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3월 1일 사순 제1주일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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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노병규 | 작성일2009-03-01 | 조회수1,044 | 추천수12 | 반대(0) 신고 |
3월 1일 사순 제1주일- 마르코 1,12-15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사탄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7,000원에서 2,000원을>
지난 재의 수요일 아이들과 함께 봉헌했던 저녁 미사 때 제가 이런 요지의 강론을 했었습니다.
"아이들아. 오늘부터 사순절(四旬節)이 시작되는데, 사순절이란 말이 너희들에게는 아주 생소하겠지? 한자로는 넉 사(四)자에 열순(旬)자를 쓰는 데 결국 4와 10을 곱하니 40일이 되지.
그런데 사순절은 재의 수요일에서 시작되어 부활절 전야까지 계속되는데, 날짜를 모두 세어보면 40일이 아니라 45일이 된단다. 왜냐하면 주일은 작은 부활을 의미하는 축제일이기 때문에 사순절 기간에 포함시키지 않아 닷새를 빼면 40일이 되는 거란다.
왜 40일로 정했는가 하면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단식하셨던 기간이 40일이고,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탈출한 후 사막을 횡단했던 햇수도 40년… 40이란 숫자는 여러 의미가 담긴 숫자란다.
이 기간 동안 모든 그리스도 신자들은 우리 인간을 향한 하느님 아버지의 가장 극진한 사랑의 표시인 십자가 죽음을 묵상하면서 단식도 하고 금육도 한단다.
이번 사순절 기간 동안 우리 신부님 수사님들은 술도 끊고, 간식도 끊고 음료수도 끊는 등 몇 가지 공동체적인 노력을 해서 아낀 금액은 해외 선교사들에게로 보내기로 했단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아직 신자도 아니고, 아직 어리기에 특별한 희생을 요구하지는 않을 거야. 그 대신 여러분은 자신이 맡은 작은 일에 대해서 좀 더 열심히 하고, 검정고시 더 열심히 준비하고 더 기쁘게 살면 좋겠어."
그리고 농담 삼아 제가 그랬습니다. "혹시 우리 친구들도 주말에 거금의 용돈을 받으니 성의를 보탤 친구들이 있으면 삥땅 안하고 선교사 신부님께 잘 전달할게."
오늘 점심을 먹고 마침기도를 하기 직전이었습니다. 한 아이가 제 옆으로 슬그머니 다가오더니 제 호주머니의 뭔가를 넣어주는 것이었습니다.
호기심에 꺼내보았더니 접고 또 접은 1000원짜리 2장이었습니다. 의아해서 물어보았습니다. "이게 뭐냐? 뇌물이냐? 아니면 내게 빚진 것 있었냐?"
"아니요! 신부님, 지난 수요일 미사 때 신부님 하신 말씀이 생각나서요. 약소하지만 보태세요."
그제야 생각이 정리가 된 저는 너무나 기특한 아이를 바라보며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습니다. 왕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일주일에 단 한번 7,000원 용돈 받는데, 그 용돈에서 과감하게 2,000원을 떼서 보태라는 아이의 마음이 정말 대단해보였습니다.
너무나 행복했던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래. 고맙다.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로 생각할 것이니 이 돈 도로 집어넣어라. 하느님께서 네 마음을 보시고 아주 기뻐하실 거다."
오늘 복음은 40일간 단식해 오신 예수님께서 악마로부터 유혹받으시는 장면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신성을 지니신 하느님이기도 하셨지만, 다른 한편으로 우리와 똑같은 육체 조건을 지니셨던 인간이셨습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느끼는 고통과 배고픔을 똑같이 겪으셨던 참 인간이셨습니다.
휴가지에서 40일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겠지만, 단식하면서 보내는 40일은 정말 지옥 같은 나날입니다. 허기가 져서 거의 탈진상태에 도달한 예수님 앞에 악마가 나타납니다.
갖은 감언이설과 달콤한 유혹거리를 미끼로 내세우며 예수님을 현혹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모든 유혹들을 의연히 이겨내십니다. 허탈해진 악마는 힘을 잃고 떠나갑니다.
예수님께서 악마의 유혹 앞에 끝까지 굴하지 않을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일까 묵상해봅니다. 아버지께 대한 항구한 충실성과 철저한 순명, 아버지를 향한 지속적 신뢰와 끊임없는 자아포기, 그 결과가 유혹의 극복이란 결실을 가져왔으리라 저는 믿습니다.
우리는 부족하지만 아버지와 연결된 끈을 끝까지 놓지 않음으로 인해 우리는 강합니다. 우리는 나약하지만 아버지 현존 안에 뿌리내림으로 인해 우리는 강합니다. 세상 유혹 앞에 설 때마다 예수님께서도 유혹을 받으셨음을 기억합시다. 아버지께 대한 간절한 기도를 통해 그 모든 유혹들을 물리치셨음을 기억합시다.
우리들 신앙 여정 주변에는 항상 갖은 유혹들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이라는 광야를 걸어갈 때 우리가 느끼는 큰 유혹 중 하나가 "더 이상 아무런 의미도 없으니 그만 포기하고 돌아가거라."는 유혹일 것입니다.
아버지 집을 향해 순례를 떠나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순례를 지속하기란 어렵습니다. 광야를 향해 출발하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광야를 횡단하고 광야에 머무르기란 어렵습니다. 세례를 받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세례를 살기란 어렵습니다. 수도자로 서원을 하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서원을 살고 지속적으로 서원에 충실하기란 진정 피곤한 일입니다.
가끔씩 포기하는 사람들을 봅니다. 포기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공통된 성격 유형을 지닙니다. 자신의 의지나 자신의 힘만으로 모든 것을 해보겠다는 자존심 강한 유형이지요. 하느님께서는 "끼리끼리" 혹은 "나 홀로"가 아니라 당신과 함께, 공동체 구성원 전체가 함께 걸어가기를 원하십니다.
하느님께서 광야를 횡단하던 이스라엘 백성들 그 한가운데 언제나 함께 계셨음을 기억합시다. 때로는 불기둥으로, 때로는 장막 안 성궤로 당신 백성들을 보살피셨습니다.
우리가 걸어가는, 사순절이라는 광야 여정에는 악마에게서 유혹도 많겠지만 그 여정에 든든하신 우리 주님께서 언제나 동행하고 계심을 기억하는 은혜로운 나날 되길 빕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가톨릭성가 118번 / 골고타 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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