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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모하시다(마르코9,1-50)/박민화님의 성경묵상
작성자장기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9-03-13 조회수655 추천수4 반대(0) 신고
 2009년 3월 13일 금요일 마르코복음9장
 
1
예수님께서 또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기에 서 있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죽기 전에
하느님의 나라가 권능을 떨치며 오는 것을 볼 사람들이 더러 있다.”
 
설명:
이 말씀은 육안으로 볼 때는 이해하기 어려운 말입니다.
루카복음 24장에서는
예수님께서 승천하는 것으로 성경이 끝이 나지만
사도행전 1장에서는
예수님의 승천으로부터 성경이 시작됩니다.
 
육안으로 보면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 그 모습으로 다시 재림하신다고 생각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신령체로 계시기 때문에
막달라 여자 마리아도
처음에는 예수님을 보고도 알아보지 못했던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신령체로 계시기 때문에
영안이 열리지 아니하면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볼 때는
예수님께서는 말씀으로 성령으로 재림을 하시기 때문에
성경 읽고 묵상하고 기도할 때,
내 안에 계신 사랑이신
하느님을 느끼고 만지고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읽고 살아갈 때, 말씀의 열매인 사랑, 기쁨, 평화 등이
삶에서 나타나며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살아 있는 우리들에게 올 수 있는 것입니다.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모하시다(마태 17,1-9 ; 루카 9,28-36)
 
수난과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수난과 죽음을 통하여
부활하여 부활 영광을 받으신 것입니다.
수난과 죽음과 부활을 깨닫는 것이
하늘 나라이고 사랑이고 영원한 생명인 것입니다.
 
최초로 예수님께서
수난과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부활 영광을 받으신 것처럼,
우리 성도들도 수난과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예수님과 함께 부활 영광에 참여하는 것이
하늘 나라이고 구원이고 영원한 생명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7장에서
예수님이 죽는 것이 아버지께 영광을 바치는 것이고
예수님께서 영광을 받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 상에서 희생 제물이 되어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 예수님의 길이며,
 
예수님은 십자가 상에서 죽는 것이 예수님의 길이지만,
우리들은 될 수만 있으면 죽지 않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부부간에 싸움도 죽지 않고 살아있기 때문에 싸우는 것입니다.
한쪽이 죽으면 싸움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을 완전히 버리고 죽는 것이 십자가의 길입니다.
 
내가 아는 어떤 분은 화 자체가 없고 미움 자체가 없기 때문에
결점을 말해줘도
화를 내지 않고 감사하다고 말하는 사람을 알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어떤 어려운 고통이 올 때
이 고통과 수난을 통하여 믿음이 한 차원 더 성장하여
예수님 닮은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2
엿새 뒤에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 따로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셨다. 그리고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셨다.
 
설명:
베드로,야고보와 요한 세제자를 데리고 산으로 올라가신 것은
3 이라는 숫자는 부활을 상징하며
어떤 해석은 이 3 이라는 숫자는 믿음(베드로사도),
소망(야고보사도),사랑(요한사도)을 의미 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3
그분의 옷은 이 세상 어떤 마전장이도 그토록 하얗게 할 수 없을
 만큼 새하얗게 빛났다.
4 그때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그들 앞에 나타나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5
그러자 베드로가 나서서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스승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
 
설명:
베드로가 초막 셋을 지어서 하나는 스승님께 하나는
모세에게 하나는 엘리야에게 드리겠다고 말하니까
예수님께서 대답을 하지 않으시고 간질병환자를 치료하시면서
"베드로, 네 안에 초막을 지어야 된다는 것을 모르고
이미 천국이 이루어진 복음이신 예수님과 율법인 모세와
예언서인 엘리야에게 초막을 지어주겠다는 말을 하는 것은
베드로 네가 영적인 간질병자라는 것입니다."
 
우리들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는 초막을 지어야
성전이 되며 이동하는 감실이 되고
하늘 나라가 우리 안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6 사실 베드로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던 것이다. 제자들이 모두 겁에 질려 있었기 때문이다.
7
그때에 구름이 일어 그들을 덮더니 그 구름 속에서,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하는 소리가 났다.
 
설명:
예수님이 그리스도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하늘에서 아버지께서 증거하시고 계시며,
땅에서는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께 세례를 주실 때,
 "세상의 죄를 짊어지고 가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 저기 가신다."
라고 증거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복음 선포를 함으로써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라는 것을
우리들 삶 안에서 매일매일 증거합시다.
 
8 그 순간 그들이 둘러보자 더 이상 아무도 보이지 않고 예수님만 그들 곁에 계셨다.
9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사람의 아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날 때까지, 지금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분부하셨다.
 
설명: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말로 해서는 깨달을 수가 없기 때문에
예수님의 부활 영광을 보았던
제자들에게 말을 하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보고 성경을 깨달을 수 있는 것은
말로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깨닫게 해주실 때 알게 되는 것이므로
성경 말씀을 읽고 계속 묵상하는 시간을 갖고
하느님께 자비의 기도를 드립시다.
 
10
그들은 이 말씀을 지켰다. 그러나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를 저희끼리 서로 물어보았다.
 
설명:
죽음도 구약과 율법차원에서는 육체적인 죽음을 말하지만,
 
공관복음 차원에서는 숨을 쉬고 살아 있어도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잠자거나 죽어 있다고 말하며
 
요한복음 차원에서는
하느님 말씀을 깨달아 사랑의 열매차원에 없으면 죽어있다 하고
 
요한 묵시록인 계시차원에서
사랑으로 우리들 삶에서 살아 가면서
예수님 닮은 삶을 살아가지 못하면 죽은 사람들이라고 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죽은 자의 장사는 죽은 자에게 맡기고 너희들은 나를 따라
오너라.”하고 말씀하십니다.
죽은 자의 장사를 죽은 자가 지내라는 말은
육안으로 볼 때는 이해가 잘 안되는 말입니다.
 
그러나 영차원으로 볼 때는 창세기 3장에서
하느님께서 선악과 열매를 먹으면 반드시 죽는다고 했는데,
아담 하와는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써 육신은 죽지 않았지만
영혼 즉 심령은 죄로 인해서 죽어 있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은 세례를 받음으로써 죽은 영혼이 다시 살아나게 되는데,
이것을 세례를 통한 첫 번째 부활이라고 하며(묵시록20,6),
우리 모든 인류는 아담 하와로부터 원죄가 유전 되었기 때문에
믿고 세례받음으로써 구원받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구원은 하느님 은총이기 때문에
세례 안받은 사람도 양심법을 지키고 율법을 지키며 착하게 살아가며,
회개하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과 세례를 통하여 구원받는 길은 확실합니다.
(마르 16,16).

엘리야의 재림(마태 17,10-13)
 
구약에서 엘리야는 제자 엘리사를 위하여 준비를 하였으며
엘리사는 엘리야보다 더 배나 영적인 기적을 보였으며
엘리야가 엘리사를 위하여 예비했던 것처럼
 
세례자 요한이 엘리야 역할을 하여
좁은 길은 넓히고 높은 산과 언덕은 깍아 내리고 골짜기는 메우고,
예수님을 위하여 길을 준비하며 예수님에게 세례를 줄 때
하늘이 열리고 성령을 상징한 비둘기가 내려오고
하늘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너희들은 그의 말을 들어라."하고 소리가 들려 왔으며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이 구세주 메시아라는 것을
율법을 믿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세례를 통하여 증거하는 것입니다.
 
땅에서는 세례자 요한이 증거하고
하늘에서는 아버지(성부)가 증거하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우리 모든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하느님으로 구세주로 증거하는 것이 복음 선포입니다.
 
11 제자들이 예수님께 “율법 학자들은 어째서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말합니까?” 하고 물었다.
12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과연 엘리야가 먼저 와서 모든 것을 바로잡는다. 그런데 사람의 아들이 많은 고난과 멸시를 받으리라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것은 무슨 까닭이겠느냐?
13 사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는데, 엘리야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가 이미 왔지만 사람들은 그를 제멋대로 다루었다.”

어떤 아이에게서 더러운 영을 내쫓으시다 
 
'더러운 영'하면 구약에서는 옛뱀,
공관복음에서는 사탄,
요한복음에서는 마귀,
묵시록에서는 용이라고 하지만
더러운 영이란 말은,
그리스어(헬라어)로는 '아카다르토스'(akadaptos)인데
죄가 있는 사람은 다 더러운 영인 것입니다.
 
성경에서 죄라는 말은 '하마르티아'(amaptia) 를 말하는데
이 '하마르티아'란 말은 '원죄'를 말합니다.
그래서 세례를 받음으로써 원죄사함 받고
하느님의 자녀들이 됨으로 성도들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 즉 레마 말씀으로 믿음이 오기 때문에
세례받고 신앙생활하면서 성경 말씀 읽고 묵상하며 영성체를 모실 때
우리들 마음이 거룩해지며 성도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믿음과 기도를 통해서
더러운 영을 쫓아낼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들어 왔을 때
지금까지 나를 지배하고 있던 더러운 영이 나가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5,3에
"내가 한 말로 깨끗해 졌다"고 하실 때
이 깨끗하다는 말은 '카다로스'(kadapos)인데
말씀으로 죄사함 받아 심령이 깨끗해졌다는 뜻입니다.
 
14 그들이 다른 제자들에게 가서 보니, 그 제자들이 군중에게 둘러싸여 율법 학자들과 논쟁하고 있었다.
15 마침 군중이 모두 예수님을 보고는 몹시 놀라며 달려와 인사하였다.
1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저들과 무슨 논쟁을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17 군중 가운데 한 사람이 대답하였다. “스승님, 벙어리 영이 들린 제 아들을 스승님께 데리고 왔습니다.
18
어디에서건 그 영이 아이를 사로잡기만 하면 거꾸러뜨립니다. 그러면 아이는 거품을 흘리고 이를 갈며 몸이 뻣뻣해집니다. 그래서 스승님의 제자들에게 저 영을 쫓아내 달라고 하였지만,
그들은 쫓아내지 못하였습니다.”
19 그러자 예수님께서, “아, 믿음이 없는 세대야! 내가 언제까지 너희 곁에 있어야 하느냐? 내가 언제까지 너희를 참아 주어야 한다는 말이냐? 아이를 내게 데려오너라.” 하고 그들에게 이르셨다.
20
그래서 사람들이 아이를 예수님께 데려왔다. 그 영은 예수님을 보자 곧바로 아이를 뒤흔들어 댔다.
아이는 땅에 쓰러져 거품을 흘리며 뒹굴었다.
21 예수님께서 그 아버지에게, “아이가 이렇게 된 지 얼마나 되었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가 대답하였다. “어릴 적부터입니다.
22 저 영이 자주 아이를 죽이려고 불 속으로도, 물속으로도 내던졌습니다. 이제 하실 수 있으면 저희를 가엾이 여겨 도와주십시오.”
23 예수님께서 그에게 “‘하실 수 있으면’이 무슨 말이냐? 믿는 이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하고 말씀하시자,
24
아이 아버지가 곧바로, “저는 믿습니다.
믿음이 없는 저를 도와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25 예수님께서는 군중이 떼를 지어 달려드는 것을 보시고 더러운 영을 꾸짖으며 말씀하셨다. “벙어리, 귀머거리 영아, 내가 너에게 명령한다. 그 아이에게서 나가라. 그리고 다시는 그에게 들어가지 마라.”
26
그러자 그 영이 소리를 지르며 아이를 마구 뒤흔들어 놓고 나가니, 아이는 죽은 것처럼 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모두
“아이가 죽었구나.” 하였다.
27 그러나 예수님께서 아이의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아이가 일어났다.
28
그 뒤에 예수님께서 집에 들어가셨을 때에 제자들이 그분께 따로, “어째서 저희는 그 영을 쫓아내지 못하였습니까?” 하고 물었다.
29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그러한 것은 기도가 아니면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나가게 할 수 없다.”

수난과 부활을 두 번째로 예고하시다 (마태 17,22-23 ; 루카 9,43-45)
 
수난과 죽음과 부활이라는 첫 번째 예고 때는
종말 이야기만 나오고
두 번째 수난과 죽음과 부활에서는
봉헌과 어린 아이의 예화가 나오는데,
우리들도 우리들의 심령이 점진적으로 죽고 변화가 되는 것입니다.
 
물론 주님 말씀을 듣고 한 번에 수난과 죽음과 부활이
 
일차 이차 삼차 예고 없이 죽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에는 내 안에서 화가 없어졌는가 하면 다시 생겨나고,
미움과 시기도 없어졌나 하면
어느 순간에 다시 나타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읽을 때마다 나의 심령이 죽고
예수님 닮은 삶으로 조금씩 변화가 되기 때문에
말씀을 모르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라고 자부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30 그들이 그곳을 떠나 갈릴래아를 가로질러 갔는데, 예수님께서는 누구에게도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다.
31 그분께서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그들 손에 죽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다.” 하시면서, 제자들을 가르치고 계셨기 때문이다.
32 그러나 제자들은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분께 묻는 것도 두려워하였다.

가장 큰 사람(마태 18,1-5 ; 루카 9,46-48)
 
세상 이치로 보면
가장 크고 가장 높은 사람은
권력있거나 명에나 돈이 많거나 이런 사람들을 말하지만,
하늘나라에서는 이 세상에서는 가장 보잘것 없는 사람들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말씀에 따라 살아 가는 사람이며,
예수님이 내 안에 있는 사람이
하늘 나라에서는 제일 큰 사람이고 첫째가 되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신앙생활을 먼저 했어도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은 꼴찌가 되고,
신앙생활을 얼마하지 않았어도
예수님을 만나면 첫째가 되고 큰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 민족들이 율법을 수 천년 믿었어도
예수님과 복음을 믿지 않으면 꼴찌가 되는 것이고,
예수님과 복음을 믿는 사람은
하늘 나라에서 가장 높은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에,
예수님 때문에 첫째가 되고 높은 사람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스라엘과 중동 하마스 즉 회교도들은
율법만 믿고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기 때문에
2000 년 동안 계속 싸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65억 전 인구가
예수님과 복음을 믿고 죄사함을 받아 구원 받을수 있도록
하느님께 자비의 기도를 드립시다.
 
마태복음 5,44에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한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많이 용서하면 많이 사랑하고
많이 사랑하면 많이 용서하는 것입니다.
용서와 사랑은 하느님의 속성입니다.
 
33
그들은 카파르나움에 이르렀다. 예수님께서는 집 안에 계실 때에 제자들에게, “너희는 길에서 무슨 일로 논쟁하였느냐?”
하고 물으셨다.
34 그러나 그들은 입을 열지 않았다. 누가 가장 큰사람이냐 하는 문제로 길에서 논쟁하였기 때문이다.
35
예수님께서는 자리에 앉으셔서 열두 제자를 불러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고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
36
그러고 나서 어린이 하나를 데려다가 그들 가운데에 세우신 다음,
그를 껴안으시며 그들에게 이르셨다.
37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지지하는 사람이다(루카 9,49-50)
 
38 요한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어떤 사람이 스승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저희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저희를 따르는 사람이 아니므로, 저희는 그가 그런 일을 못 하게 막아 보려고 하였습니다.”
39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막지 마라. 내 이름으로 기적을 일으키고 나서, 바로 나를 나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40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4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사람이기 때문에 너희에게 마실 물 한 잔이라도 주는 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

죄의 유혹을 단호히 물리쳐라(마태 18,6-9 ; 루카 17,1-2)
 
42
“나를 믿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자는,
연자매를 목에 걸고 바다에 던져지는 편이 오히려 낫다.
 
설명:
연자매는 육적으로 볼 때는 연자맷돌을 돌리는 것이지만
차원을 달리해서 영차원으로 볼 때는 율법을 상징하며,
바다도 육안으로 볼 때는 바다지만,
영안으로 볼 때는 세상을 바다라고 하며
세파에 찌들렸다라고 하는 표현도 있습니다.
 
우리들도 율법에 매여 있으면 무거운 짐이 되며
율법을 지킬려고 해도 다 지키다가도
한 가지만 지키지 못하면 정죄가 되기 때문에
율법에서 복음으로 차원을 달리해서 살아갈 때
사랑의 사람이 되는 것이며
사랑에는 정죄가 따르지 않는 것입니다.
 
43
네 손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버려라.
두 손을 가지고 지옥에, 그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불구자로 생명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
 
설명:
손도 구약차원인 율법으로 볼 때는 육체의 손을 말하지만
영차원으로 볼 때는 마음의 손 심령의 손을 말하기 때문에
내 마음에 있는 심령의 손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문자 그대로 보면 손을 잘라 버리라는 뜻이지만,
영차원으로 볼 때는
죄를 짓는 마음의 손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45
네 발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버려라.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절름발이로 생명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
47
또 네 눈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 던져 버려라.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외눈박이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
 
설명:
눈도 육의 눈과 영의 눈이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육의 눈을 빼라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눈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48
지옥에서는
그들을 파먹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는다.”
 
소금은 녹아야 짠 맛을 내며 소금은 부패를 방지하기 때문에
소금의 속성이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49 "모두 불 소금(예수 그리스도 상징)에 절여질 것이다.
50 소금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그 맛을 내겠느냐? 너희는 마음에 소금을 간직하고 서로 평화롭게 지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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