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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미리읽는 복음/사순 제4주일 메씨아의 뒷모습 양승국 신부
작성자원근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9-03-20 조회수697 추천수5 반대(0) 신고

사순 제4주일/요한 3,16-21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쓸쓸한 메시아의 뒷모습

16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17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경제 파탄으로 가슴이 많이 아픈 몇몇 형제들과 소주잔을 기울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마음이 모질지 못한 탓에 이 사람에게 떼이고, 저 사람에게 채이면서 결국 남은 것은 상처 입은 몸뚱이 하나뿐이었습니다. 그 큰 괴로움을 홀로 떠 안고 가는 순박한 형제들 눈망울 앞에 뭐라 할 말이 없더군요. 그분들의 쓸쓸하고 허전한 어깨를 두드려 드리며, 그저 힘들 내시라고, 언젠가 시련의 끝이 있을 것이라고, 기도 하겠다는 말씀 밖에 드리지 못했습니다.

 그분들이 지금 겪고 있는 심연의 고통이 절대로 무가치한 고통이 되지 않길 기도합니다. 그분들이 지금 지고 가는 그 무거운 십자가가 절대로 무의미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되길 바랍니다. 언젠가 오늘의 역경을 잘 극복하고 보란 듯이 다시 가슴 펴게 되는 어느 날, 끝까지 십자가를 포기하지 않은 사람만이 맛볼 수 있는 인생의 진미를 만끽하시길 기원합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가끔 기고 만장한 사람들, 안하무인인 사람들, 자기만 아는 사람들도 만나는데, 그들이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결핍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고통의 체험'이 아닐까요. 보다 사람답게 살기 위해, 보다 큰 사람으로 거듭나기 위한 '필수과목' 중 하나가 '십자가 체험'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니코데모와 대화 가운데 자신의 미래를 예견하십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이제 메시아로서 환호와 박수갈채의 순간은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습니다. 이제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너무나 괴로운 나머지 피하고만 싶은 십자가입니다. 이제 예수님께 남아있는 것은 초조한 심정으로 '예정된 죽음'의 시간을 기다리는 일이었습니다. 예정된 죽음의 코스를 묵묵히 밟아 나가시는 예수님 뒷모습이 참으로 고독해 보입니다.

 너무나 큰 십자가로 늘 울고 다니시는 분들을 통해 한 가지 느낀 바입니다. 크게 상처받은 사람이나 심한 좌절을 체험한 사람 앞에서 인간의 언어란 무용지물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따뜻하고 부드러운 말로 위로하려 들어도 속수무책입니다.

 그렇다면 깊은 상처로 인해 가슴앓이를 하는 사람이 기운을 차릴 때가 언제이겠습니까? 역설적이게도 누군가의 더 큰 상처를 통해서입니다. 묘하게도 나의 이 극심한 고통은 그 누군가의 더 큰 고통을 통해서 치유됩니다. 누군가가 나 보다 더 큰 상처를 입고 아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 신기하게도 내 상처는 아물기 시작합니다.

 역사상 가장 큰 상처를 입은 사람이 누구이겠습니까? 수천 번 채찍질을 고스란히 견디어 낸 수난의 예수님이셨습니다. 그 숱한 모욕과 조롱, 침 뱉음 그 사이를 뚫고 묵묵히 걸어가신 십자가의 인간 예수님이셨습니다. 슬픔이나 고통, 좌절이나 십자가의 가장 정점(頂点)에 서 계신 분이 예수님이셨습니다.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당신 친히 우리의 모든 고통과 슬픔, 좌절과 방황을 당신 등에 지시고 골고타 산을 오르십니다. 우리 깊은 상처를 치유하시기 위해서, 우리 눈에서 눈물을 거둬 가기 위해, 우리의 이 견딜 수 없는 십자가를 가볍게 해주시기 위해 당신 친히 높은 십자가 위로 올라가십니다.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죄로 물든 이 세상 정화를 위해, 길을 잃고 정처 없이 헤매는 당신 양떼를 위해, 심하게 상처받아 죽어가고 있는 우리를 위해 특효약을 하나 내놓으셨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당신의 십자가입니다.

 하느님께 대들고 반항하면서 딴 길을 가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느님의 진노를 사서 불 뱀에게 물려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 때 치료약으로 제시된 것이 높이 매달린 구리 뱀이었습니다. 이제 그 구리 뱀을 대신해서 예수님께서 또 다른 특효약으로 높이 매달려 계십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다른 일이 아니라 높이 매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는 일입니다. 우리가 극심한 고통에 힘겨울 때마다 십자가를 바라보며 예수님 역시 처절한 고통을 겪으셨음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깊은 슬픔에 빠져 들 때마다 십자가상 예수님의 한없이 슬펐던 눈동자를 바라봐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지고 가는 일상의 십자가가 너무 무겁게 여겨질 때마다 주님께서 친히 우리의 십자가를 지고 가심을 잊지 않도록 합시다. 주님께서 소리 없이 우리의 십자가를 받쳐 주고 계심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말씀 : 양 승국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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