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3월 4일 사순 제1주간 수요일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 |||
---|---|---|---|---|
작성자노병규 | 작성일2009-03-04 | 조회수962 | 추천수19 | 반대(0) 신고 |
3월 4일 사순 제1주간 수요일 - 루카11,29-32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 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짝사랑의 괴로움>
이 한 세상 살아가면서 우리가 체험하는 많은 일들 가운데 정녕 고통스런 일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응답 없는 사랑’ 다시 말해서 ‘짝사랑’이란 것, 참으로 괴로운 일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한쪽에서는 지속적으로 사랑을 보내는데, 다양한 몸짓으로, 여러 가지 언어로 사랑을 표현하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전혀 반응이 없습니다. 한쪽에서는 이글거리는 눈길을 보내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그 눈길을 외면합니다. 딴전을 부립니다. 관심도 없습니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답답하고 막막한 ‘짝사랑’입니다. 그런데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사랑이야말로 짝사랑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랑은 오가는 맛이 있어야 제격인데, 우리와 하느님 사이의 사랑은 일방적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도 끔찍이 우리를 챙기시는데, 그리도 간절히 우리의 사랑을 갈구하는데, 우리는 그분께로 눈길 한번 드리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묵묵부답인 우리 때문에 늘 괴로우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는 우리에게 결코 사랑을 강요하시지 않습니다. 우리의 자유의지를 존중하십니다. 언제까지나 한없이 기다리십니다.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제가 내린 결론은 이것입니다. 절대자이신 하느님께서, 자유로움 그 자체이신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예속되셨다는 것. 사랑스런 손자손녀 앞에서 꼼짝 못하는 할아버지 할머니처럼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예속되십니다. 이것이야말로 기적 중의 기적입니다.
우리를 필요로 하지 않으시는 완전무결하신 하느님, 우리 없이도 충분히 행복하신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우리 없이는 하느님이기를 포기하겠다고 선언하시고, 우리 없이는 행복하지 못하겠노라고 단언하시며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우리 사랑을 갈구하십니다. 이것처럼 큰 기적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어리석은 하느님의 사랑, 이것이야말로 기적 중의 기적입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 이 사건이야말로 기적 중의 기적입니다.
병사들은 예수님의 옷을 벗겼습니다. 구세주께서 죄인들 앞에 벌거숭이로 서셨습니다. 조롱의 표시로 병사들은 예수님께 홍의(紅衣)를 입힙니다. 가시로 만든 왕관을 씌웁니다. 왕 중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한갓 병사들 앞에 고개를 숙이십니다. 그 철없는 인간들은 존귀하신 예수님의 얼굴에 침까지 뱉는군요. 그리고 마침내 예수님께서는 그 끔찍한 십자가 위로 자진해서 올라가십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느님, 마음만 먹었다하면 지금까지의 최악의 상황을 단숨에 반전시킬 수 있는 능력의 예수님께서 인간의 횡포 앞에, 인간의 실수 앞에, 인간의 착각 앞에 침묵하십니다. 그저 조용히 희생제물이 되십니다. 이것이야말로 기적 중의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집요하게도 기적과 표징만을 쫓아다니는 백성들을 향해 강한 경고의 말씀을 던지십니다.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기적들은 많은 경우 진정한 의미의 기적이 아닐 가능성이 많습니다. 죽어가던 사람이 벌떡 일어나는 치유의 기적, 갑자기 먹구름이 걷히고 나타나는 십자표시, 순식간에 사라져버린 암세포... 사실 이런 기적들은 대체로 유한한 기적입니다. 치유란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번 치유의 은총을 입었다고 합시다. 끝없이 치유가 계속되겠습니까? 그 사람이 영원히 살겠습니까?
결국 진정한 의미의 기적은 십자가의 기적입니다. 십자가를 통한 기적입니다. 십자가를 기쁘게 수용함을 통한 기적입니다.
우리가 매일 지고 가는 십자가를 얼굴 찡그리지 않고, 투덜거리지 않고, 오히려 환한 얼굴로, 좋아죽겠다는 표정으로 지고 가는 것이 이 시대 또 다른 기적입니다.
내가 상대방보다 유능하지만, 상대방보다 높은 위치에 있지만 기쁜 얼굴로 상대방의 밑에 서는 것이 또한 기적입니다.
밀물과 썰물이 교차하듯 끊임없이 우리 인생 안으로 드나드는 것이 십자가입니다. 무수한 십자가, 힘에 겨운 십자가 앞에 울고불고, 힘들다고, 외롭다고 외치며 우리는 그렇게 살아갑니다.
십자가 중의 왕 십자가인 ‘나 자신’이라는 십자가, 고독과 소외라는 십자가, 배척이라는 십자가, 낙담과 내적 번민이라는 십자가, 이 모든 십자가를 나 홀로가 아니라 언제나 주님께서 함께 지고 오셨고, 앞으로도 함께 지고 걸어가실 것이기에 십자가 앞에서도 행복해하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가톨릭성가 121번 / 한 많은 슬픔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