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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네 성전을 허물어라 - 윤경재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9-03-15 조회수522 추천수9 반대(0) 신고
 
 

네 성전을 허물어라 - 윤경재

유다인들의 파스카 축제가 가까워지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 성전에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자들과 환전꾼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이것들을 여기에서 치워라.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 하고 이르셨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그분께서 성전이라고 하신 것은 당신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신뢰하지 않으셨다. 그분께서 모든 사람을 다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 그분께는 사람에 관하여 누가 증언해 드릴 필요가 없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사람 속에 들어 있는 것까지 알고 계셨다. (요한 2,13-25)

 

 유대인들은 46년에 걸쳐 짓는 중인 성전 건물에 남다른 애착심과 자부심을 느꼈습니다. 비록 이방인이었던 헤로데 대왕이 시작하였지만, 건축과정에 유대인들의 의견이 반영되었던 것입니다. 번듯한 성전이 생기니 성전을 의무적으로 순례했던 백성은 하나 둘 완성되어가는 모습을 보며 흡족함을 느껴 순례의 발길이 더욱 증가하였습니다. 그래서 성전 앞마당에는 제물봉헌에 필요한 가축을 파는 장사꾼 하며 향과 성전세에 필요한 환전소가 늘어섰습니다. 흠 없는 봉헌물을 바쳐야 했고 로마 황제가 새겨진 동전은 우상숭배라 하여 봉헌할 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장사치들에는 율법을 어기거나 율법을 모르는 이방인들이 많이 섞여있었습니다. 수입을 늘리려고 자릿세를 충분히 내는 사람에게만 장사하도록 허용했습니다.

  이런 막나가는 상황을 보고 의분을 느낀 사람들이 여럿 있었을 것입니다. 과거에도 수많은 예언자들이 나와 거룩한 성전이 장사꾼의 소굴로 변한 것을 탄식하고 정화하려 애썼습니다. 예수님도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는 예언자적 행동을 몸으로 실천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불의에 항거하는 행동에 움찔하였습니다. 혹시 예언자인가하는 일말의 기대가 있었습니다. “당신이 이런 일을 해도 된다는 무슨 표징을 보여 줄 수 있소?”라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어리둥절했습니다.

  성전을 세운 목적이 기도로써 하느님과 만나고 하느님의 뜻을 이 세상에서 실현하여 하느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모습을 만방에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장사꾼의 소굴로 전락하여 본래 목적을 훼손했다는 뜻이었습니다. 활을 쏘아 과녁에 빗나가게 맞췄으니 다시 겨냥하여야 한다는 말이었습니다. 이제 그 목표점은 외적인 성전이 아니라 개개인의 영적 회개에 두어야하는데 그 계기를 예수님께서 직접 몸으로 보여주시겠다는 의미였습니다.

  제자들은 이런 예수님 말씀의 의미를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들을 당시에는 그냥 지나가는 말쯤으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시는 사건을 겪고는 모든 것이 뚜렷하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체험이 예수께서 살아계실 때 하셨던 말씀과 행동들을 회상하고 재해석하도록 이끌었습니다. 그리고 복음서에 주석처럼 달아놓았습니다. 이런 것을 심리학에서는 회상기술(reminiscence)이라고 부릅니다. 

“보호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요한 14,26)

  이제 누구나 하느님께서 보내주시는 영적인 성전을 자신의 몸 안에 세워 하느님과 직접 만나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전에 우리는 자신이 세운 헛된 성전을 허물어야 합니다.

  불교에 ‘殺佛殺祖’라는 공안이 있습니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라는 말입니다. 임제 선사가 한 말로써 진리를 찾으려는 정신자세가 용맹스럽고 과녁을 제대로 겨냥하라는 뜻입니다. 사람은 모두 무위진인(無位眞人)이며 공연히 헛된 성전을 짓지 마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그런 경지를 몸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믿음을 가지고 어떤 행동을 하고 누구를 따라 삽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런 사람들의 믿음에 신뢰를 두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의 믿음이라는 것이 자신의 확신에 뿌리를 두기 때문이었습니다. 성령께서 이끄시는 것이 아니면 헛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 안에 성령께서 들어와 사시는지 아닌지 한눈에 알아보셨습니다. 사람들의 증언이 필요가 없었습니다.

  우리도 자신의 믿음이 자기 확신에 따른 것인지 성령의 이끄심으로 오는 것인지 겸허하게 분별하여야 합니다. 자기 확신에 지나지 않는다면 우리는 또 다른 성전을 짓고 있는 것이며 그 성전마저 장사꾼의 소굴로 어지럽히고 있는 것입니다. 매순간 우리는 진정한 성령의 목소리를 듣도록 자신의 성전을 허물어야 합니다. 다시는 그런 성전을 지으려는 시도조차 하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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