연적 관계에서 실질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 <심정설>(心情說)에 있어서 베르그송(H. Bergson) 등의 사상적 선구가 되고 있다.
출처 : [가톨릭대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