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은 죽었던 사람을 살린 후 바로 자리를 떠나시는 예수님, 그분의 겸손의 길이 얼마나 치열한 내적 여정을 거치는지 짐작하게 한다. 그런 예수님이시지만 당신을 있는 그대로 믿지 못하고 의심하는 고향 사람들 앞에서는 아무런 기적도 일으킬 수 없는 처지로 전락한다. 군중의 대조적인 모습, 그 중심에는 ‘믿음’이라는 중요한 기둥이 서 있음을 볼 수 있다.
간혹 나의 약함과 한계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 앞에서 얼굴이 화끈거려 준비한 것을 충분히 말할 수 없을 때가 종종 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렉시오 디비나 강의를 부탁받은 곳에 가서 앞으로 나가 인사를 하고 시작기도를 하려는데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자세히 보지 않아도 누군지 짐작할 수 있는 분들이었다.
바로 나의 “어머니”, 그리고 함께 활동하시는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이 아닌가? 물론 그분들은 나의 성장과정을 잘 알고 있다. 갑자기 앞이 캄캄해지면서 어떻게 강의를 풀어나가야 할지 암담해 한참을 서 있다가 웃어버렸다. “이곳에 저를 잘 알고 있는 분들이 계셔서 잠시 당황했습니다.” 이렇게 말씀을 드리고 강의를 시작했지만 입은 잘 풀리지 않았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은 격려와 지지로 바라보는 신뢰의 눈길이다. 어머니의 온유한 웃음을 담은 한결같은 표정과 너를 믿는다는 격려의 몸짓은 나를 차분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나에 대한 어머니의 믿음 하나로 세 시간의 강의를 활기차게 이끌어 갈 수 있었다. 믿음은 기적을 낳는다.
이은주 수녀(샬트로성바오로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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