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완장 콤플렉스와 루시퍼 효과 - 윤경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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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윤경재 | 작성일2009-03-11 | 조회수649 | 추천수6 | 반대(0) 신고 |
완장 콤플렉스와 루시퍼 효과 - 윤경재
“스승님의 나라에서 저의 이 두 아들이 하나는 스승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너희는 너희가 무엇을 청하는지 알지도 못한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너희는 내 잔을 마실 것이다. 그러나 내 오른쪽과 왼쪽에 앉는 것은 내가 허락할 일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정하신 이들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다른 열 제자가 이 말을 듣고 그 두 형제를 불쾌하게 여겼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마태 20,20-28)
인간의 행동을 연구하는 행동심리학 책을 읽어보면 우리가 어떤 행동을 조심해야 하는지 깨닫게 됩니다. 그 가운데 ‘교도소 실험’이라 부르는 행동심리 실험이 유명합니다. 1971년 스탠포드 대학에서 지성인이라 하는 대학생 자원 봉사자 18명을 무작위로 두 그룹으로 나누어 모의 교도소 수감자와 교도관 역할을 하게 하였습니다. 사전 심리검사에서 지극히 정상적이고 평범한 사람이었던 참가자들이 시간이 갈수록 급격하게 변하게 되었습니다. 교도관 역을 맡은 대학생들은 갈수록 집단 동조, 권위에의 복종, 비인간화, 익명성이 진행되었으며 수감자들에게 팔굽혀펴기, 침대 뺏기, 담요에 가시 묻히기, 곤봉으로 찌르기와 함께 비역질 흉내 내기 등 같은 인격적 모욕까지 저질렀습니다. 모의 수감자들도 처음엔 비인간적 대접에 항거하는 듯했지만 결국 순종하고 말았습니다. 실험 중간에 참여한 다른 박사가 실험의 비윤리성을 지적하며 중단을 요구해, 2주 예정이었던 실험은 1주일 만에 끝났습니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2004년 미군이 이라크 포로수용소에서 벌인 포로학대 사건으로도 입증이 되었습니다. 평범했던 한 여군이 포로에게 악랄한 성적 추행을 포함한 학대를 감행하고는 그것을 동영상으로 찍고 또 자랑스럽게 유포하는 엄청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행동심리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아예 ‘루시퍼 이펙트’라는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받던 천사 루시퍼가 악마로 변하는 것을 본 딴 이름입니다. 유대인 학살 등 인류 역사에서 벌어진 각종 만행들이 꼭 악한 성격의 사람들이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는 착하다고 여겨지던 평범한 사람들도 가세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교도소 실험에서 실험을 중단하자는 의견을 낸 착한 실험참가자도 있었지만, ‘상황적 강제력’이 증가할수록 그 숫자가 급격하게 줄어들었습니다. 또 그 실험을 지켜보던 50여명의 관찰자들도 실험을 중단하려고 전혀 노력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우리를 더욱 놀라게 합니다. 결국 외부인이 참여하고 나서야 실험을 중단하게 하였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두 아들을 예수님의 오른쪽과 왼쪽에 앉히려드는 한 어머니의 평범한 갈망을 보게 됩니다. 또 그 말을 들었던 다른 제자들이 불쾌하게 여겼다고 분명히 적혀 있습니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예고하는 자리에서 누가 다음 번 완장을 찰 것인지 떠올렸다는 것 자체가 인간의 어리석음을 단적으로 표현한 내용입니다. 우리는 어느 집단에서나 자연스럽게 서열이 정해지는 것을 봅니다. 아무리 잘 굴러가는 집단에서도 그 이면에는 엄청난 갈등이 내재해 있다는 것도 잘 압니다. 그리고 한 사람이라도 ‘완장 콤플렉스’에 걸려들면 그 집단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급격하게 폭력화하고 분열하며 와해된다는 것도 일상생활에서 여러 번 체험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약점을 훤히 꿰뚫어 보십니다. 그리고 자신의 무력함을 들어 제자들을 가르치시는 겸손과 지혜로 이끄십니다. 실제로 천국에 어떤 서열이 있겠습니까마는 그것마저도 아빠 하느님의 결정사항이라고 당신을 낮추십니다. 이처럼 우리가 모두 스스로 낮추고 섬기는 사람이 될 때 그 집단은 존속할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튀어보려는 시도를 할 때 그 집단은 잠재된 갈등이 솟아올라 본래 선한 취지가 사라지고 맙니다. 아무리 선한 의지라 하더라도 남보다 앞서려는 생각은 우리를 악마 루시퍼로 만들고야 말 것입니다. 교도소 실험에서 보았듯이 인간의 행동은 사소한 변화에도 취약합니다. 그런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인정해야 합니다. 개인의 성격, 집단 문화, 사회적 시스템, 상황적 강제력 등등 어느 하나라도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이런 총체적 약점을 해결할 방법은 사랑과 지혜를 갖춘 용기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하나라도 놓쳐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 분명해졌습니다. 언제 어떤 상황에 닥치더라도 예수님의 말씀을 잊지 않고 지키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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