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하던 두 권의 책이 하루 이틀 간격으로 출판되던 날, 10년 동안 마음을 닦아가며 기다린 한 달 영신수련에 초대되었다. 목마름으로 쩍쩍 갈라진 내 영혼에 그분을 향한 간절함만 남아 있을 때였다. 그래서였을까? 피정에 들어가기 위해 제출해야 하는 ‘나의 역사’도 단숨에 적고, 주변을 정리하고 피정을 시작한지 하루 반나절 만에 갑작스럽게 찾아온 은총의 시간을 통해 하느님의 섭리를 따라 예수님을 만나 그분과 하나가 되는 기쁨을 맛보았다. 그것은 차라리 목마른 영혼에게 예수님께서 오셨다고 하는 편이 맞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는 시구가 떠올랐다.
오늘 복음에서도 기다림에 목마른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그들은 기다림의 끝자락에서 마침내 그분을 만난다. “그들이 배에서 내리자 사람들은 곧 예수님을 알아보고, 그 지방을 두루 뛰어다니며 병든 이들을 들것에 눕혀, 그분께서 계시다는 곳마다 데려오기 시작하였다.”(마르 6,54-55)
하늘나라, 그 먼 길을 가다 보면 사람은 사람을 필요로 한다. 같은 목적을 향해 시선을 고정하고, 같은 언어를 사용하며 걸음을 떼는 사람들은 서로 닮아가고, 그런 중에 해방된 영혼은 또 다른 상처 받은 사람을 보듬게 된다. 그러기에 올곧은 지향을 품고 항구하게 제 길을 걷는 스승이나 도반을 만나는 것은 삶의 보람이 아닐 수 없다.
길은 만남을 통해 깊어지고, 만남은 또 다른 창조를 이루기에 더욱 그렇다. 그러나 만남은 아무 때나 찾아오지 않는다. 간절함이 다할 때 문득 내 앞에 와 있는 것이다.
이은주 수녀(샬트로성바오로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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