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사실과 진리 - 윤경재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9-03-19 조회수694 추천수11 반대(0) 신고
 
 

사실과 진리 - 윤경재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아내를 맞아들였다.” (마태 1,16-24)

 

 성경에서 예수님의 양부 요셉 성인에 대한 자료가 지극히 제한적입니다. 예수의 탄생과 유년시절 이야기에 동정녀 마리아의 배필로 다윗의 자손으로 소개됩니다. 예수님 공생활 동안에는 등장하지 않고 예수의 아버지로 언급될 뿐입니다. 마태오 13,55에는 이름도 나오지 않고 목수라는 직업만 나옵니다. 루카 4,22절과 요한 6,42절에서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지방에서 머무실 때 어머니와 형제들이 예수를 찾았지만 요셉의 이름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마태오 저자는 요셉을 의로운 사람이었다고 표현하였습니다.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고 기술하였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파혼하려 했기에 의인이라 부르기에는 부족한 감이 있습니다. 실제로 파혼이 성사되었다면 예수가 다윗의 후손이었다는 호칭을 받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마리아와 그 부모는 요셉에게 마리아가 아이를 잉태하였다는 사실을 알렸을 것입니다. 마리아도 자기가 겪었던 사건을 상세하게 설명했을 겁니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이야기를 들은 요셉은 상당히 어리둥절했고 어찌 처신해야 할런지 난감했습니다. 평소 약혼녀에 대한 소문을 들었을 것이며 그녀의 행동을 눈여겨보았을 겁니다. 마리아에게서 풍겨 나오는 인품으로도 그녀의 말을 신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고민스러웠습니다. 몇 날 며칠을 불면의 밤을 보냈습니다. 하느님께 기도도 열심히 드렸습니다.

  요셉이 내린 결론은 이랬습니다. 마리아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다. 굳이 그녀가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마리아의 뱃속에 있는 아기는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틀림 없겠고, 신령한 존재일 것이다. 나의 혈통이 아니니 나는 하느님의 신비에 간섭할 처지가 못 된다. 마리아는 하느님께서 선택한 사람이니 사람들이 함부로 대하게 만들어서는 안 되겠다. 그러니 조용하게 파혼함으로써 마리아도 살리고 뱃속 아이도 내 소유로 만들지 않고 하느님의 신비를 유지하게 하자. 이런 결론을 내리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요셉은 오랜만에 깊은 잠에 들었습니다. 먼 조상 꿈쟁이 요셉처럼 그도 큰일을 앞두고 신비한 꿈을 꾸곤 하였습니다. 마리아와 정혼할 때도 아주 기분 좋은 꿈을 꾸었습니다. 그녀가 꿈속에 나타나 반갑게 인사하고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마리아가 천생배필인 줄 알았습니다. 그날도 좋은 꿈을 꾸었습니다. 꿈속에서 그는 꽃향기를 맡았습니다.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향기였습니다. 또 밝은 빛이 방안을 훤히 비추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주님의 천사가 천정에서 내려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눈 같이 하얀 옷을 입고 얼굴은 광채가 났습니다. 하지만 눈을 못 뜰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요셉은 얼른 일어나 무릎을 꿇고 그 천사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러자 천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요셉은 정신이 번쩍 났습니다. 그리고 잠에서 깨어 꿈속에서 들었던 말씀과 그 광경을 곰곰이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는 곧 그 말씀의 뜻을 이해하였습니다. 아이가 다 자랄 때까지 보호하라는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다윗 가문의 영예를 그 아이에게 물려주라는 말씀이기도 했습니다. 자신도 하느님께 선택되었다고 깨달았습니다. 요셉은 마리아가 잉태했다는 사실을 훼손하지 않으려 파혼을 결심했지만, 그 엄청난 사건의 이면에는 그에게도 어떤 일이 맡겨졌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요셉은 아무도 믿지 못할 그 꿈 이야기를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마리아에게만 말해 주었습니다. 한 걸음에 달려가 아이의 이름을 대며 그 꿈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마리아도 무척 기뻐하였습니다. 맑은 두 눈에 눈물이 펑펑 쏟아졌습니다. 그간 얼마나 두렵고 가슴이 답답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마리아의 손을 꼭 잡아주었습니다.

  이렇게 겉으로 보이는 사실과 그 이면에 흐르는 진리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요셉은 사실보다는 진리를 알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꿈속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났던 것입니다.

  우리도 지난달에 이런 경험을 하였습니다. 김수환 추기경님의 선종이 어떻게 우리 국민을 움직였는지 보았습니다. 추기경님께서 남기고 가신 두 눈의 각막은 두 사람에게만 빛을 준 것이 아니라 온 국민의 가슴에 커다란 빛을 비춰주셨습니다. 추기경님의 사랑에 감동한 사람들이 결심한 장기 기증 서약은 몇 배로 증가했고 각 성당에는 입교를 결정한 예비자들이 넘치고 있습니다. 그들은 죽음이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진리를 김 추기경님의 선종 사실에서 깨달았던 것입니다. 몇몇 사제와 교우들은 꿈속에서 김수환 추기경님의 모습을 보았다고 말합니다. 천국에서 환하게 웃고 계시는 모습을 보았다고 증언합니다.

  요한복음 18장에서 빌라도는 예수님께 “당신이 유다인들의 임금이오?”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임금이라고 네가 말하고 있다. 나는 진리를 증언하려고 태어났으며, 진리를 증언하려고 세상에 왔다. 진리에 속한 사람은 누구나 내 목소리를 듣는다.” 빌라도는 사실에 모든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진리를 알아들으라고 요청하신 것입니다. 또 진리가 무엇인지 들으려한다면 깨달을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말씀을 들은 빌라도는 “진리가 무엇이오?”라고 되묻고 다시 유다인들이 있는 곳으로 나가 말하였습니다. “나는 저 사람에게서 아무런 죄목도 찾지 못하겠소.”그는 사실을 말하였습니다. 하지만 진리를 깨닫지는 못한 것이었습니다. 진리를 눈앞에 두고도 진리를 보지 못한 것입니다.

  요셉 성인이 의인인 까닭은 바로 진리를 찾으려 했고 진리를 간직하려는 자세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요셉 성인의 그런 태도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계획은 어그러짐 없이 제대로 실행될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뜻보다 하느님의 계획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그 자세를 의롭다고 말한 것입니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