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하느님 앞에 작은 이는 없다 | |||
---|---|---|---|---|
작성자박영미 | 작성일2009-03-03 | 조회수475 | 추천수6 | 반대(0) 신고 |
올해를 생명의 해로 정한 한국 가톨릭 교회의 지침을 따라 서울 주보에서는 생명에 관한 가르침을 계속 연재해오고 있다. 서울 주보를 참조하여 본당의 주보를 만들며 그 내용을 우리 본당 주보에 옮기다 보니 사람의 생명이 얼마나 소중하고 존중 되어야하는 지에 대해 다시금 인식을 하게 된다. 오늘의 복음 말씀도 나는 생명 존중 사상과 연결하여 생각해 본다. 주님께서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라고 말씀 하셨다. 가장 작은 이란 누구나가 생각할 수 있는 사회적 약자일 것이다. 자신의 권리를 당당하게 어필할 수 없도록 만들어진 사회구조 안에서 생겨나는 약자는 어린이, 가난한 이, 병든 이, 헐벗은 이, 감옥에 있는 이 등일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러한 사회적 약자라고 이름 짓는 대상이 과연 작은 이라고 할 수 있는가에 이의를 제기해보고 싶다. 사실 하느님의 눈으로 보면 그 사람들은 결코 작은 이가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작은 이라는 이름으로 타이틀을 붙여 준 것뿐이다. 사회적 오류라고 나는 생각한다. 하느님 앞에 작은 이는 절대 존재하지 않는다. 하느님께서 손수 사랑으로 만드신 온 세상의 사람은 절대 작은 존재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약하고 가난하고 고립되어 있을 지라도 작은 이로 분류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닐까? 설령 태생이나 사회적 구조 혹은 여러 가지 원인으로 가난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힘들게 살고 있는 사람일지라도 내가 그 사람을 작은 이로 생각해서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하느님으로 생각해서 함께 잘 사는 방법을 모색해야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가난한 사람에게 자선을 베풀고 도움을 준다고 봉사를 한다지만 내가 그들보다 큰 사람이라 생각한다면 그것은 올바른 자선이 될 수 없을 것이며 가난한 사람에게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너와 내가 다르지 않은 똑 같이 생명의 존엄함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도움을 주거나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내가 도움을 주는 입장도 되고 또 내가 도움을 받는 입장도 되는 것이 사람의 삶이다. 그래서 도움을 줄 때도 겸허해야하고 도움을 받을 때도 겸허해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다시 말해 사랑을 주는 일도 사랑을 받는 일도 겸허한 마음 가짐이어야한다는 말이다. 하느님 안에 작은 이는 없고 우리 모두는 소중한 큰 존재임을 알아 당장 내 눈 앞에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하느님의 사람을 지나치지 않도록 애써야 할 것이다. 그러면 주님의 말씀대로 우리 모두는 의인이 되어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곳으로 갈 것이다. 오늘 복음 말씀을 읽고 미사참례하고 묵상하며 떠오른 생각입니다. 월요일의 성체 조배가 점점 더 재미있어집니다. 하느님께서 좋은 것을 마련해 두시고 자꾸 오라 손짓을 합니다. 오늘도 주님의 말씀에 맛 들여 사시는 날 되세요. 사랑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