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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위로부터의 영성" - 3.22,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9-03-22 조회수531 추천수4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9.3.22 사순 제4주일                                    
역대 하36,14-16.19-23 에페2,4-10 요한3,14-21

                                                      
 
 
 
"위로부터의 영성"
 


위로부터의 영성이 있어 아래로부터의 영성입니다.

위로부터 힘을 받아야 아래로부터의 영성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은 래타레(Laetare:즐거워하여라) 주일입니다.
장미 빛 제의가 우리의 기쁨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부활의 하늘 기쁨을 앞당겨 보여주는 주일입니다.
위로부터의 영성을 맘껏 경축하며 즐거워하는 날입니다.
 
마침 오늘 새벽부터 내리는 하늘 봄비 역시 위로부터의 영성을 상징합니다.
 
위의 하늘에서 내리는 비 없이 살 수 없는 대지처럼
위의 하늘로부터의 은총 없이 살 수 없는 우리들입니다.

하늘 봄비에 촉촉이 젖은 나무에서 봄꽃들 피어나듯
위로부터의 하늘 미사은총에 영혼과 육신이 새롭게 피어나는 우리들입니다.
 
바야흐로 위로부터의 영성의 표지들 가득한 부활의 봄이 시작되었습니다.
 
위로부터 오시는 부활의 봄님을 기다리다
맨 먼저 피어나 부활의 봄소식을 전하는 수도원 경내의 노란 산수유 꽃들 역시
그대로 위로부터의 영성을 상징합니다.

“나이에
  상관없는 그리움인가보다
  세월 흘러
  고목이 된 산수유나무
  회색 빛
  어둔 봄날
  봄님
  기다리고 기다리다
  보일 듯 말듯
  꿈꾸듯
  맨 먼저
  아련히 피어난
  노란 그리움
  산수유 꽃
  나이에
  상관없는 그리움인가보다.”

노란 그리움의 산수유 꽃들,
그대로 위로부터 오시는 부활의 주님을 기다리는 우리의 영혼들을 상징합니다.


위로부터의 영성 있어 아래로부터의 영성입니다.

‘한 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
창세기의 서두 말씀처럼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하늘에 계신 자비하신 하느님으로부터 시작합니다.
 
하여 주님의 기도도
우선 아버지의 이름, 아버지의 나라, 아버지의 뜻에 초점을 두고 시작합니다.
 
오늘 제1독서 역대기 하권의 말씀을 통해서도
위로부터의 영성이 우선임을 깨닫게 됩니다.
 
다음 대목을 통해서 이스라엘의 반복되는 절망과 어둠의 역사에서
빛살처럼 새어나오는 온 우주와 역사의 주인이신 하느님 섭리의 손길을 느낍니다.

“주님께서는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시려고,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의 마음을 움직이셨다.”

하느님께서는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의 마음을 움직여
유배 중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예루살렘 땅으로 귀환시켜
다시 구원역사를 펼쳐 가십니다.
 
결국 모든 주도권을 행사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심을 깨닫게 됩니다.

바로 이런 구원의 복음을 요한사도가 장엄하게 선포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믿게 하셨다.”

세상의 어둠 한 복판에 주어진 하느님의 참 좋은 선물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세상 역사가 시작되었고 우리 삶의 중심과 의미도 주어졌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 없는 세상이나 우리의 삶은
무의미와 허무, 혼돈의 어둠뿐일 것입니다.

에페소서의 바오로 사도 역시 위로부터의 영성을 설파합니다.

“자비가 풍성하신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으로,
  잘못을 저질렀던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를 그분과 함께 일으키시고,
  그분과 함께 하늘에 앉히셨습니다.”

바로 이게 자비하신 하느님의 은총으로 구원 받아 하늘까지 드높여진
인간의 존엄한 품위입니다.
 
얼마나 고무적이요 긍정적인 말씀인지요.
 
하느님 최고의 선물이자 위로부터의 영성의 참 좋은 표지는
하느님의 외 아드님 그리스도 예수님과
지금 거행하는 그분의 성체성사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위로부터의 선물을 받아들이는 믿음이 중요합니다.

자발적으로 믿어야 영원한 생명의 구원입니다.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심판이 아닌 구원에 초점이 있습니다.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습니다.
 
사후에 심판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믿음의 여부로 심판이 결정됩니다.
 
하느님 내리시는 심판이 아니라
불신으로 스스로 자초하는 심판임을 깨닫습니다.
 
빛이신 주님이 세상에 왔지만
하는 일이 악하여 빛보다 어둠을 사랑할 때 바로 자초하는 심판입니다.
 
악을 저지르는 자는 누구나 빛을 싫어함으로 빛으로 나아가지 않습니다.
 
어둠을 향하는 삶,
어둠 속에서 머무르는 삶, 바로 이게 스스로 자초한 심판입니다.

행복은 선택에 달려있듯이, 구원 역시 믿음의 선택에 달려있음을 봅니다.

결단의 믿음으로 심판의 어둠에서 훌쩍 뛰쳐나오는 것 마음먹기 달렸습니다.

빛이신 주님을 선택하는 결단의 믿음입니다.
 
매일 미사를 통해 이 믿음의 결단을 새롭게 하는 우리들입니다.
 
우리는 믿음을 통하여 은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내 잘나서 내 힘으로 구원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으로 구원입니다.
 
새삼 구원은 하느님의 선물임을 깨닫습니다.
 
이러니 아무도 자기 자랑을 할 수 없습니다.
 
진정 이를 깨달아야 겸손입니다.
이를 깨닫는 겸손 역시 하느님의 은총입니다.
 
모두가 하느님의 은총임을 깨닫는 자,
진정  영원한 생명의 구원을 얻은 겸손한 자요 영성의 최고봉에 도달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작품입니다.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하느님의 모상입니다.

바로 이게 인간 존엄한 품위의 기반입니다.
 
끊임없이 고양(업그레이드)되어 하느님을 닮아가는 게
우리 인생의 유일한 목적입니다.
 
결코 되는대로 함부로 막 살 수 없는
유일회적 소중한 하느님의 선물 인생입니다.
 
우리는 선행을 하도록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창조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선행을 하며 살아가도록 그 선행을 미리 준비하셨습니다.
 
눈만 열리면 곳곳에 널린 해야 할 선행들입니다.
하여 완성된 창조가 아니라 평생 창조 과정 중에 있는 우리들임을 깨닫습니다.
 
그렇습니다.
 
선행의 여정 중에 새롭게 창조되어 하느님을 닮아가는 우리들입니다.
 
완성을 향해 여정 중인 하느님의 작품인 우리들입니다.
 
과연 우리는 몇 % 완성된 하느님의 작품일까요?
 
악을 저지르는 자는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나아가지 않지만
선을 사랑하여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빛으로 나아갑니다.
 
선을 사랑하여 진리를 실천하는 삶, 진정 아름답고 거룩한 삶입니다.
 
이런 삶을 살라고 하느님께 선물로 받은 인생입니다.
 
지금 여기서 선을 사랑하고 진리를 실천할 때
빛이신 주님을 만나 영원한 생명의 구원을 얻습니다.
 
빛과 생명으로 충만한 인생을 삽니다.
 
바로 이 거룩한 성체성사의 은총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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