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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믿음과 심판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09-03-22 조회수1,013 추천수11 반대(0) 신고

 

 

 

사순 제 4 주일 - 믿음과 심판

 

저는 어제 어떤 사람에게 ‘난 너 안 믿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저를 오랫동안 알던 사람인데 그런 말을 하니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렇지만 ‘내가 그렇게 믿지 못할 사람인가?’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그 말 안에 어떤 의도가 들어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왜냐하면 같은 나를 보면서도 믿어주는 사람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믿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믿을만한 사람인가?’도 중요하지만 ‘내가 믿을 능력이 있는가?’가 더 중요합니다. 이 세상에는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보다는 믿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이것은 하느님이 믿지 못할 분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람들이 믿을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께 많은 죄를 짓자 하느님은 불뱀을 보내서 그들을 물어죽이게 하십니다. 그래서 백성은 회개하고 하느님께 구원을 청합니다. 하느님은 불뱀을 없애시지 않고 그들에게 치료제를 보내십니다. 바로 구리로 불뱀 모양을 만들어 장대에 매서 높이 달아 올리면 불뱀에 물렸더라도 그 구리뱀을 보는 사람은 죽지 않게 하셨습니다.

죄로 인간에게 죽음이 왔습니다. “이 열매를 따먹으면 너희는 반드시 죽는다.”라고 하셨고 인간은 그 열매를 따먹어 죄를 알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은 죄를 없애시지 않고 치료제를 보내주셨습니다. 그 분이 십자가에 높이 달리신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죄의 원형인 뱀의 모양으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대신 죄인이 되어 벌을 받으신 것입니다.

인간은 이제 십자가를 보면 죄를 용서받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심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이렇게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 하느님의 외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간을 심판하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구원하기 위해 오셨지만 그것을 통해 심판이 이루어집니다. 심판은 바로 십자가를 믿느냐 안 믿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십자가는 사랑의 완전한 계시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십자가 안에는 하느님의 인간에 대한 완전한 사랑이 표현되어있습니다. 따라서 이 십자가의 온전한 희생이 들어있지 않은 어떤 행동도 사랑이 아닙니다. 이 사랑의 십자가는 마치 등대처럼 온 세상을 비춥니다. 그러나 사랑을 원치 않는 사람은 눈을 감고 그 사랑의 빛을 거부합니다.

 

바다에 오징어잡이 배들이 모여 있는 광경을 멀리서 보면 정말 장관입니다. 물 위에 도시가 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잘 아시듯이 오징어잡이 배 위에는 여러 개의 매우 강한 전등이 달려있습니다. 밤에만 오징어들을 잡는데 오징어들은 빛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 강한 빛을 보고 수면위로 올라오면 그것들만을 잡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다른 대부분의 물고기들은 빛이 있으면 그 빛에서 더 멀어져 더 어두운 곳으로 갑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이 빛과 같은 것입니다. 그 빛을 통하여 그 빛으로 나아오는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그 빛을 좋아하지 않고 멀리 멀어져가는 사람들에겐 그리스도의 구원의 빛이 결국은 심판이 되는 마는 것입니다.

 

그들은 왜 십자가를 믿지 않을까요? 예수님은 그 심판을 이렇게 설명하십니다.

“그 심판은 이러하다. 빛이 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 그들이 하는 일이 악하였기 때문이다. 악을 저지르는 자는 누구나 빛을 미워하고 빛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자기가 한 일이 드러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빛으로 나아간다. 자기가 한 일이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즉, 빛을 믿지 않는 이유는 그 사람의 행실이 악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물고기 모두가 오징어처럼 빛을 보고 몰려오지 않는 것처럼 사람도 스스로 본래 빛을 좋아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고 빛을 싫어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날에 두 여자가 맷돌을 갈고 있다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 둘 것이라고 하십니다. 또 두 사람이 밭에 있다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라고 하십니다. 여기에 심판의 핵심이 들어있습니다. 겉보기는 같은 일을 하는 것처럼 보여도 그 사람들의 본질은 서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내가 어떤 존재이냐에 따라 믿을 수도 믿지 못할 수도 있고 내가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구원을 받을 수도 그렇지 못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꿀벌과 똥파리가 꽃밭을 향해 똑같이 열심히 날고 있습니다. 가만히 보니 꽃밭 한 곳에 변이 있습니다. 과연 꿀벌은 꽃을 보는 것일까요, 변을 보는 것일까요? 똥파리는 꽃을 보고 달려가는 것일까요, 변을 보고 가는 것일까요? 해답은 너무나도 뻔합니다.

나의 본질에 따라 보이는 것이 다른 것입니다. 사랑을 알고 사랑을 하는 사람은 십자가가 사랑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사랑이 없고 사랑을 거부하는 사람은 십자가는 어리석음에 불과하고 그것이 사랑임을 믿으려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십자가를 믿고 안 믿는 것에 따라 꿀벌과 똥파리로 결정되는 것입니다.

수많은 꽃들 가운데 작은 변이 있지만 똥파리는 아름다운 꽃을 보지 못하고 그 구석에 있는 냄새나는 변만 봅니다. 그 본질이 그렇게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사람 안에도 좋은 면이 있고 나쁜 점도 있는데 어떤 사람들은 그 사람 안에서 굳이 나쁜 면만을 찾아보고 판단하고 험담합니다. 남의 험담을 잘하는 사람이 꿀벌일 수 없고 십자가를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용서하지 못하면 믿지도 않는 것입니다.

 

죄는 낮에 많이 벌어질까요, 밤에 많이 벌어질까요? 아무도 안 보는 곳에서 많이 벌어질까요, 아니면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많이 벌어질까요? 저는 정확한 통계는 알지 못하지만 밤에 훨씬 많이 벌어진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또 사람들이 많이 보고 있는 곳에서 범죄를 저지르기는 쉽지 않습니다.

가끔 학생 때 지나가다가 불량 학생들에게 눈이라도 마주치면 그들은 매우 흥분합니다. “야리냐? 눈 깔아~” 그러며 쫓아오기도 합니다. 그냥 쳐다본 것인데도 그들은 그 시선을 참아내지 못합니다. 누가 자신의 치부를 보는 것 같아 화가 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행실이 안 좋으면 이렇게 빛을 싫어합니다. 십자가는 빛입니다. 따라서 자신의 행동이 악하다는 것을 드러내게 해 주는 십자가를 사랑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의 사랑이 참 사랑임을 십자가를 통해서 깨닫고 더 배우기 위해 그 빛으로 점점 다가옵니다. 그렇게 심판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사람의 본질을 나쁘게 변하게 하는 가장 큰 원인은 교만입니다. 교만은 다른 것보다 자신만을 믿게 합니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가 주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뱀의 말을 믿은 것입니다. 뱀은 결국 자신 안에 있는 자아입니다. 그래서 자신을 버리지 않으면 주님을 따를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은 강물 위에 떠 있는 배와도 같습니다. 강물을 거슬러 노를 젓지 않으면 본성에 따라 원천에서 저절로 멀어지게 되어있습니다. 자기 육체의 본성, 즉 교만, 성욕, 소유욕을 거슬러 매일 싸우지 않으면 완전히 육체적인 사람이 되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매일 매일 새롭게 태어나는 노력, 그것만이 심판을 이기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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