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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3월 20일 야곱의 우물- 마르 12, 28ㄱㄷ-34 묵상/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09-03-20 조회수651 추천수4 반대(0) 신고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그때에 율법학자 한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모든 계명 가운데에서 첫째가는 계명은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첫째는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그러자 율법학자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훌륭하십니다, 스승님. ‘그분은 한 분뿐이시고 그 밖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시니, 과연 옳은 말씀이십니다. 또 ‘마음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그분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 제물보다 낫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가 슬기롭게 대답하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 하고 이르셨다. 그 뒤에는 어느 누구도 감히 그분께 묻지 못하였다.
(마르 12,28ㄱㄷ-34)
 
 
 
 
◆흔히들 사람이 살고 죽는 것은 동물이 살고 죽는 것과 다르다고들 하지요. 살아 있되 죽은 사람이 있고 죽었으되 살아 있는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을 인격이라 하고 영적 존재(생명)라 부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인격적 존재를 보기도 어렵고 영적 존재를 찾기가 너무도 어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하느님을 피해 숨는 자가 되었고 하느님은 인간이 그리워 아담을 찾고 있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 할 때는 하느님이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하면 참 인간, 아담이 될 수 없다는 삶에 대한 자각을 뜻합니다. 또한 하느님이 인간의 희망인 것처럼 인간도 하느님의 희망이 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빵만으로도 인생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질만 풍요로우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믿음 아닌 믿음이 팽배해 있지요. 그러나 이것은 하느님 사람의 길이 결코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구약의 십계명을 대신하는 아주 핵심적 말씀을 인간에게 주셨습니다. 온 마음과 몸과 뜻을 다해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란 것이지요. 하느님은 할 수 있기에 하라는 것이지 할 수 없는 것을 강요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이 두 행위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징표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두 말씀도 결국은 하나로 축약될 수 있습니다. 이 땅을 사랑하는 것이 하느님을 사랑하는 길이자 인간을 귀하게 여기는 일이란 것이지요.
하느님을 사랑한다 하면서 너무도 세상을 자신의 욕망대로 살았기에 이 땅은 생명이 살 수 없는 죽음의 공간으로 변해 갑니다. 지금 같은 방식으로 살면 2040년경에는 이산화탄소량 과다로 인해 바다가 망가지고 숲이 폐허가 되는 대재앙이 도래한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들의 백합화와 공중을 나는 새를 통해 하느님을 보고 느끼라 했던 성경 말씀을 좇아 삶의 터전인 자연을 세심하게 살피는 것이 우리의 평생 과제가 된 것이지요.
 
최소한의 물질로 살고 은총의 감각을 회복하며 탐심을 버려 세상을 더럽히지 않는 생활양식을 회복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 점에서 성찬례는 인간의 몸을 입은 하느님의 거주 공간인 땅을 사랑하는 방법을 잘 알려줍니다. 예수님에 의해 초대받은 성만찬의 식탁은 항시 골고루 나눠지는 식탁이었고 아주 간편하고 단출하게 먹고 남는 것이 없는 식탁이었습니다. 이런 식탁의 뜻을 일상의 식탁에서 구현하여 땅을 지키고 자연을 보전하는 것이 하느님을 사랑하는 길임을 깊이 숙지해야 할 때가 된 것입니다.
이정배 목사(감리교 신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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