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9.2.21 토요일 성 베드로 다미아노 주교학자(1007-1072) 기념일
히브11,1-7 마르9,2-13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믿음으로 살아가는 우리들"
진정 행복한 사람들은 믿음으로 살다가 믿음으로 죽는 사람들입니다.
얼마 전 선종하신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님이 그러하셨습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외모를 보시는 게 아니라 우리의 믿음을 보십니다.
최고의 보물이 바로 믿음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고
보이지 않는 것들의 근거이며 인간 품위의 기반입니다.
아침 성무일도 잠언 독서 한 구절이 생각납니다.
“아름다운 용모는 잠깐 있다 스러지지만
하느님을 경외하는 여인은 칭찬을 듣는다.”
아름다운 용모도, 빛나는 젊음도, 건강도, 체력도, 능력도
모두가 세월 흘러갈수록 다 증발되어 사라져가지만 믿음만은 영원합니다.
그러니 믿음을 돌보고 가꾸는 것보다 중요한 일도 없습니다.
다 잃어버려도 믿음을 잃어버리면 안 됩니다.
믿음 잃어버리면, 믿음의 끈 놓쳐버리면
안팎으로 무너지는 건 순간입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믿음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수도자로 살아간다는 것 역시 그대로 믿음의 표현입니다.
우리 수도자의 삶, 믿음 빼놓으면 정말 아무것도 아닙니다.
겉으로야 초라하고 보잘것없어 보여도
묵묵히 기도하고 일하며 살아가는 수도자들 그대로 믿음으로 보입니다.
아픈 몸을 이끌고 살아가는 것도 믿음입니다.
온갖 결점을 다 덮어버리는 믿음입니다.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말씀을 실감합니다.
사실 옛 신앙 선조들은 믿음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믿음으로써
우리는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에서 나왔음을 깨닫습니다.
믿음으로써,
아벨은 카인보다 나은 제물을 하느님께 바쳤고,
믿음 덕분에 아벨은 의인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는 죽었지만 믿음 덕분에 여전히 말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써,
에녹은 하늘로 들어 올려 져 죽음을 겪지 않았습니다.
믿음으로써,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관하여 지시를 받고
경건한 마음으로 방주를 마련하여 자기 집안을 구원하였습니다.
오늘 1독서 히브리서 말씀은 그대로 ‘믿음의 찬가’ 같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느님의 마음에 들 수 없습니다.
믿음은 우리의 모두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느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것은 믿음 하나뿐입니다.
과연 이런 믿음이 없다면 무엇으로 살아가겠는지요?
돈으로, 명예로, 권력으로, 세상 재미로 평생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믿음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당신의 각별한 사랑을 받는 세 제자들,
베드로, 야고보, 요한에게 빛나는 믿음을 체험시키십니다.
부익부 빈익빈의 원리가 그대로 적용되는 믿음의 세상입니다.
주님은 믿음이 좋은 세 제자들에게
새하얗게 빛나는 모습으로
엘리야와 모세와 이야기를 나누는 당신을 체험시키므로
이들의 믿음을 북돋우십니다.
“스승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스승님께, 하나는 모세에게,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
얼떨결에 집착을 드러냈지만,
이 믿음의 체험은 십자가의 도상에서 베드로뿐 아니라
야고보와 요한에게도 평생 활력의 샘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믿음은 체험에의 집착이 아니라
사랑하는 아드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일입니다.
우리 역시 매일의 미사와 성무일도를 통해
알게 모르게 주님의 변모를 체험해가면서 더불어 깊어가는 믿음입니다.
저절로 믿음이 아니라
매일 끊임없이 평생 정성껏 바치는
미사와 성무일도를 통해 깊어지는 믿음이요 희망이요 사랑입니다.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시간,
우리 모두 가난한 빈 손,
빈 마음으로 눈에 보이는 믿음의 표지,
주님의 성체를 모심으로
서로의 믿음을 확인하며 믿음의 부자들 되어 살게 되었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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