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두려움의 대상
작성자박영미 쪽지 캡슐 작성일2009-01-31 조회수514 추천수2 반대(0) 신고
새벽에 일어나 오늘의 복음 말씀을 묵상하는 중에 문득 제자들이 폭풍우와 바람을 두려워한 이야기에서 이 세상 살면서 나는 과연 무엇을 겁내고 두려워하며 살고 있나 곰곰이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두려움 없이 산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내 앞에 일어나는 예기치 못한 불행과 사건들이 두렵고 가끔은 토네이도, 산불, 폭우, 폭설 등의 자연재해, 그리고 비행기, 자동차 등 사람이 만든 문명의 이기를 이용하면서도 두렵고 불안한 마음은 늘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사람을 제일 크게 두려워했던 것 같습니다.
 
사람이 천사와 같기도 하다가 혹은 악마와 같기도 해서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 지도 모릅니다. 저 역시도 아주 유순하고 온화한 마음이 들다가도 한순간에 돌변하는 그런 모습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더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
 
한국을 떠나 미국에 처음 오니 말이 잘 안 통하여 점점 움츠러들고 소심해졌어요. 저의 원래 성격이 남에게 도움은 안 될지언정 피해는 주지 말고 살자는 주의인데 대화를 통해서 상대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하고 있으면 상대는 의아한 표정을 짓게 되고 그럼으로 인해 저 사람을 내가 힘들게 하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자꾸 말을 안하게 되고 부딪히는 기회를 피해 가려고 했습니다.
 
참 못난 모습이지요?
 
어느 날 저의 이런 소극적인 태도와 고정 관념을 서서히 바꾸어 주신 한 분을 만났습니다. 작은 아이가 3살 때 아파트 수영장에 놀러 갔다가 68세 되신 미국 여자분을 만났습니다. 그분의 이름은 June입니다. 그분은 워싱턴 D.C.에서 정부 관련 기관에서 일을 하시다 막 은퇴를 하고 샌디에고로 이사를 오셨고 저희는 텍사스에서 샌디에고로 남편의 공부 때문에 막 이사를 간 시점이었습니다.
 
저도 그분도 새로운 곳에서 친구가 없는 것은 매한가지였습니다. 우연히 인사를 하게 되었고 이 이야기 저 이야기하다 작은 애와 함께 오전에 우리 집에 매일 커피 마시러 놀러 오라는 얘기를 하셨어요.
 
그 후로 June의 아파트에 매일 출근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소통에 힘이 들기도 하였지만 또 제가 눈치 하나는 끝내주는 사람이라 말은 물론이고 표정과 행동으로 그분과 소통하기 시작하였습니다.
 
3년 샌디에고에서 사는 동안 아마도 가족 빼고 제일 얼굴을 많이 본 사람일 겁니다. June도 처음엔 자그마하고 말도 어눌한 동양인이 뭐가 그렇게 흥미롭고 재미있었을까 싶습니다만 인내를 가지고 저를 만났을 테지요.
 
저는 그분을 통해 사람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없앨 수 있었습니다. 내가 말이 좀 자유롭지 못해도 내 진심을 전하면 이 세상 어느 곳에서든 소통하며 지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잘 이해되지 않는 이곳의 문화나 사람들의 생활 방식을 접하면 또 쪼르르 달려가서 여쭈어 보았습니다. 그때마다 마치 현자처럼 늘 해답을 제게 주곤 했습니다. 어려서부터 똑똑하고 또 일생을 노력하며 매사에 진취적인 태도로 살아오신 그분을 보며 배우는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세 번의 결혼과 이혼, 아이를 낳지 못해 입양한 딸이 마흔이 넘도록 독립하지 못하고 조울증을 앓고 있는 점 등 개인적인 삶은 평범한 여성이 누릴 수 있는 행복은 누리지 못하고 사신 분이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서로를 도와주었는지도 모릅니다. 저는 이방인으로 이곳에서 두려움 없이 살 수 있는 방법을 그분에게서 배우고 그분은 아이를 키우고 남편을 뒷바라지하며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는 평범한 가족의 모습을 보면서요.
 
어제도 June과 통화를 했습니다. 70세가 되었는데도 늘 깨어서 배움의 길을 멈추지 않으십니다. 주말에는 LA에 있는 박물관에 버스 타고 하루 코스로 여행을 가신다고 합니다.  제가 처음 만났을 때는 정말 건강하셨는데 어느 날 stroke가 와서 그 후로 급격히 에너지를 잃으셨지만 지금은 다시 활기차고 건강하게 사시려고 노력하십니다.
 
제가 그곳을 떠나 온 후로 딸의 문제와 약해진 건강 때문에 우울증이 생겨 약을 먹기 시작하셨고 제가 이곳에서 우울한 나날을 보낼 때 거의 매일 전화를 걸어서 ‘밖으로 나가라, 사람을 만나라, 이웃에게 인사를 해라’ 등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던 분입니다.
 
제가 매일 미사를 다니고 묵상글을 쓴다고 하니 그 글을 영어로 써서 자기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네가 열심히 활기차게 사는 원동력이 무엇이냐? 네가 그렇게 생각하게 된 것은 너의 경험 때문이냐 아님 종교 때문이냐? 하시며 연세가 많고 연륜이 오래 되었지만 절대 권위적인 모습이 아니라 인간 대 인간의 태도로 대화를 나누십니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문제부터 미국의 정치, 경제 혹은 세계가 돌아가는 일까지 얘기하며 서로에게 도움을 줍니다.
 
그리고 제가 하는 일에 격려를 아끼지 않는 저의 든든한 후원자이십니다.
 
아마도 저와 June의 관계는 서로 윈-윈 하는 관계가 아닌가 싶습니다. 저의 사람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게 해 주셨고 또 그분은 나를 통해 따뜻한 사랑을 느끼셨던 것 같고요.
 
늘 보고 싶고 그리운 사람이지만 매일 보지 않아도 존재 자체만으로도 큰 위로와 힘이 되는 사람입니다.
 
다행히 제가 떠나오고 난 후로도 저처럼 가까이서 규칙적으로 만날 저 같은 한국분을 만났습니다. 그분도 저처럼 가톨릭 신앙을 가지고 있는 따뜻하고 사랑이 많은 분이라 저는 June을 걱정하지 않습니다.
 
어느 날 June은 저보고 그럽니다. 자신의 딸보다 더 딸 같다고... 제게 있어 그분은 미국에서의 엄마입니다. 제일 친한 그리고 가장 존경하는 친구이기도 합니다.
 
복음 말씀을 읽다가 또 다른 곳으로 샜네요. 저의 두려움을 없애준 June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이 제겐 큰 행운이었다는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가는 불확실한 인생길에서 사실 이러한 두려움을 없애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분이시지요.
 
지금 제 옆에 June은 없지만 저와 늘 함께 하는 든든한 주님이 계시므로 이제 더 이상 이곳에서 사는 것이 두렵지 않습니다.
 
여기 오시는 모든 분들도 주님과 함께 하시어 두려움 없는 삶을 사시길 빕니다. 오늘도 주님 안에 행복하세요.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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