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그리스도의 자존감인 성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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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현아 | 작성일2009-03-15 | 조회수710 | 추천수9 | 반대(0) 신고 |
사순 제 3 주일 - 그리스도의 자존감인 성전 살다가 가장 힘이 빠지는 때는 ‘자존감’이 무너질 때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물론 자존심은 사랑을 방해하기 때문에 무너질수록 좋을 수 있지만 ‘자기 존재감’, 즉 자존감이 사라지면 사는 의미가 없어질 수도 있기에 그것까지 사라져서는 안 됩니다. 자존감은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선물인 자신의 존재를 소중하게 느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도 느낀 적이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 그것도 자신이 사랑한 사람에게 결국엔 장난감 취급을 당했다는 것을 느낄 때는 자존심이 아니라 자존감이 무너짐을 느낍니다. 어떤 남자에게 한 여자가 그 사람을 좋아한다는 표현을 자주 했습니다. 편지를 써서 좋아한다는 표현을 하고 말과 행동으로도 누가 보아도 좋아한다는 표현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여자는 사귀는 사람이 있었고 그 사람은 그 남자와도 아는 사이였습니다. 그러나 여자가 자신을 좋아한다고 굳게 믿고 눈치불구하고 그 여자에게 다가갔습니다. 주위로부터 많은 지탄을 받았지만 그 여자가 자신을 좋아하는지 알고 그런 시선들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그 남자는 그 여자에게 “사실은 당신을 특별히 좋아한 게 아니에요. 당신은 제가 좋아하는 사람 중에 하나였어요.”라는 말을 듣게 됩니다. 그 남자는 결국 여자에게 장난감 취급을 당한 것이 된 것입니다. 이 때 남자의 기분은 어떨까요? 한 여자의 장난스런 행동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던 이 남자의 기분은 어떨까요? 자신이 한 없이 바보스러워지고 화가 나지 않을까요? 오늘 복음 말씀에서는 좀처럼 우리가 볼 수 없었던 예수님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성전 안에는 많은 장사꾼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채찍을 만들어 그들을 내쫓고 탁자를 뒤엎고 동물들을 쫓아버리는데 아무도 말리지 못할 정도로 폭력을 행사하십니다. 제자들은 그분의 모습을 보고 시편 69장에 나오는 “당신 집에 대한 열정이 저를 집어 삼킬 것입니다.”라는 성경말씀이 떠올랐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라고 하시며 성전은 거룩한 곳이고 기도하는 곳이 되어야 할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런 일을 하는 권한을 보여 달라고 하는 지도자들에게 성전을 허물면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성전을 짓는데 사십육 년이나 걸렸는데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겠느냐며 믿지 않지만 사실 예수님께서 성전이라 하신 것은 당신 몸을 두고 하신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돌아가셨다가 삼일 만에 다시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신 뒤에야 이 말씀의 참 뜻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오늘 복음 말씀을 읽으면서 우리는 예수님의 아버지의 집에 대한 특별한 사랑과 열정을 볼 수 있었습니다. 성경 어디를 보아도 예수님께서 폭력을 휘두르신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더럽혀진 아버지의 집을 보시자 그 집에 대한 열정에 사로잡혀 그 안에 있는 모든 죄의 온상들을 무력으로 쓸어버리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성전에 대한 애착은 곧 당신의 ‘자존감’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성전이 곧 당신 몸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것은 다 참아도 당신과 동일시되는 성전이 사람들에 의해 장난감처럼 짓밟혀지는 것을 참을 수 없으셨던 것입니다. 성전은 그리스도의 자존감입니다. 그 성전은 또한 우리 마음 안에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신 이후 병사가 예수님의 심장을 창으로 찔렀습니다. 그 상처에서 피와 물이 나왔다고 요한복음은 전합니다. 그리고 그 심장이 찢어질 때 성전 지성소의 휘장도 찢어졌습니다. 성전의 지성소는 성전의 심장으로 계약의 궤를 넣어두었던 곳입니다. 성전의 휘장이 찢어졌다는 것은 더 이상 땅의 성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심장이 찢어지며 그 안에서 피와 물이 나옴으로써 우리 각자의 마음 안에 성전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고 구약의 성전은 더 이상 가치가 없어지게 된 것입니다. 성전은 하느님이 계신 곳이고 하느님을 만나는 곳입니다. 인간이 죄를 짓기 이전에는 하느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죄를 짓고 나서는 인간은 땅과 함께 저주를 받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은 하늘에만 머무시게 됩니다. 이렇게 인간의 마음은 더 이상 하느님을 만나는 장소가 아닌 ‘도둑들의 소굴’로 변해버린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마음에 다시 성전을 지어주시기 위해 오신 분입니다. 그러나 그 성전을 정화하기 위해서는 ‘폭력’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성전을 정화하시기 위해 폭력을 쓰셨던 것처럼 우리 성전을 정화하기 위해서도 폭력을 쓰십니다. 그러나 그 폭력을 우리에게 쓰시는 것이 아니라 당신 자신에게 쓰십니다. 그렇게 산고의 고통을 겪으시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 안의 성전은 이렇게 예수님과 성모님의 산고의 고통을 통해서 탄생된 것입니다. 그만큼 우리 안에 다시 세워진 성전은 소중한 것이고 누가 그것을 스스로 파괴한다면 예수님과 성모님은 산고의 고통보다 더 큰 자녀를 잃는 고통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피와 물로 태어난 자녀들이기 때문입니다. ‘피’는 산고의 고통으로써 더럽혀진 우리 성전을 정화하기 위해 받으신 고통입니다. ‘물’은 그렇게 정화되어 비로소 우리 안에 들어오게 되시는 성령님입니다. 성모님께서 성령님으로 그리스도를 잉태하셨듯이 성령님이 우리 안에 들어오시면 우리 안에 그리스도께서 잉태되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아버지는 곧 한 몸이기 때문에 우리 안에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머무시는 성전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성전은 다시 더럽혀져 예전 상태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구약의 성전에 장사꾼들로 가득 차 있었던 것처럼 우리 마음 안의 성전에 하느님 아닌 다른 것으로 채운다면 그 성전은 더 이상 하느님이 사실 수 있는 곳이 되지 못합니다. 하늘나라는 하느님께서 계신 곳이고 지옥은 하느님께서 계시지 않은 곳입니다. 죄인의 마음은 성전에서 지옥으로 변하게 됩니다. 마음을 지옥으로 만드는 것은 또다시 우리를 진심으로 사랑하셔서 성전을 세워주셨던 우리의 신랑을 가지고 노는 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우리 신랑이신 그리스도는 마지막 날에 이 분노를 영원한 불로 남겨놓으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자존감은 곧 분노를 낳게 되는데 하느님이 영원하신 것처럼 그 분의 분노도 영원할 것이고 그래서 지옥불도 꺼지지 않는 것입니다. 제가 대학교 다닐 때 성당에서 알게 된 어떤 형에게 선물을 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 형은 저를 약간은 시기하는 듯 보였지만 저 나름으로는 형제적 사랑으로 선물을 골랐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별것 아니지만 주걱처럼 생긴 책갈피였습니다. 그 형은 저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 선물에 표현했습니다. 그 선물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았고 결국 아이스크림을 먹는데 그 선물로 퍼먹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전 재산 털어 산 선물인데 저렇게 취급할 수 있을까?’ 생각했고 다 잊기는 했지만 가끔 생각하면 그래도 마음이 아픕니다. 하물며 예수님이야 어떻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성전을 우리를 위해서 세워주실 필요가 없으셨습니다. 그 성전을 세우는 값이 바로 그리스도께서 심장이 찢어지도록 받은 수난의 고통이고 흘리신 핍니다. 그렇게 세워주신 아버지의 집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는데 우리가 아무런 느낌도 없이 죄를 지어서 다시 못쓰게 만들어버린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심장을 두 번 찢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받은 선물은 비록 작은 것일지라도 평생 동안 그 사랑의 기억을 위해서 간직하기도 합니다. 하물며 하느님께서 죽음으로써 주신 우리 마음의 성전을 쉽게 죄를 지으며 무너뜨린다면 우리가 예수님 앞에 나아갔을 때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적어도 우리 마음에 하느님께서 계신다고 믿는다면 다시 이 성전을 허물어버려 못쓰게 되지 않도록 우리도 예수님처럼 아버지 집에 대한 열정을 조금이라도 가지려고 노력해야겠습니다. 성전은 그리스도의 자존감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소홀히 대하면 그리스도의 자존감이 무너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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