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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명 Daveluy, Marie Antoine Nicolas

   Daveluy, Marie Antoine Nicolas(1818~1866). 순교자. 성인. 한국명 안돈이(安敦伊). 파리 외방전교회원. 주교. 조선교구 제5대 교구장. 프랑스 아미앙(Amiens)에서 태어나 이시(Issy)와 생슐피스(Saint-Sulpice) 소신학교를 거쳐 1841년에 1년 반 이상 교구사제로 활약한 뒤 1843년 외방전교회에 들어가 몇 달 동안의 수련을 거쳐 1844년 2월 류우뀨(琉球)의 선교사로 임명되어 고국들 떠나 1844년 9월말에 마카오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이곳에서 조선교구의 제3대 교구장페레올(Ferreol) 주교만나 그의 요청으로 조선 선교사에 임명되어 그와 함께 조선에 들어가기 위해 1845년 7월 하순에 상해(上海)로 갔다. 때마침 이곳에 다시 온 김대건(金大建) 신부와 함께 배를 타고 조선으로 향하여 10월 12일에 충청도 강경(江景)의 황산포(黃山浦)란 작은 포구에 닻을 내릴 수 있었다. 그는 이때부터 1866년 3월 순교하기까지 21년 동안(신부로서 12년, 주교로서 9년) 조선의 선교사로 활약, 당시 가장 오랫동안 조선에서 활동한 선교사가 되었으며 동시에 조선의 언어와 풍습에도 가장 능통하였다.

   황산포에 도착하여 주교는 서울로 올라가고, 자신은 강경지방에서 조선말을 배워 이듬해 1월부터 전교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러던 중 김대건 신부가 체포되어 서양인 성직자의 입국사실이 알려짐으로써 그는 박해를 피해 더욱 외딴 곳으로 숨어 다니며 전교에 힘썼다. 한편 교황청으로부터 성모무염시태를 조선 교회의 새 주보로 받게 되었고, 또 그 동안 성모로부터 받은 은혜에 감사하고자 파리에 본부를 둔 성모성심회에 가입하기로 결정하고 1846년 11월 2일 충청도의 ‘수리치골’(현재 公主郡 新豊面 鳳甲里)에서 교우들과 같이 미사를 올리고 조선에 ‘성모성심회’를 창설하였다. 또 2년 뒤에는 신학생들의 지도를 맡았다. 1853년 그와 함께 입국한 페레올 주교를 잃었으나 슬픔을 딛고 일어서서 전교에 더욱 힘을 쏟았으며 틈틈이 ≪한한불자전≫(漢韓佛字典)을 편찬하였다. 또 조선사연표를 번역하고 교우들을 위해 교리서신심서를 번역 · 저술하였다. 1857년 3월 25일에는 베르뇌(Berneux) 주교로부터 보좌주교로 선출되어 서울에서 아콘(Acones) 명의주교성성되었다.

   그의 가장 큰 업적은 한국 천주교회사와 조선 순교사의 편찬이었다. 그러나 이 중요하고도 어려운 일을 교구장으로부터 위촉받고 1857년부터 이를 위해 새 자료를 발굴하여 그것을 프랑스어로 옮기었으며 목격증인을 찾아 증언을 수집하는 데 힘썼다. 특히 1859년을 전후하여 그는 윤지충(尹持忠) 등 주요 순교자들의 전기를 파리본부로 보내는 한편 조선 천주교회사의 편찬을 위해 조선사에 관한 비망기와 조선 순교사에 관한 비망기를 저술하여 모두 1862년에 파리로 보냄으로써 후세의 귀중한 사료가 될 수 있었으니, 이것이 바탕이 되어 후일 달레(Dallet)의 유명한 ≪한국천주교회사≫가 저술되기에 이르렀다. 더욱이 1863년에 그의 집에 불이 나 조선말과 한문으로 된 치명일기와 주석책 등 귀중한 자료가 모두 타 버렸기 때문에 이 책은 한층 가치 있는 것이 되었다.

   1861년에 그는 경상도지방에서 전교하였는데 외교인들의 적개심에도 불구하고 많은 개종자를 얻었다. 1865년에 들어서면서 박해가 더욱 가혹해져 마침내 그해 2월 2일 베르뇌 주교가 먼저 잡히고, 그도 3월 11일 전교 중 잡히는 몸이 되었다. 그는 옥중에서 갖은 고문을 받고 충청도 보령(保寧)의 수영(水營)으로 압송되어 3월 30일 참수를 당하였다. 베르뇌주교를 도와 9년 동안을 부주교로서, 그리고 주교의 순교 후 조선교구의 제5대 주교가 된지 21일 만에 순교한 것이다.

   그 뒤 1968년 10월 6일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로마의 성베드로 대성당에서 복자위(福者位)에 올랐으며,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 2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방한(訪韓)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여의도 현지에서 시성(諡聖)되었다. 그의 저서로는 ≪신명초행≫, ≪회죄직지≫, ≪영세대의≫, ≪성찰기략≫, ≪Parvum Vocabularium Latino-Coreanum≫ 등이 있으며 이 밖에 ≪성교요리문답≫, ≪천주성교예규≫, ≪천당직로≫ 등도 그가 번역한 것으로 전해진다.

   [참고문헌] 샤를르 달레 原著, 安應烈 · 崔奭祐 譯註, 韓國天主敎會史, 上 · 中 · 下, 분도출판사, 1979~1980 / 崔奭祐, 달레 著 韓國天主敎會史의 形成過程, 韓國敎會史의 探求, 韓國敎會史硏究所, 1982.
출처 : [가톨릭대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