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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3월 24일 야곱의 우물- 요한 5,1.5-12.15-16 묵상/ 하느님의 방식과 인간의 방식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09-03-24 조회수898 추천수4 반대(0) 신고
하느님의 방식과 인간의 방식

(필자가 묵상한 구절을 중심으로 싣습니다.)
유다인들의 축제 때가 되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 거기에는 서른여덟 해나 앓는 사람도 있었다. 예수님께서 그가 누워 있는 것을 보시고 또 이미 오래 그렇게 지낸다는 것을 아시고는, “건강해지고 싶으냐?” 하고 그에게 물으셨다.
 
그 병자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선생님, 물이 출렁거릴 때에 저를 못 속에 넣어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는 동안에 다른 이가 저보다 먼저 내려갑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 네 들것을 들고 걸어가거라.” 그러자 그 사람은 곧 건강하게 되어 자기 들것을 들고 걸어갔다. 그날은 안식일이었다. 그래서 유다인들이 병이 나은 그 사람에게, “오늘은 안식일이오. 들것을 들고 다니는 것은 합당하지 않소.” 하고 말하였다.
 
그가 “나를 건강하게 해주신 그분께서 나에게, ‘네 들것을 들고 걸어가라.’ 하셨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그들이 물었다. “당신에게 ‘그것을 들고 걸어가라.’ 한 사람이 누구요?” 그 사람은 물러가서 자기를 건강하게 만들어 주신 분은 예수님이시라고 유다인들에게 알렸다. 그리하여 유다인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그러한 일을 하셨다고 하여, 그분을 박해하기 시작하였다.
(요한 5,1.5-­12.15-­16)
 
 
 
 
◆12년이 넘게 로마에서 교육 받은 딸을 데리고 귀국하여 한국의 고등학교에 재입학을 시켰습니다. 전혀 다른 교육 방식에도 저의 강력한 요구에 큰 저항 없이 학교를 다녔습니다. 가끔 학교생활에서 가장 힘든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학교에 있는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우리의 모든 고등교육 방향이 수능에 맞추어져 있고 딸과 같은 학생에 대한 학교 측 배려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한국어조차 힘든 딸로서는 참으로 어려웠을 것입니다. 제도권 교육의 껍질이라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와 알맹이 없는 교육의 허구를 비판하던 딸이었지만 결국 딸은 순명으로 가방만 들고 다니기를 2년 남짓 했습니다. 그러던 중, 딸이 감기에 걸렸습니다. 등교시간이 되도록 열이 떨어지지 앉자 저는 담임선생님께 전화를 걸어 하루 쉴 수 있도록 결석 처리를 부탁했습니다.
 
선생님은 의사의 진단서가 있어야 결석 처리가 가능하다며 진단서를 제출하라고 했고, 전 하루 정도 쉬고 나면 바로 주말이라 괜찮아질 정도의 열이 있는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고 진단서를 (학교에 제출하기 위해) 끊을 필요가 있겠느냐고 반문했습니다. 선생님은 학교의 규칙을 말했고 전 딸의 상태에 대해 말했지만, 학교의 규칙이라는 것이 부모의 말도 신뢰할 수 없는 것으로 만들고 있음에 분개하고야 말았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서른여덟 해나 병을 앓던 환자도 안식일에는 치유해서는 안 된다는 유다 규범을 내세워 주님을 몰아붙이는 유다인과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에게 위험이 될 수도 있는) 인간에 대한 측은지심을 내려놓지 않는 주님의 방식이 눈에 뜁니다.
사람보다 규범을 앞세우는 사람은 상황에 따라 자기가 편리한 대로 그 규범을 조작하여 힘없는 사람을 짓밟는 수단으로 삼습니다. 유다인들은 로마법에 있는 사형 제도까지 차용하여 주님을 못 박은 그 무서운 가능성을 오늘 복음을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김혜경(한국가톨릭여성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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