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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어떤 것이 더 심각한 병이며, 왜 표징이라 불렀나?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9-03-23 조회수547 추천수8 반대(0) 신고
 
 

어떤 것이 더 심각한 병이며, 왜 표징이라 불렀나? - 윤경재

왕실 관리가 한 사람 있었는데, 그의 아들이 카파르나움에서 앓아누워 있었다. 자기 아들이 죽게 되었으니 카파르나움으로 내려가시어 아들을 고쳐 주십사고 청하였다. “너희는 표징과 이적을 보지 않으면 믿지 않을 것이다.” “주님, 제 아이가 죽기 전에 같이 내려가 주십시오.” “가거라.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 그 사람은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이르신 말씀을 믿고 떠나갔다. 그 아버지는 바로 그 시간에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 하고 말씀하신 것을 알았다. 그리하여 그와 그의 온 집안이 믿게 되었다.(요한 4,43-54)

 

 요한복음서에는 일곱 가지 표징이 나옵니다. 그중에 첫 번째와 두 번째 표징에만 숫자가 붙어 있습니다. 또 두 번째 표징은 다른 표징들과 달리 우리가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문답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마치 선문답 같습니다. 저는 이점에 의문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단순히 원격치료를 베푸시는 기적으로 보기에는 조금 부족한 점이 있습니다. 첫 번째 표징과 두 번째 표징 사이에 이미 “예루살렘에 계시는 동안, 많은 사람이 그분께서 일으키신 표징들을 보고 그분의 이름을 믿었다.”라고 언급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숫자를 세지 않았습니다. 마치 그런 것들은 표징 축에도 들지 못한다는 말처럼 들립니다. 즉 요한저자는 이것을 특별한 의미가 담긴 표징으로 해석하였고 또 그렇게 알아보기를 원한 것입니다. 그저 원격치료 기적으로 보지 말라는 의미에서 두 번째 표징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왕실관리는 옛 질서를 의미합니다. 옛 질서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했지만, 자식 사랑에서만큼은 무력하기 짝이 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아무에게라도 매달릴 형편이었습니다. 그의 머리에는 온통 죽음이라는 병에서 어떻게 하면 벗어날 것인가가 최대의 관심사였습니다. 그는 자만심을 꺾고 예수님께 ‘내려와서’ 아들을 고쳐주시기를 청했습니다. 요한저자는 이 동사를 두 번씩이나 사용합니다. 왕의 측근이라면 올라오라는 동사를 쓸 법도 한데 그는 예수께 땅 아래로 내려오셔서 죽음을 일으켜달라는 요청을 한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동문서답 같은 알쏭달쏭한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는 표징과 이적을 보지 않으면 믿지 않을 것이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어떤 것이 진짜 질병인지 일깨워 주십니다. 개인을 죽음으로 몰고가는 병이 문제가 아니라 너희가 표징과 이적을 보지 않으면 믿으려 하지 않는 것이 더 심각한 병이라는 말씀입니다. 너의 걱정은 네 자식의 죽음이지만, 나의 걱정은 너희의 눈멂이 더 큰 문제라는 말씀이셨습니다. 표징은 표징 너머에 있는 의미를 올바르게 바라봄으로써 가치가 있는데 그것을 깜짝 놀랄만한 이벤트쯤으로 치부하고, 깨닫지 못한 채 계속 요청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들은 왕실관리는 이분이 믿을 만한 분이며 자신의 마음속을 꿰뚫고 계신다고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더 절실히 매달립니다. 예수님께 주님이라 부르며 치유의 기적을 베풀어 달라고 매달립니다. 이에 또 한 번 예수님께서는 깜짝 놀랄 명령을 내리십니다. 요한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 표징을 보이실 때 상대에게 불가능하게 보이는 것을 하라고 명령하십니다. 38년이나 누워 있던 사람에게 들것을 들고 걸어가라고 하시고, 소경에게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시고, 죽은 라자로에게는 나오라고 명령하십니다. 이처럼 왕실관리에게는 “가거라.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라고 명령하십니다. 어떤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시고 ‘가거라’라는 동사만으로 그에게 명령하십니다. 지금의 우리라면 마음속으로 “과연 가능할까?”라고 의심했을 것입니다.  

 “가거라!”라는 이 말씀에는 먼저 네 마음속에 믿음의 샘물을 파고 샘물을 흘러넘치게 한다면 그 샘물이 타인에게도 흘러가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할 것이라는 뜻이 숨어 있습니다. 내가 직접 내려가 치료하지 않아도 네가 치료자가 되면 치유 기적은 일어나며 그 결과 모든 가족이 변화하리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네가 변화한 것에 머물지 말고 남들에게도 변화를 이끌도록 하라는 말씀입니다. 즉 한 사람의 믿음이 온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다는 뜻이 숨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두 번째 표징의 참 의미일 것입니다.

  우리가 늘 생각하듯이 죽음이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부족이 온 세상을 병들게 하는 근본 원인이라는 지적을 예수님께서는 깨닫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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