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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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오◆ 인쇄

원어명 Macao
한자 澳門

   중국 광동성 중산현(廣東省 中山縣) 남부, 주강(珠江) 삼각주(三角洲)에 자리잡고 있는 포르투갈(Portugal)의 식민지 항구. 인구 25만 명에 대부분이 중국인인 마카오는 1557년 포르투갈인이 거주권을 획득한 이래 포르투갈의 동양 무역의 근거지가 되는 동시, 포르투갈 보호권 아래 가톨릭의 극동지역 선교의 전초지가 되었다. 특히 1565년 예수회가 이곳에 본부를 두어, 성 바오로와 성 요셉의 두 신학교를 설립, 성직자를 양성하였고, 예수회 순찰사 알렉산드로 발리냐노(Alessandro Valignano)가 이곳을 중심으로 극동 각지를 순회하며 선교업무를 관장함으로써 마카오는 예수회의 일본 및 중국에 대한 선교를 가능케 하는데 큰 공을 남겼다.

   1576년 교황 그레고리오(Gregorius) 8세에 의해 말래카(Malacca) 주교구로부터 분립된 마카오 교구는 1588년 일본교구와 1690년 중국의 북경 및 남경교구가 분립될 때까지 일본 · 중국 · 싱가포르 · 말래카 등 광대한 지역을 관할하였다. 현재 약 6천 평방 마일의 관할구역과 인구 500만 명을 안고 있는 마카오 주교구는, 1963년의 통계에 의하면 포르투갈 지역에만 21개 본당에 63명의 교구사제와 44명의 수도사제, 7개 수도원에 73명의 수사, 16개 수녀원에 249명의 수녀, 29개의 각급 학교에 학생수 2만 420명, 16개 자선단체 그리고 총신자수 2만 5,000명에 이른다.

   마카오는 우리나라 천주교회 창설과도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이곳에 파리 외방전교회 경리부가 1732년 이래 자리 잡고 있어 중국을 위시한 조선 선교를 위한 물자 조달과 성직자들의 교황청과의 서신 연락을 담당했을 뿐만 아니라 일찍이 1811년과 1825년 두 차례에 걸쳐 교황에게 성직자 파견을 요청하는 조선 교우들의 편지가 이곳에서 라틴어로 번역되어 교황청에 보내졌고, 1831년 조선교구 초대 교구장으로 임명된 브뤼기에르(Bruguiere, 蘇) 주교를 비롯하여 거의 모든 성직자들이 이곳을 경유하여 조선 입국을 시도하였다. 특히 브뤼기에르 주교와 함께 조선 입국을 원했던 모방(Maubant, 羅) 신부가 이곳을 경유, 서양인 성직자로서 1835년 처음으로 조선 입국에 성공하자 그 이듬해인 1836년 한국인 사제 양성을 위해 김대건(金大建, 안드레아), 최양업(崔良業, 토마스), 최(崔) 방지거 등 세 사람의 소년을 마카오로 유학을 보냈다. 이들 세 사람은 8개월만에 마카오에 도착, 파리 외방전교회 경리부장 르그레즈와 신부의 지도를 받으며 1842년까지 6년간 수학하였다. 그러나 불행히도 세 사람중 최방지거는 이곳에서 병사하였다. 마카오의 파리 외방전교회 경리부는 1847년에 홍콩으로 이전되었다.
출처 : [가톨릭대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