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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소경이 든 등불 - 윤경재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9-01-29 조회수650 추천수5 반대(0) 신고
 
 
 

소경이 든 등불 - 윤경재

 

“누가 등불을 가져다가 함지 속이나 침상 밑에 놓겠느냐? 등경 위에 놓지 않느냐?” “숨겨진 것도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도 드러나게 되어 있다.” “너희는 새겨들어라. 너희가 되어서 주는 만큼 되어서 받고 거기에 더 보태어 받을 것이다.” “정녕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마르 4,21-25)

 

  어느 칠흑같이 어둔 밤에 누군가 등불을 들고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비록 크게 밝지는 않았지만, 웅덩이와 걸림돌을 구별할 만큼은 되었습니다. 길 가던 사람들이 반가운 마음에 그 등불 곁으로 몰려들었습니다. 어둡고 적막한 길을 걷는 길손에게는 작은 별빛마저 친근한 동무가 되는데 살아 움직이는 등불은 정말로 횡재수라도 만난 심정이었습니다. 더군다나 그 불빛이 걷는 속도는 보통 사람보다는 느린 듯했습니다.

  한 길손이 그 등불에 가까이 다가가고선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등불을 든 사람이 다른 손에 흰 지팡이를 쥐고 땅을 더듬거리며 걷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길손이 그에게 묻습니다.

“선생께서는 보아하니 앞 못 보는 소경이신데, 굳이 등불은 왜 들고 다니십니까?”

  그러자 그 소경은 미안한 듯 작은 소리로 대답하였습니다.

“예, 제게는 비록 쓸데없는 것 같아도 다 소용이 된답니다. 우선 남들이 이 등불로 길을 편히 갈 수 있죠. 그러면 공연히 저와 부닥치지 않아도 된답니다.”

 

 오늘 복음에서 네 가지 단절어가 나옵니다.(21,22,24,25절) 그 중 21절 등불의 비유는 예수님께서 당신을 두고 말씀하시는 장면입니다. 어느 날 바리사이가 예수께 와서 헤로데 일당이 요한을 죽였듯이 당신도 잡아들이려고 한다는 말을 전하자 그에게 답변처럼 말씀하신 내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어 본문 내용을 직역하면 “등불이 (걸어)와서 함지 속이나 침상 밑에 놓이겠느냐? 등경 위에 놓이겠느냐?”라고 등불을 주격으로 썼고, 의인화해서 썼습니다. 문학적 은유이겠으나 한 편으로는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등불로 왔다고 밝히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살아 움직이는 주님의 말씀이라는 등불은 확고하고 풍부하게 펼쳐집니다. 또 말씀이 전하는 내용은 우리에게 들을 귀를 열어줍니다. 그러나 그 빛은 듣는 사람의 책임을 덜어주지는 않습니다. 말씀을 들으려 얼마나 준비하는가에 따라 이해력을 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준비된 사람에게는 더 큰 이해력을 주시고 더 심오한 진리를 전달해 주십니다. 그러나 귀를 열어 두지 않고서 이해하려 들지 않거나 이런 과정에 몰두하지 않는다면 자신이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마저 아무 소용이 없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이라는 등불을 들고 가는 우리는 위에 나온 소경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누구도 하느님 나라를 안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비록 흰 지팡이로 더듬거리며 세상의 길을 걷고 있지만, 하지만 우리는 그 등불을 들고 가야만 합니다. ‘무공용의 용(無功用의 用)’의 진리가 우리의 귀를 열어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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