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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혼인과 이혼(마르코10,1-52)/박민화님의 성경묵상
작성자장기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9-03-20 조회수1,012 추천수8 반대(0) 신고
 
2009년 3월 20일 금요일 마르코복음10장
 
 
수난과 죽음과 부활을 깨달은 것이
구원이고, 영생이고, 하늘나라이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수난과 죽음과 부활을 설명하시는데,
우리들도 예수님께 이루어졌던 내용이 우리들한테 이루어지는 것이
구원이기 때문에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수난과 죽음과 부활의 첫 번째 예고시에는 종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즉 사람들의 죽음이 끝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으로 부활하여 영생한다는 것을 설명을 해주시고,
 
두 번째 수난과 죽음과 부활에 대해서는
성전에 바치는 성전세를 예화로 들어 설명을 하셨고,
즉 나의 심령이 죽고 새로 부활한 나를 하느님께 산제물로 봉헌해야 하며,
 
어린 아이처럼 나의 에고(ego)인 심령을 버리고 순진한 아이처럼 되어야
두 번째 수난과 죽음과 부활의 예고에 해당된 사람이며,
아직도 내 마음이 살아 있으면
수난과 죽음과 부활의 사건이 완전하게 일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부부간에 싸움도 서로 살아 있기 때문에
자기가 서로 잘했다고 싸우는 것이며 
심령이 죽게 되면 싸움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수난과 죽음과 부활의 세 번째 예고에서는 서열 다툼이 일어나는데
이 서열 다툼이 없어지고 이제 섬기는 사람이 될 때
세 번째 수난과 죽음과 부활에 해당되는 사람이며,
 
우리들의 심령에 십자가 사건도 한꺼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말씀이 들어온 만큼 없어지기 때문에
하느님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할 때
내 심령 안에서 십자가 사건이 계속되며,
 
육체적으로는 병이 들거나, 가난하거나, 사업에 실패하거나,
어떠한 고통이 있을 때
이미 십자가 사건이 시작이 되는 것이며,
육체적인 고통을 통해서 심령에 고통도 같이 오지만
마음이 죽게 되면, 마음이 없으면
고통은 존재하지만 극복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길은
우리 죄인들의 죗값을 대신 치르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몸을 제물로 바쳐 죽는 것이 예수님의 길이고,
우리들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육적인 생각은
가능하면 죽지 않으려 하고, 될 수만 있으면 높아지려고 하고,
많이 가지려 하는 것이 육적인 욕망입니다.
우리들에게도 매일매일 우리들의 나쁜 습관인 시기 질투 싸움 미움 등을
버리는 것이 십자가 사건일 수 있습니다.
 
혼인과 이혼 (마태 19,1-9 ; 루카 16,18-18)
 
부활을 설명하시는데
사람들의 결혼 예화를 통하여 설명해 주시는데,
마치 남자와 여자가 결혼하여 두 사람이 한 몸이 되는 것처럼
영적으로 예수님과 우리들이 하나가 되어
한 몸이 되는 것을 설명해 주시며,
 
요한복음에서는
가나 혼인잔치를 통해서 설명해 주시고,
묵시록 19,5에서는
어린양의 혼인잔치를 통해서 설명을 해주시며,
창세기 2,24에
남자가 부모를 떠나 여자와 한 몸이 된다고 했는데
바오로 사도는 에페소서 5,31에
남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여자는 신부이며 교회이며 남여 성도들을 상징한다고 설명하였으며,
 
남자인 예수 그리스도가
여자인 성도들과 한 몸이 되며 하나가 된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며,
부모는 천상 예루살렘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 안에서 반드시 수난 받고 죽고 부활해야 되기 때문에
죽기 전에 반드시 고통이 오기 때문에
죽기를 싫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죽게 되면 편안하고 평화가 오는 것입니다.
나의 결점을 지적할 때도 "감사합니다." 라고 말할 수 있으며,
내 마음이 죽으면
화 자체가 없어지고 미움자체가 없어지고 시기 자체가 없어 지는데,
이 때 예수님께서 내 안에서 사랑으로 계시는 것이며
이 사랑의 결과로 기쁨과 평화가 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7,21에 예수님께서
"내가 아버지 안에, 아버지가 내 안에, 내가 사도들 안에,
사도들이 내 안에 있다."고 말씀을 하시는데,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부부가 되어야 하며
즉 사랑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근원이신 예수님이 우리들 안에 오셔야
사랑이 오고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내가 죽고 다시 살아나야 사랑이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 사건이 필요한 것입니다.
 
부부간에 이혼을 하는 것은 죽은 것이며
예수님과 갈라지는 것은
하늘 나라에서 갈라지는 것임을 예화로 설명을 해주시는 것입니다.
 
사랑 자체이신 예수님이 말씀으로 내 안에 계실 때
결과적으로 아가페사랑이 열매로 나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참(진리) 포도나무요,
너희(사도들)들은 가지들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과 복음말씀을 찾아야 구원이 오며,
복음 말씀을 깨닫는 것이 영원한 생명인 것입니다(요한 17,3).
 
1 예수님께서 그곳을 떠나 유다 지방과 요르단 건너편으로 가셨다. 그러자 군중이 다시 그분께 모여들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늘 하시던 대로 다시 그들을 가르치셨다.
2 그런데 바리사이들이 와서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 하고 물었다.
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모세는 너희에게 어떻게 하라고 명령하였느냐?” 하고 되물으시니,
4 그들이 “‘이혼장을 써 주고 아내를 버리는 것’을 모세는 허락하였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5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너희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 모세가 그런 계명을 기록하여 너희에게 남긴 것이다.
6 창조 때부터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
7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8
둘이 한 몸이 될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설명:
200주년 주석 성경에는 창세기 2,24을
남자가 부모를 떠나 여자와 한 몸이 된다는 말씀을
다음과 같이 풀어 주십니다.
 
성경에서 남자는 영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여자는 교회인 남자 여자들인 성도들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영적으로 우리 성도들의 신랑이며 남편인 것입니다.
(마태복음 19,5; 에페소서 5,31).
영혼이 죄로 인하여 잠자거나 죽어 있던 영혼이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말씀으로 성령으로 우리 안에 와서
내 영과 예수님의 영이 하나가 됐을 때
우리들의 영혼이 부활을 하며 살아나는 것입니다.
 
세례를 통하여 첫 번째 부활이 오고,
매일 살아 가면서 말씀과 성체로 우리들의 믿음과 영혼이 성장하게
되는 과정을 세상 결혼을 통하여 설명해 주시는 것입니다.
 
9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10 집에 들어갔을 때에 제자들이 그 일에 관하여 다시 묻자,
1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혼인하면, 그 아내를 두고 간음하는 것이다.
12
또한 아내가 남편을 버리고 다른 남자와 혼인하여도
간음하는 것이다.”

어린이들을 사랑하시다 (마태 19,13-15 ; 루카 18,15-17)
 
어린아이 같은 마음이 되어야 남을 섬기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다섯 살 먹은 어린아이가 옆에 있는 아이들을 셈할 때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라고 세고 있으니까
여덟 살 먹은 자기 형이
"아니야. 한 사람 두 사람 세 사람이라고 세야 돼."라고 말해도
다섯 살 어린아이는
또 다시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라고 세고 있으니까,
그 옆에 있던 아기 어머니는 빙그레 웃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또한 어머니가 김치를 담그고 있는 중에 전화벨 소리가 울리니까
다섯 살 먹은 아기보고 "엄마 없다고 해라."라고 말하니까
전화에다 "엄마가 없다고 하래요."라고 말한 것을 들었습니다
 
이 다섯 살 먹은 아이는
아직 선악을 사용하지 않고 자기 마음이 없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 말을 하는 것인데,
우리들도 우리들 마음을 완전히 비우고
하느님 앞에 이 어린 아이처럼 단순하고 순진한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이
세 번째 수난과 죽음과 부활 내용에 참여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우리들도 매일매일 수난과 죽음과 부활의 삶을
나도 모르게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13 사람들이 어린이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그들을 쓰다듬어 달라고 하였다. 그러자 제자들이 사람들을 꾸짖었다.
14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보시고 언짢아하시며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어린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말고 그냥 놓아두어라.
사실 하느님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1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린이와 같이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다.”
16
그러고 나서 어린이들을 끌어안으시고 그들에게 손을 얹어 축복해
주셨다.

하느님의 나라와 부자 (마태 19,16-26 ; 루카 18,18-27)
 
부자 청년을 예화로 들어
이 부자 청년은 선악의 기준으로 비교해 보고
율법의 십계명을 자기의 의로 행위로 지키고 있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을 볼 때 선악으로 살아 가고 있는데,
이런 생각을 버리지 않으면 심령이 죽어 있기 때문에
 
부활하기 위해서는 그런 의식을 버리는 것이 십자가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이 부자 청년도 십계명을 자기는 잘 지키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사실은 십계명은 우리들 힘으로는 다 지킬 수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과 복음을 믿고 부활하여 사랑의 사람이 되었을 때,
예수님께서 사랑으로 우리 안에 오셔서
간음하지 않고 살인하지 않고 도둑질하지 않고
남의 아내를 원치 않는다는,
 즉 십계명을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오셔서
사랑으로 완성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의 십계명을 예수님께서는
새 계명인 사랑의 계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면 사람을 죽이지 않는 것입니다.
사랑하면 간음하지 않는 것입니다.
 
17
예수님께서 길을 떠나시는데 어떤 사람이 달려와 그분 앞에 무릎을 꿇고, “선하신 스승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설명:
부자 청년은 선과 악의 기준으로 비교하고
율법에 십계명을 자기의 의로 행위로 의식이 나오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선악으로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죽음인 것입니다.
 
선과 악으로 잘한다 못한다, 내가 율법을 잘 지켰다 못 지켰다,
이런 의식을 없애는 것은 아가페사랑입니다.
성경 말씀을 읽고 살아갈 때
내 삶에서 아가페 사랑이 오면
남의 결점을 보고 판단하지 않으며
상대방의 결점을 보고 내 안에 있는 결점을 보게 되기 때문에
바로 내가 상대방과 같은 처지에 있기 때문에
결점을 말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아가페사랑이 오면 상대방의 결점도 수용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내 마음을 버리고 죽이는 것이 십자가 사건입니다.
죽기 전에 고통이 오고 죽어야만 부활 영광을 받을수 있는 것입니다.
 
부자 청년처럼
"내가 선행을 하고 있고 내가 율법을 잘 지키고 있구나." 하는
의식을 버리고 죽이는 것이 부활이고 산 자입니다.
 
부활하고 살아 있는 사람은 살아 있기 때문에
사랑하고 일(봉사)을 하는 것입니다.
 
18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고 하느냐? 하느님 한 분 외에는 아무도 선하지 않다.
19 너는 계명들을 알고 있지 않느냐? ‘살인해서는 안 된다. 간음해서는 안 된다.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 거짓 증언을 해서는 안 된다. 횡령해서는 안 된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20 그가 예수님께 “스승님, 그런 것들은 제가 어려서부터 다 지켜 왔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1
예수님께서는 그를 사랑스럽게 바라보시며 이르셨다.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설명:
한 가지 부족한 것, 마지막으로 못하는 것은
선악으로 살아 가는 것, 
즉 육의 식구를 버리고 따라 오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육적으로 보고 세상 재물로 보았기 때문에
재물을 버리라는 것으로 잘못 이해해서
예수님을 따르지 못하는 장애가 되는데,
 
물론 물질도 버려야 되지만
자기 마음을 버리고 따라 오라고 하는 예수님의 뜻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따르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들도 성경 말씀을 읽고 많이 들어도
우리들의 마음이 돌밭, 길밭, 가시밭일 때는 열매를 맺지 못하지만
우리 마음 안에 길밭은 갈아 엎으고,
돌밭은 돌을 주워내고,
가시밭은 가시를 제거하여 옥토가 되게 하여야
100 배 60 배 30 배의 사랑의 열매를 맺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의 밭에 말씀을 심어 잘 자라나서
100 배의 열매가 맺을수 있도록
완고하고 교만한 마음을 겸손의 막대기로 몰아 냅시다.
 
22 그러나 그는 이 말씀 때문에 울상이 되어 슬퍼하며 떠나갔다. 그가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23 예수님께서 주위를 둘러보시며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재물을 많이 가진 자들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
24 제자들은 그분의 말씀에 놀랐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거듭 말씀하셨다. “얘들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
25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설명:
세상에 부자가 돈이 많이 있다고 해서 잘못이 아니라
나눔을 하지 않는 것이 심판의 대상이 되며,
돈이 많을 때는 하느님을 찾지 않는 경우가 많이 있으며
또한 심령의 부자도 있는데,
시기 질투 미움 욕심 분노 등으로 가득 차 있는 사람은
심령으로 부자이기 때문에
마음에 있는 육의 식구를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재물 자체를 잘못된 것이 아니고
재물을 사랑으로 사용하여 하늘 나라를 준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26 그러자 제자들이 더욱 놀라서, “그러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 하고 서로 말하였다.
27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바라보며 이르셨다. “사람에게는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그렇지 않다.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따름과 보상(마태 19,27-30 ; 루카 18,28-30)
 
28
그때에 베드로가 나서서 예수님께 말하였다.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
 
설명:
베드로도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추종했기 때문에
부자 청년과는 반대로 자기는 구원 받았다하는 의식을 가지고
있는데,
이런 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 영적인 소경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내가
무엇을 잘했다고 생각하는 의식을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내 안에서 주님께서 모든 일을 하고 계신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29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나 때문에, 또 복음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 어머니나 아버지,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30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와 토지를 백 배나 받을 것이고,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
 
설명:
예수님과 복음을 위해서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녀와 토지를 버린다고 했는데,
실제적인 가족이나 토지라고 생각해도 되지만
차원을 달리해서 내 안에 있는 육의 식구들을 말하기 때문에
내 안에 육의 식구들을 다 버리고 나면
현세에서는 박해를 받겠지만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와 토지를 받고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는다고 하셨는데,
 
현세라는 때를 나타내는 말은 '카이로스(kaipos)'인데
이 '카이로스'라는 말은
하느님의 시간 하느님의 때를 말하는데
하느님의 시간은 현재 뿐인 것입니다. 
 
'크로노스(xpovos)'라는 말은 세상적인 시간과 때을 말하는데
이 '크로노스'는 과거 현재 미래가 있는데
이 성경절에서 나오는 현세라는 이 시간은 '카이로스'로 되어
있기 때문에 현세에도
즉 현재에도 다시 되돌려 받지만
내세는 100배로 되받는다고 했는데
이 내세는 세상적인 시간인 '크로노스'시간으로 볼때는
죽은 다음에 오는 세상을 말하지만
 
하느님의 시간인 현재뿐인 '카이로스'시간으로 볼때는
공관복음인 마르코복음과 차원을 달리하는 요한복음 차원에서
영원한 생명에 도달하는 것을 내세라고 하기 때문에
 
구약차원에의 내세는 공관복음 차원에 들어가는 것이고,
공관복음 차원에서 내세는 요한복음 차원에 들어 가는 것이고
요한복음 차원에서 내세는 요한묵시록 차원에 들어 가는 것입니다.
 
'내세'하면 살아 있는 우리가 죽은 후에 오는 세상으로 보는 것은
육안으로 보는 것이기 때문에 틀린 것은 아니지만
 
차원에 따라 보는 내용이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31
그런데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설명: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된다는 말씀이
이해가 잘 안되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차원을 달리 해서 봐야 되는데
세상 이치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하늘 나라에 들어 가는 첫째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보고 믿어 하늘나라가 이루어진 사람이 
첫째가 되고,
아무리 신앙생활을 많이 해도 말씀화가 되어
예수님을 보고 느끼고 체험하지 못하면 꼴찌가 되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겸손한 마음으로 하느님께 자비를 구하며
하느님을 만날 수 있도록 기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먼저 만나는 사람이 첫째가 되기 때문에
우리 모두 하느님을 만나 모두 첫째가 됩시다.

수난과 부활을 세 번째로 예고하시다 (마태 20,17-19 ; 루카 18,31-34)
 
수난과 죽음과 부활에 대한 세 번째 예고는
우리 심령에 마지막 십자가 사건이며 죽기 전에 고통이 오는데
이 고통은 나의 에고인 마음이 만들어내기 때문에
내 마음이 완전히 죽으면 고통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세 번째 수난과 죽음과 부활에 대해서
우리들의 육의 마음을 완전히 버리는 마음인데,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 요청의 예화를 통하여 설명해 주시는데
예수님께 "선생님의 나라가 세워지면 한 아들은 오른 편,
한 아들은 왼 편에 세워 달라."고 요청하는데,
육적인 마음으로 볼 때는
영의정은 물론 베드로가 될 것이고,
자기 아들들은 좌의정 우의정으로 세워달라고 간청하는데
우리들 모두 이런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는 섬기는 사람이 제일 높은 사람이라고 설명하시며
우리들도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복음 선포하는 것이
섬기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32 그들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 앞에 서서 가고 계셨다. 그들은 놀라워하고 또 뒤따르는 이들은 두려워하였다. 예수님께서 다시 열두 제자를 데리고 가시며, 당신께 닥칠 일들을 그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33 “보다시피 우리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다. 거기에서 사람의 아들은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넘겨질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사람의 아들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그를 다른 민족 사람들에게 넘겨
34
조롱하고 침 뱉고 채찍질하고 나서 죽이게 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다.”
 
설명:
수난과 죽음과 부활을 깨닫는 것이 하늘 나라이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수난과 죽음과 부활을 설명하시고
내가 수난 받고 죽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삼일 만에 부활하신다는 부활신앙을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이 세상이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죽은 후에 반드시 부활한다는 부활신앙을 믿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신앙입니다.
 

출세와 섬김(봉사) (마태 20,20-28 ; 루카 22,25-27)
 
남을 위하여 섬기고 봉사하는 사람은 부활한 사람입니다.
남을 섬긴다는 것은 자기 마음을 죽이고
상대방의 마음으로 입장으로 가는 것이 섬기는 사람인데,
예수님께서도 나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고
많은 사람을 대신해서
속전으로 목숨을 내주려고 왔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목숨바쳐 죽으시는 것이
사랑의 극치입니다.
 
그래서 평신도 사제직과, 평신도 예언직과, 평신도 왕직이 있는데
평신도 사제직은 우리들도 미사에 참여할 때 사제직에 참여하며,
복음 선포하는 것이 예언직에 참여하는 것이며,
봉사하는 것이 평신도 왕직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35
제베대오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다가와, “스승님, 저희가 스승님께 청하는 대로 저희에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고 말하였다.
 
설명:
예수님께서 죽었다가 부활하여 새로운 나라를 세운다고 하시니까
어머니가 육적인 마음으로 보고
자기 아들 하나는 오른편에,
하나는 왼편에 있게 해달라고 부탁하는 것은
제베대오 어머니가 부활신앙을 모르고 하늘나라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세상 나라로 잘못 생각하고 간청하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성경을 읽을 때
내 생각보다는 차원을 달리해서 영차원으로
성경을 읽고 깨달아야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3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하고 물으시자,
37
그들이 “스승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때에 저희를 하나는 스승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게 해 주십시오.” 하고 대답하였다.
 
설명:
영광을 받는다는 말은 헬라어로 영광은 '독크사' 인데
이 영광이란 말은 육이 죽는 것을 말하는데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7,1에
"아버지 때가 왔습니다."하고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고
제가 영광 받을 때가 왔다고 하는데
이 '때'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우리들 심령에 마음을 죽이고,
분노 미움 시기 질투 등을 버리고 죽이고,
주님과 함께 사랑 기쁨 평화로 태어나는 것이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고 저희들이 영광 받는 것입니다.
즉 영광받기 위해서는 우리들이 죽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난과 죽음을 통하여 부활영광에 이르는 것입니다.
 
38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너희는 너희가 무엇을 청하는지 알지도 못한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죽음)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39
그들이 “할 수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도 마시고,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도 받을 것이다.
40
그러나 내 오른쪽이나 왼쪽에 앉는 것은 내가 허락할 일이 아니라, 정해진 이들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설명:
오른쪽은 방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고 세례 받아 구원 받는 사람들이 가는 곳이고,
왼쪽은 믿고 세례를 받지 않아 구원 받지 못한 사람이 가는 곳을
상징하는데,
예수님도 하느님의 오른편에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당에서 제대는 삼위일체 하느님을 상징하고
복음대는 하느님의 오른편에 계신 예수님을 상징하기 때문에
제대의 오른편에 복음대가 있는 것입니다.
 
41
다른 열 제자가 이 말을 듣고 야고보와 요한을 불쾌하게 여기기 시작하였다.
 
42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너희도 알다시피 다른 민족들의 통치자라는 자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린다.
43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44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
45
사실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예리코에서 눈먼 이를 고치시다 (마태 20,29-34 ; 루카 18,35-43)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내 아들 둘을 한 아들은 오른편에,한 아들은 왼편에 있게 해달라고
간청하는 것을 설명하기 위하여
티매오의 아들 바르티매오를 예화로 들어 눈먼 소경을 치유하면서,
야고보와 요한이 오른편 또는 왼편에 있게 해달라고 간청하는 것이
마치 영적으로 소경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하느님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성경을 읽을 때는
영적인 소경이 될 수 있고 영적인 귀먹어리,
또 영적인 벙어리가 될 수가 있기 때문에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기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46
그들은 예리코(육신 장막=감옥 상징)에 들어갔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많은군중과 더불어 예리코를 떠나실 때에, 티매오의 아들 바르티매오라는 눈먼 거지가 길가에 앉아 있다가,
 
설명:
소경이 나오는데 이 소경을 치유하시면서
제베대오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오른편, 왼편에 있게 해 달라고
간청하고,
제자들이 서열 다툼을 하는 것이 즉 영적인 소경들이라는 것입니다.
 
하늘 나라에서는 높아지고자 하면 종이 되고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첫째가 된다는 것을
예수님께서는 계시해 주시는 것입니다.
 
47
나자렛 사람 예수님이라는 소리를 듣고, “다윗(메시아 상징)
자손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치기 시작하였다.
48
그래서 많은 이가 그에게 잠자코 있으라고 꾸짖었지만, 그는 더욱 큰 소리로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49
예수님께서 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불러오너라.” 하셨다. 사람들이 그를 부르며, “용기를 내어 일어나게.
예수님께서 당신을 부르시네.” 하고 말하였다.
50
그는 겉옷(육신의 옷 상징)을 벗어 던지고 벌떡 일어나
예수님께 갔다.
51
예수님께서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 눈먼 이가
“스승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하였다.
52
예수님께서 그에게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고 이르시니, 그가 곧 다시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을 따라 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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