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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상기님의 둥둥 북소리 114
작성자김명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9-03-23 조회수570 추천수3 반대(0) 신고
오늘의 묵상입니다.[사순 제4주간 월요일]
 
<가거라.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4,43-54

그때에 43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를 떠나] 갈릴래아로 가셨다. 44 예수님께서는 친히, 예언자는 자기 고향에서 존경을 받지 못한다고 증언하신 적이 있다. 45 예수님께서 갈릴래아에 가시자 갈릴래아 사람들이 그분을 맞아들였다. 그들도 축제를 지내러 예루살렘에 갔다가, 예수님께서 축제 때에 그곳에서 하신 모든 일을 보았기 때문이다.

46 예수님께서는 물을 포도주로 만드신 적이 있는 갈릴래아 카나로 다시 가셨다. 거기에 왕실 관리가 한 사람 있었는데, 그의 아들이 카파르나움에서 앓아누워 있었다. 47 그는 예수님께서 유다를 떠나 갈릴래아에 오셨다는 말을 듣고 예수님을 찾아와, 자기 아들이 죽게 되었으니 카파르나움으로 내려가시어 아들을 고쳐 주십사고 청하였다.

48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표징과 이적을 보지 않으면 믿지 않을 것이다.” 49 그래도 그 왕실 관리는 예수님께 “주님, 제 아이가 죽기 전에 같이 내려가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50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가거라.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 그 사람은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이르신 말씀을 믿고 떠나갔다.
 
51 그가 내려가는 도중에 그의 종들이 마주 와서 아이가 살아났다고 말하였다. 52 그래서 그가 종들에게 아이가 나아지기 시작한 시간을 묻자, “어제 오후 한 시에 열이 떨어졌습니다.” 하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53 그 아버지는 바로 그 시간에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 하고 말씀하신 것을 알았다. 그리하여 그와 그의 온 집안이 믿게 되었다. 54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유다를 떠나 갈릴래아로 가시어 두 번째 표징을 일으키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 복음은 마태오와 루카복음서에서는 백인대장의 병든 종을 고치시는 표징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복음과 두 공관복음은 동일한 전승이 서로 다르게 전승된 것 같습니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는 이러한 전승들은 지역에 따라서 조금씩 달라질 수밖에 없으며 복음서가 쓰여진 당시에는 이러한 구비전승들을 수집하여 서로 다른 점을 비교분석하여 정확하게 기록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생각하여도 불가능한 일입니다.
 
지금 우리는 4복음서만 정경으로 인정하고 있지만 초기 교회에서는 수십 가지 복음서가 난립하고 있었으며 지금의 4복음서는 그 중에서 교회에 의해서 정경으로 채택된 것이므로 복음서가 쓰여진 당시만 해도 정경이니 외경이니 이런 구분조차도 있을 수 없었습니다. 각 복음서는 입으로 전해 내려오는 전승을 기록한 것이므로 상이할 수밖에 없었으며 각 신앙공동체에서 사용한 복음서가 그들의 성경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경으로 채택하는 과정도 100년 이상 기간 동안 숱한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지금의 정경이 확정되었으므로 채택되지 못한 경전을 배척하기 위해서도 정경을 무조건 믿을 것을 강요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전통이 지금까지 그대로 이어져 온 것 같습니다. 
 
 "영은 생명을 준다. 그러나 육은 아무 쓸모가 없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이며 생명이다.'(요한 6. 63)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말씀하셨으므로 예수님께서 행사하신 모든 치유의 표징은 아무 쓸모가 없는 육을 치유한 것이 아니라 잘못된 영을 치유한 것으로 묵상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 이런 치유의 표징은 예수님의 위대성을 알리는 목적과 자비를 실천하는 상징적인 표현으로 그리고 이런 상황을 설정하여 예수님의 말씀을 민중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널리 알려주는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할 것입니다. 복음서는 이런 치유의 표징을 행사할 때마다 예수님의 말씀을 필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 말씀을 늘 중시하여 묵상하고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은 “너희는 표징과 이적을 보지 않으면 믿지 않을 것이다.”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저희의 기도에 응답하시어 표징과 이적을 내려주시기를 기대하고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부지기수 입니다. 동양 삼국에서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우리 그리스도교가 급속한 성장을 한 것은 우리 민족의 고유정서인 성황당신앙이 그 밑거름이 되었다는 지적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느 성지에서 기도하면 기도발이 잘 먹힌다는 이런 얘기가 공공연하게 회자되고 있습니다. 성인의 통공을 이런 식으로 이해하여 그런 말이 생겨난 것 같습니다. 나라에 죄를 지을망정 천주에게는 죄를 지을 수 없다는 이 땅의 성인들의 뜻을 이어받으려면 저는 교회에는 죄를 지을망정 천주에게는 죄를 짓지 않을 생각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늘 복음처럼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실천해야 가능합니다. 오늘 왕실 관리는 고집을 피우다가 “가거라.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그대로 따랐습니다. 우리 신앙은 우리의 잘못된 생각을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우리의 생각을 바꾸는데 있습니다. 우리의 잘못된 생각은 비록 교회의 가르침이라 할지라도 어느 하나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너희는 표징과 이적을 보지 않으면 믿지 않을 것이다.” 하신 오늘 말씀과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요한 20, 20)고 하신 말씀은 동일한 말씀입니다. 부활하시여 부활을 의심한 토마스 사도에게 오늘 말씀을 다시 말씀하고 계시므로 오늘 이 말씀은 예수님의 말씀이 진리라는 사실을 믿는 것이 신앙의 첫 걸음임을 요한복음서 기자는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교회의 가르침을 의심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으로 이 말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우리 신앙은 의심을 죄악시하고 있습니다. 가르침이 잘못된 것이 없다면 오히려 의심하도록 권장을 하여야 합니다. 모든 의심이 해소되어야 참된 믿음이 생겨날 수 있음에도 의심을 원천봉쇄하여 뭘 어찌하자는 뜻인지 저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의심하고 또 의심해야 합니다. 이런 의심에 대하여 교회에 끈임없이 질문해야 하고 교회는 우리의 의심을 해소시켜 줘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교회도 시대에 맞게 변화하며 영원한 생명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을 문자 그대로 믿고, 아이의 상태도 보지 않고 원격치유가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은 자신에게도 그런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라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 기적이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기적을 마다할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저는 이를 믿지 않고 있으므로 믿음이 부족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믿음은 제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어서, 제 양심이 허락하지 않아서 그런 믿음은 생각해 본 적도 없습니다.
 
예수님이 '살아날 것이다' 말씀하신 시각에 아이의 병세가 호전된 것은 예수님의 말씀은 거짓이 없는 진리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우리 신앙은 예수님의 가르침인 진리의 말씀을 믿는 것이며, 성황당의 기적을 믿는 것처럼 복음서의 이런 치유의 기적이나 믿는 신앙이 아니라는 사실을 새롭게 하며, 주님의 말씀으로 제 양심이 치유되기를 기도하며 오늘 묵상을 마무리합니다. 
 
대자대비하신 아빠 하느님!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은 표징과 이적을 바라며 신앙생활을 하는 저희에게
'너희는 표징과 이적을 보지 않으면 믿지 않을 것이다.'하시며
잘못된 신앙을 지적하여 주셨습니다.
모든 것은 다 의심하여 오로지 주님의 말씀만을 믿고 따를 수 있도록
언제나 성령으로 이끌어 주시옵기를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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