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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부활,사순 시기, liturgy, Missa, 천사와 악마, 종부성사, 그리스도의 탄생,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 등
◆교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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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敎會史
라틴어
historia Ecclesiae
영어
history of Church
가톨릭 교회의
역사
는 30년경
유태교
의 축제일인
오순절
에
성령
을 받은 사도들이
베드로
를 중심으로 군중 앞에 나아가 예수의
부활
을 증언하면서 구약의
메시아
(구세주)에 대한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다는 복음을 선포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이러한
복음 선포
를 경청하여 받아들인 이들이 사도들을 중심으로
사랑
과 일치의
공동체
를 형성하셨다. 초창기
그리스도교
공동체
는 할손례,
정화
례,
안식일
등의 유태인의 종교적 의무를 성실하게 준수하는
유태교
종파
중의 하나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초대 교회의
신자
들은 특수한
공동체
를 이루고 고유한
신앙
생활을 하면서
베드로
를 대표로 하는
사도단
과 그 밑에
야고보
를 중심으로 하는
장로
단과 스테파노를 지도자로 하는
부제
단이 구성 되었다. 사도들의 열성적
선교
활동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복음은
예루살렘
밖으로 전파되었다. 이 때
그리스도교
공동체
는 두 그룹이 공존하였는데, 하나는 아직도 엄격한 유대 사상을 보존하면서 실천하던 유대지방의
예루살렘
교회,
갈릴래아
교회,
사마리아
교회, 요르단강 서안 지역의 교회 등 유대계
그리스도교
공동체
이며, 다른 하나는
시리아
의 다마스커스 교회와 안티오키아 교회,
로마 교회
등 이방계
그리스도교
공동체
로서 이는
개종
한 그리스인, 헬레니스트, 기타
비유
태인으로 구성되었다. 그러나 과격한 유대 민족주의의 등장과
바울로
사도의
선교
활동으로 이방계
그리스도교
공동체
는 성장하였고, 70년
예루살렘
의 멸망 후에 유대계
그리스도교
공동체
는 쇠미하였다.
2세기에 이르러 12사도들이 모두 사망함으로써
계시
의 사도시대가 끝나고 사도들로부터 물려받은
신앙
을 후시대에 전달하는 사도후시대(100~300)가 시작되었는데 이는 다시
사도교부
시대(100~150),
호교교부
시대(150~200), 초대교부시대(200~300)로 구분되고 있다. 이 시대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로 교회
관습
은 아직도
유태교
적 또는 유대계
그리스도교
적 색채를 띠고 있었다. 둘째로
교계제도
가 최종적으로 확립되어
주교
,
장로
(신부),
부제
등의 세 성직계급이 등장하였다. 넷째로
그리스도교
의 복음이
로마제국
의 영토 확장에 따라서 널리 전파되어 교세가 급속적으로 성장하였다. 다섯째로 이러한 교세 확장으로
그리스도교
는
로마제국
의 황제들에게
정치
적 불안감을 안겨 주어 200년간의
박해
를 받았다.
4세기 초에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등장으로
그리스도교
에 대한
박해
는 종식되었고, 313년에
밀라노칙령
을 통해서
그리스도교
는
신앙
의 자유를 얻었으며 국가의 보호를 받았다. 이후로
그리스도교
는
로마제국
의 황제들의 호의적 도움을 받으며 세계적 종교로 성장하였다. 마침내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392년에 포고령을 통해서
그리스도교
를
로마제국
의 국교로 선포하였다. 이러한 국교 시대를 맞이하여
그리스도교
는 여러 분야에서 발전하였다. 첫째로
수도원
이 창설되어 발전하면서
수도생활
은 일반
신자
들의
영성
강화에 도움을 주었다. 둘째로
공의회
가
그리스도교
의 주요한 조직으로 등장하여 교회의 모든 현안문제를 해결하거나 결정하였다. 셋째로
신앙
생활의 활성화와 함께
전례
가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그 밖에 국교 시대에
그리스도교
는 정통과
이단
사이의 격렬한
교리
논쟁으로 분열되었다. 당시의
신학
적 쟁점은
천주
성삼(삼위일체), 그리스도,
인간
의
구원
에 대한 문제였다. 그러나
교리
논쟁은 일련의
공의회
를 통해서 해결되어 최종적으로 정통 가톨릭
교리
가 정립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5세기 중반기에 국경지대의 게르만민족이 이동하면서
로마제국
을 멸망시키자
그리스도교
자체도 붕괴될 위험에 처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 속에서 교회는 본래의 사명인
선교
의 열의를 잃지 않고
유럽
세계의 새 주인으로 등장하는 게르만민족을
개종
시켰다. 특히 서부 게르만 계통의 프랑크족의
개종
은
유럽
사에 있어서
정치
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또는 종교적으로 중요한 사건이었다. 그것은 고대 그리스 문화권과 게르만민족이 융합하여 새로운 중세 문화를 탄생시켰고,
유럽
의 여러 국가들이 고유한 민족적 특성을 지니면서 같은
신앙
위에서 일치된 중세기
그리스도교
회의
기원
이 되었다.
게르만민족의 이동과 프랑크왕국과
교황청
의 융합이라는 과도기(450~750)를 거쳐서 시작되는 중세기(750~1300)는 시대적으로 양분될 수 있다.
중세 전기(750~1054)에는 프랑크왕국을 중심으로 서구
그리스도교
제국이 창설되었고 종교적 입장에서는
그리스도교
교세의 확장과
교황령
의 탄생 등의 외적 발전이 이룩되었다. 그러나 교회가 국가로부터 물질적 혜택을 받은 반면에 황제의 내정 간섭을 받아 교회의 세속화와 교권의 약화를 초래하였다.
교회와 국가
가 밀착된 관계로 프랑크제국의
정치
적 붕괴는 교회의
권위
와 교황의
권한
이 쇠퇴하는 교회의 암흑기(880~1046)를 탄생시켰다. 암흑기 동안에 그리스토교는 처음에(800~962) 로마 귀족의 지배를 받았고, 후에는(962~1046)
독일
신성
로마제국
황제의 교회 내정 간섭으로 자율권을 상실하였다. 아울러
교리
논쟁 이후로 서방 라틴 교회와 동방 비잔틴교회가 각기 다른 노선으로 발전하였다. 8세기에
동방 교회
는
성화상
파괴 논쟁을 통해서
서방 교회
와
신학
적 충돌을 하였고 1054년에 두 교회는 완전히 결별하였다.
중세 후기(1054~1300)에는 클뤼니 수도단체의
개혁
과 교황
그레고리오 7세
(재위 : 1073~1085)의 교회쇄신으로 교회는
세속권
의 지배에서 벗어나 자주권을 회복할 뿐 아니라
세속권
을 지배하는 시대에 들어서게 되었다. 두 가지
개혁
운동은
성직자
와
수도자
를 각성시켰고
평신도
의
영성
강화
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이는 11세기에 시작된
십자군
운동과
청빈
운동에서 나타났다.
십자군
운동은 기사
수도회
의 탄생과 서구의 비잔틴문화와 이슬람문화의 접촉을 가능케 함으로써 학문, 특히
스콜라철학
과
신학
과 예술의 발달에 이바지하였다.
청빈
운동은 교회의 생활 혁신을 불러 일으켰으나 지나친 주장은
이단
으로 변질되었으며 이러한
이단
운동을 저지하기 위해서 부정적 방법으로 종교재판이 생겨났고 긍정적 입장에서
탁발수도회
가 창설되었다.
탁발수도회
는
이단
자의
개종
과
선교
활동 이외에 13세기에 설립되기 시작한 대학에서 학술활동을 통해서 문화 발달에 공헌하였다.
14~15세기(1300~1500)에 있어서
유럽
의
그리스도교
세계는 중앙집권의
정치
체제 또는 지방 분권화의
정치
적 상황으로 단일성을 상실하였다. 또한 교회는 일련의 불행한
대사
건, 즉
교황청
의 아비뇽 천도와 대분규(서구의 대이교)로 인한 교황권의 약화로 말미암아
공의회
우위사상의 흐름 속에서
이단
운동이 발생하여 혼란 속에 빠졌다. 더욱이
신학
적
자유주의
는
신학
의 불확실성시대를 초래하였고, 이는
신학
자들의 대립과 이에 따른
신학
의 쇠퇴를 가져왔다. 교회생활에 있어서도 일부
르네상스
교황들은 문화적 업적을 쌓았지만 그들의 시대적 사명, 즉 교회
쇄신
작업에 소홀하였으며 귀족 출신인 고위
성직자
들도 그들의 영신적 사명을 망각하였다. 한편 일반 대중의
신심
생활은 매우 활발하였으며, 이는 수많은
성당
의 건립,
자선
활동,
신심
서의 보급 확대,
모국어
성서의 번역, 새로운
신심
의 번창(로사리오
기도
,
십자가의 길
,
삼종
기도
,
성지
순례
및
성인
과
성해
공경)에서 발견된다. 그러나 이 시대의
신심
은 개인주의적 특성을 지니고 있었고 현세적 두려움을 피하고 물질적
이익
을 추구하는데 치중하여
미신
적 요소를
내포
하고 있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으로 인해 교회 안에서 비난과 함께
개혁
을 요구하는 소리가 높아지기에 이르렀다.
1517년 10월 31일
독일
의 성
아우구스티노
은수사회의
수사
신부
이며,
성서
학 교수였던 마르틴
루터
는
대사
남용에 대해 항의하면서
대사
교리
의 재정립을
제의
하기 위해 그의
교구장
과 동료 교수 ·
신부
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이 편지에는 유명한 ‘95개조항의
신학
명제’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것은 전통신앙의 기저를 뒤흔들어 놓았으며
그리스도교
계를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로 분열시키는 종교
개혁
시대(1500~1650)를 열었다. 프로테스탄트에서는
독일
의
루터
종교
개혁
을 위시하여
스위스
에서는 츠빙글리의
종교개혁
과 칼빈의
종교개혁
, 그리고
재세례파
의 급진적
종교개혁
이 일어났고,
영국
에서는 국교회가 탄생하였다.
한편 가톨릭도 15세기초부터 교회
쇄신
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고 그 실현을 위한 움직임을 보이던 중에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
의 자극을 받아 교회
개혁
에 박차를 가하였다. 콘스탄스
공의회
(1414~1417년)와 바젤
공의회
(1413~1491년)에서 교회
쇄신
에 대한 문제가 논의되었고,
르네상스
교황들도 산발적으로 교회
개혁
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모두 좌절되거나 시행되지 못하였다. 그것은 교황들과
교황청
에 이를 시행할 만한 내적 및 종교적 역량이 결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교회
쇄신
을 위한
공의회
의 개최를 요구하는 소리가 높아졌으나 교황
클레멘스
7세(재위 : 1523~1534)는
공의회
소집을 주저하였다. 그 이유는 교황이
공의회
주의, 즉
공의회
우위 사상의 재등장을 우려하였고
교황령
에 대해 더욱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1527년 5월에 발생한 ‘로마의 함락’ 사건은 교황 바오로 3세(재위 : 1534~1549)에게 교회의 반성과
개혁
이 필요하다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 몇
차례
의 연기를 거쳐 1545년 12월에 가톨릭의 교회
쇄신
공의회
는 트리엔트에서 개최되었다. 트리엔트
공의회
(1545~1563년)는 퇴락된 교회에 대해 반성하면서
신앙
과
교리
를 재정리하고 교회 규율을 혁신하였다.
공의회
이후에
가톨릭 교회
는 교황 중심의 강력한 중앙집권체제가 성립되면서
교황청
을 중심으로 지방 교회와
수도원
에서 교회
쇄신
에 착수하였다. 트리엔트
개혁
정신은
선교
활동에서도 나타났다.
종교개혁
이전까지 ‘유럽의 종교’로 머물러 있었던
가톨릭 교회
는 교회
쇄신
의 일환으로 이베리아반도의 가톨릭 국가인
포르투갈
과
스페인
의 신대륙 탐험을 통해서 세계
선교
에 나섰다. 프란치스코회와
도미니코
회 등의
수도회
와
예수회
는
아프리카
, 아메리카, 아사아에서
선교
활동에 종사하였다. 이제
가톨릭 교회
는 동서양에 걸쳐 엄연히
존재
하는 세계적 종교가 되었다.
그러나 17세기 후반기에 이르러
유럽
에서
가톨릭교회
는 여러 측면에서 도전을 받았다. 첫째로
정치
적인 면에서 국가지상주의와 이에 따른 국교회 사상은 특히
프랑스
(갈리아주의),
독일
(페브로니오사상),
오스트리아
(요셉주의)에서
가톨릭 교회
를 괴롭혔다. 둘째로 종교적 측면에서 외적으로
경건주의
와 엄격주의를 내세우면서 내면으로는 가톨릭 정통
신학
을 반대하던
이단
운동인
얀세니즘
은 교회를 혼란 속에 빠뜨렸다. 셋째로 사상적 측면에서 근세의 새로운 사상으로 등장한
계몽주의
는
신학
적 합리주의를 탄생시켜
자연종교
, 이신론, 종교적 보편주의는 가톨릭신학에 전면 도전하였다.
마침내 19세기에 이르러
계몽주의
는 외적으로
프랑스
대혁명을 일으켜
가톨릭 교회
는
프랑스
,
독일
,
이탈리아
등 일부
유럽
지역에서 그
권위
를 상실하였고 세속화되었다. 그러나 교회의 세속화는 교회가 자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
교황청
과 지방 교회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교황청
의 승리를 안겨 주었다. 교회는 반가톨릭적 국가에서 단결되었고 국가지상주의와 국교회 사상에 강력하게 도전하는 운동(교황지상주의)을 일으켰다. 그러나 19세기 후반기에 일어난 가톨릭
자유주의
는 교회를 내적 혼란 속에 휩싸이게 하였으나
신앙
오류표(Syllabus)의 반포로 인해 외적으로 평온에 들어갔다. 또한
제1차
바티칸
공의회
는 교황의
수위권
과 무류권에 대한
신조
결정으로 분열되어
독일
에서는 ‘구가톨릭 교회’가 떨어져 나갔으며 이른바 ‘문화 투쟁’으로 교회는 일시적으로 난관에 봉착하였으나 가톨릭인의 단합으로 결국은 승리하였다.
제1차
바티칸
공의회
는 상처받은 교황의
권위
를 회복하였으며
가난
해진 교회는 근로대중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교황
레오
13세(재위 : 1878~1903)는 1891년에 ‘가톨릭
사회
주의의 대헌장’ 또는 ‘노동헌장’이라 불리는 칙서 <새로운 사태>를 반포하여 근로 대중을 위한
사회
의 개선을 요구하였다. 이 칙서는 널리 유포되기 시작한 마르크스의
사회
주의운동을 어느 정도 저지하고
그리스도교
노동조합을 창설, 발전시키며 가톨릭 정신이 구현되는
사회
를 이룩하기 위한
그리스도교
적
정당
을 탄생시켰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가톨릭 교회
는 새로운 모습을 갖추기 시작하였다. 우선
성직자
중심의 교회 체제에서 벗어나
평신도
의 지위와 사명이 부각되었으며 ‘평신도
신학
’이 정립되어
성직자
와
평신도
가 교회에 대해 함께 책임을 지는
그리스도교
공동체
로 전환하였다. 그리고 20세기
가톨릭 교회
의 중요한
역사
적 사건은 교황
요한 23세
(재위 : 1958~1963)가 소집하여 교황
바오로 6세
(재위 : 1963~1978)가 마무리 지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1962~1965년)이다. 1959년에 교황
요한 23세
는 교회를 내적으로
쇄신
하고 외적으로는 문호를 개방하여
그리스도교
세계의 일치를 촉진하기 위해
공의회
를 소집하고
교회법
을 개정할 것을 선포하였다. 이 계획은 3년 동안의
공의회
에서 진지하게 논의되었으며, 1983년에 새로운
교회법
이 선포되어 1984년에 발효하게 되었다. 오늘날
가톨릭 교회
는 급변하는 현대 세계에
적응
하는 정책을 수립하여 시행하는 동시에 다른
그리스도교
와의 일치를 위해서 계속 노력하고 있을 뿐 아니라 비그리스도교 종교들과도 폭넓은
대화
의 길을 모색, 진행하고 있다.
폴란드 출신의 교황인
요한 바오로 2세
(재위 : 1978~ )의 등장은
가톨릭 교회
의 획기적 사건이었다. 455년 동안의 전통을 깨뜨리고
이탈리아
인이 아닌 교황이 선출되었다는 사실은 현대
가톨릭 교회
의 세계화와 더불어 미래 세계를 향한 교회의 획기적 방향을 추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金聖泰)
[참고문헌] Louis J. Rogier, Roger Aubert, M. David Knowles(edd.), Christian Centuries: A New History of the Catholic Church, v.5, London, New York 1964 / Thomas Bokenkotter, A Concise History of the Catholic Church(rev.), New York 1979 / Williston Walker, A History of the Christian Church, revised by Robert T. Handy(3rd ed.), Edinburgh 1976 / Kenneth Scott Latourette, A History of Christianity, 2vols. (rev.), New York, Evanston, San Francisco, London 1975 / Owen Chadwick(ed.), The Pelican History of the Church, 6vols, Harmondsworth 1967-1971 / J.B. Duroselle, E. Jarry(edd.), Histoire de l'Eglise depuis les origines jusqu'a nos jours, 26vols. Paris 1938-1963 / Charles Poulet, Histoire de l'Eglise, 3vols. (rev.), Paris 1959-1962 / H. Daniel-Rops, Histoire de l'Eglise de Christ, 10vols. Paris 1948-1968 / K. Bihlmeyer, H. Tuchle, Kirchengeschichte, 3vols.(18th ed.), Paderborn 1962-1966 / Hubert Jedin(ed.), Handbuch der Kirchengeschichte, 6vols., Freiburg i. Br., Basel, Wine 1962-1971 / Joseph Lortz, Geschichte der Kirche in ideengeschichtlicher Betratung, 2vols.(21th rev.), Munster 1962-1964 / August Franzen, Kleine Kirchengeschichte(3rd ed.), Freiburg i. Br., Bacel, Wien 1970 / 최석우 역, 敎會史,
분도출판사
, 1982.
출처 : [가톨릭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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