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농부의 마음
작성자박영미 쪽지 캡슐 작성일2009-01-28 조회수536 추천수4 반대(0) 신고
1년 전 크리스마스 즈음하여 뒷마당이 유난히 넓은 집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저희가 이사 온 집은 지은 지 50년도 넘은 옛날 집입니다. 요즘 새집처럼 크고 네모 반듯 반듯하고 잔디가 예쁘게 깔려 있는 집이 아닙니다.
 
처음 집을 보러 왔을 때 낙엽으로 뒤덮인 뒷마당이 운치 있었지만 낙엽을 치우고 보니 맨 흙 바닥을 그냥 드러낸 곳이 대부분이었고 잔디는 듬성듬성 나 있었어요.
 
저도 보통의 엄마들처럼 지은지 얼마 안 되어 천장이 높고 공간이 훤하게 뚫려 있는 넓은 집을 선호하는 마음은 매한가지나 여러가지 상황으로 저희는 오래된 집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은행 융자를 통해 산 집이긴 하지만 결혼하고 나서 처음으로 장만한 저희 집입니다.
 
처음 이사 들어 와서는 불평이 먼저 들기 시작했습니다. 큰길가 코너에 있는 집이라 지나 다니는 차들의 소리도 유난히 크게 들리고 흙바닥이 드러난 뒷마당과 철로 만든 울타리를 빙 둘러 심어진 나무도 볼 품 없어 보이고 키만 삐죽하게 높이 자란 나무도 그 모양새가 아름답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 저의 마음은 무엇을 가져도 무엇을 보아도 불만이었을 겁니다. 감사할 줄 몰랐었지요. 제아무리 좋은 것을 가져다주었더라도 또 불평거리를 찾았을 겁니다.
 
하지만 어떤 계기를 통해 하느님으로부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내가 만족하고 감사할 줄 모르면 하느님은 더 이상 복을 내려 주지도 않으며 내려 준 복 마저도 이렇게 불평하는 나로 인해 거두어 가신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주님께서 내려 주신 나의 복과 은총을 내것으로 가지느냐 마느냐는 순전히 내 마음에 달려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마음을 바꾸어 우리 집의 좋은 점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추운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니 큰 나무에서 새싹이 돋아났습니다. 햇빛을 받고 바람에 흔들리는 초록 이파리들이 마치 물고기의 비늘과도 같이 빛이 났습니다. 잔디 씨도 뿌리고 아침 저녁으로 열심히 물을 주니 싹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잔디가 자라서 푸르름으로 저를 기쁘게 하였습니다.
 
높고 큰 나무를 보금자리 삼아 사는 딱따구리가 딱딱딱 나무를 쪼아대는 소리를 듣고 딱따구리가 남긴 구멍의 흔적을 보는 일도 흥미로웠습니다. 다람쥐 여러 마리가 사랑을 나누는지 서로를 쫓아가며 행복한 날을 보내는 것을 보는 것도 즐거웠습니다. 이른 아침에는 마당에 벌레를 잡아 먹기 위해 새들이 떼를 지어 날아들었습니다. 민들레, 맥문동,상사화, 이름 모를 자그마한 들꽃들이 번갈아 피어 생기를 돋우었습니다. 자연학습장을 방불케하는 저희 집 뒷마당를 비로소 저는 사랑하게 되었지요.
 
그리고 마당 한 쪽에 저의 텃밭을 만들었습니다. 처음에 흙을 일구었습니다. 땅속엔 나무의 뿌리들로 얼기설기 얽혀 있어 큰 삽으로 뿌리를 제거하고 호미로 돌멩이를 빼내는 작업을 하였습니다.
 
좋은 흙을 사서 뿌려 땅을 비옥하게 한 다음 씨를 뿌렸습니다. 고추씨, 상추씨, 깻잎 씨, 호박씨를 뿌려 보았습니다. 어떤 것은 땅에서 떡잎이 올라와 잘 자라기도 하도 어떤 것은 강한 햇볕을 견디지 못하고 말라 버리기도 하였습니다.
 
상추와 호박은 제대로 키우지 못했지만 깻잎은 여름부터 가을까지 따 먹었고 고추는 신기하게도 석 달 넘게 열매 맺지 않아 제 애를 태우더니 어느 순간 주렁주렁 고추가 열리기 시작하더니 많은 열매로 저를 행복하게 하였습니다.
 
야채를 한번 기르고나니 이젠 요령이 조금 생깁니다. 똑같은 깻잎이라도 햇빛을 얼마만큼 받느냐에 따라 풍성하게 혹은 빈약하게 자랍니다.
 
햇빛, 물, 땅의 양분, 잡초 등 외부 환경 조건을 최상의 상태로 만들기 위해 공을 들여야만  풍성한 수확을 거둘 수 있다는 사실도 알았습니다.
 
이렇게 진짜 농부는 아니지만 농부 비슷하게 되어 농부의 마음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야채를 키워가며 '뿌린대로 거둔다'는 옛말이 불변의 진리라는 것도 알게 되었고 자연은 절대 순리를 거스르지도 거짓말하지도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 새벽에 복음 말씀을 천천히 묵상해 보았습니다. 여러 번 들어 왔던 씨뿌리는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주님의 말씀이 씨이고 우리는 밭입니다. 씨를 뿌리는 농부이신 하느님 아버지의 마음이 어떠할 지를 지난 여름 야채를 키우며 저는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노심초사  뿌린 씨가 싹이 트기를, 싹이 트면 잘 자라기를, 잘 자라서 열매 맺기를 얼마나 기다리고 안타까이 보고 계신가를 말입니다. 물을 주는 일도, 매일 매일 살피시는 일도 거르지 않으십니다.
 
밭인 우리 자신을 농부이신 하느님 아버지께 온전히 맡겨야하는 것이 좋은 수확을 얻는 가장 확실한 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올 봄에도 또 저는 텃밭에 씨를 뿌릴 예정입니다. 밭도 다시 일굴 것입니다. 작년의 시행착오를 교훈 삼아 올해는 조금 더 농부에 가까운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누구든지 우리 집에 오시면 제가 키운 상추와 깻잎으로 삼겹살 파티를 해 줄 준비를 할 것입니다. 그러니 놀러 오세요.
 
어제 밤에 눈이 내렸습니다. 처음엔 우박이 떨어지더니 새벽엔 눈이 내렸나 봅니다. 많이 쌓이진 않았지만 땅에 덮힌 하얀 눈을 발견한 것만도 큰 기쁨입니다. 아이들은 당연히 오늘 학교에 가지 않습니다. 저는 아이들과 눈 내린 추운 겨울을 만끽하며 오늘 하루를 보낼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도 주님 안에 즐거운 날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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