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쯤 피우던 담배를 ‘안 피우기’ 시작한 지 1년이 되어간다. 끊은 게 아니고 안 피우고 있는 중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담배를 끊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전에는 ‘이 좋은 걸 왜 끊냐?’고 하다가 이제 끊기 시작했으니 다시 담배에 손을 댈까 봐 걱정된다. 물론 그동안 여러 차례 고비도 있었다. 근심이 있을 때, 화가 나서 안 풀릴 때, 글을 쓰거나 일을 하는데 도무지 잘 안될 때 ‘딱 한 대’ 생각이 간절하다. 그래도 참자고 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딱 한 대만 피우고 다시 안 피우면 되잖아!’라는 소리가 들린다.
그 유혹은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 지금까지도 잘했으니 다시 잘할 수 있다는 일종의 ‘긍정적인’ 이유를 대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다시 피우기 시작하면 또 한참은 거기서 헤어나지 못하리라는 것 또한 분명하다. 좌우간 ‘무조건 참아야 하느니라.’가 정답인 것 같다. 다시 돌아가면 안 된다.
오늘 복음 말씀에서 예수님은 “저 마을로 들어가지 마라.”고 하신다. 그 마을은 아마도 그 눈먼 이가 살던 벳사이다일 것이다. 그 마을은 예수님께 불행하다는 비난을 받은 고을이다. “불행하여라, 너 벳사이다야! 너희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티로와 시돈에서 일어났더라면, 그들은 벌써 자루 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앉아 회개하였을 것이다.”(루카 10,13) 회개하지 않은 마을이니 죄악이 넘쳐난 마을이었을 것이다. 사람을 따뜻한 심장을 가진 이로 보지 않고 걸어 다니는 나무 정도로 보는 마을인 것이다.
예수님은 그 눈먼 이에게 “저 마을로 들어가지 마라.”고 하신다. 회개하지 않는 삶, 사람을 그저 걸어 다니는 나무 정도로 보는 차가운 마음으로 돌아가지 말라는 말씀이 아닐까 싶다. 회개(悔改)는 후회(後悔)와 개선(改善)이 합쳐진 말이다. 진정한 회개는 새로운 삶에 대한 결심과 실천이 따라야 한다. 우리는 새 삶으로 불리어진 존재다.
이재학 신부(인천교구 바다의 별 청소년수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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