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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매일 처음의 새날처럼" - 2.18,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9-02-18 조회수438 추천수6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9. 2.18 연중 제6주간 수요일
                                                
창세8,6-13.20-22 마르8,22-26

                                                    
 
 
 
 
"매일 처음의 새날처럼"
 


매일 처음의 새날처럼 사는 것입니다.
 
이런 이가 바로 하느님을 닮은 영원한 청춘의 사람입니다.
 
젊음은 나이에 있는 게 아니라 마음에,
매일 처음처럼 사는 마음에 있습니다.
 
어느 유적지나 시골 마을에 가면
우선 눈에 띄는 게 오래 된 나무들입니다.
 
만고풍상을 다 겪은 수백 년 된 침묵의 나무들은
그대로 살아있는 역사입니다.
 
아무리 봐도 좋은, 저절로 솟아나는 경외심에
안아도 보고 눈 들어 하늘 높이 바라보게도 됩니다.
 
오래 된 나무, 오래 된 건물, 오래 된 사람이 많아야
깊고 좋은 수도원이요 절이요 집입니다.
 
창세기의 다음 묘사를 읽는 순간
노아가 수령 601세의 나무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노아가 육백한 살이 되던 해,
  첫째 달 초하룻날에 땅의 물이 말랐다.’

그대로 믿음의 나무, 믿음의 노아를 연상케 하는 구절입니다.
 
육백 살까지 살고
홍수의 세례로 다시 태어나
한 살부터,
첫째 달,
초하룻날
새롭게 처음부터
믿음의 여정을 시작한
영원한 청춘 노아는 믿는 모든 이들의 모범입니다.
 
먼저 주님을 위하여 제단을 쌓고
새 땅에서 믿음의 여정을 시작하는 노아입니다.

‘노아는 주님을 위하여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새들 가운데에서
  번제물을 골라 그 제단 위에서 바쳤다.’

매일 제단을 쌓고 미사성제를 바침으로
새날을 시작하는 우리들과 흡사합니다.
 
노아의 믿음에 감동하신 주님의 다짐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어려서부터 악한 뜻을 품기 마련,
  내가 다시는 사람 때문에 땅을 저주하지 않으리라.
  이번에 한 것처럼 다시는 어떤 생물도 파멸시키지 않으리라.
  땅이 있는 한,
  씨뿌리기와 거두기, 추위와 더위, 여름과 겨울, 낮과 밤이
  그치지 않으리라.’

참으로 자비하신 주님의 배려입니다.

인간 현실을 그대로 인정하고
나름대로 믿음의 여정 다 마칠 때 까지
끝까지 기다리겠다는 말씀입니다.
 
씨뿌리기와 거두기,
추위와 더위,
여름과 겨울,
낮과 밤,
끊임없이 반복되는 삶의 리듬 중에
깊어지는 우리의 믿음을, 내적성장과 성숙을 기대하시는 주님이십니다.

과연 우리의 삶은
밖에서 보는 것처럼 단조롭고 무미한 반복입니까,
혹은 밖에서야 단조롭게 보이지만
내적으로는 매일 깊어지는 새날의 내적여정입니까?
 
바로 여기 정주영성생활의 핵심이 있습니다.
 
단조로운 반복의 제자리 삶 중에도 늘 새롭게 처음처럼 사는 것입니다.
 
이래야 내적성장에 내적성숙입니다.
 
단조로운 반복의 삶이 타성에 젖어 안주하게 될 때
안팎으로 무너지기 시작하는 우리의 삶입니다.
 
마치 하느님을 잊고 생각 없이 뛰어가는 트랙 경주와 같습니다.
 
생각 없이 트랙을 아무리 반복하여 많이 돈다 한 들
거기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하느님 생각 없이 오래 사는 것,
생각 없이 트랙을 많이 도는 경우와 똑 같다는 생각입니다.

겉으로야 반복의 삶에서 벗어날 수 없지만
안으로는 끊임없이 새로워져야 합니다.
 
매일 처음처럼 사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 때
깊어지는 내적여정과 더불어
마음의 눈도 점점 밝아집니다.

세례 받았다 하여 믿음의 완성이 아닙니다.
 
단지 믿음의 여정이 시작되었음을 뜻합니다.
 
오늘 복음의 눈 먼 이가 눈을 떠가는 개안의 과정,
바로 세례와 더불어 시작된 우리 믿음의 내적 여정을 상징합니다.
 
내적여정의 개안의 과정, 역시 주님의 은총 있어 가능함을 깨닫습니다.
 
우리의 내적여정의 가이드이신 주님의 은총 없이는
내적성장은 애당초 불가능함을 깨닫습니다.
 
눈 먼 이를 수차례 당신 은총의 손길로 터치해 주시는 과정을 통해
마침내 육안과 더불어 심안이 활짝 열려
있는 그대로의 실재를 직시하는 눈 먼 사람입니다.

‘그분께서 다시 그의 두 눈에 손을 얹으시니 그가 똑똑히 보게 되었다.
  그는 시력이 회복되어 모든 것을 뚜렷이 보게 된 것이다.’

잘 듣는 마음의 귀도 중요하지만 잘 보는 마음의 눈도 중요합니다.

주님은 매일 노아처럼
제단을 쌓아 미사성제를 봉헌하는 우리들의 눈을 열어주시어
반복되는 삶 중에도
처음처럼 늘 새날, 새 하늘, 새 땅의 하루를 살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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