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생명과 빛의 주님" - 3.24,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9-03-24 조회수650 추천수6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9.3.24 사순 제4주간 화요일
                                                
에제47,1-9.12 요한5,1-3ㄱ.5-16

                                                          
 
 
 
 
"생명과 빛의 주님"
 


생명과 빛을 찾는 사람입니다.
생명과 빛의 하느님입니다.
생명과 빛의 하느님을 찾는 사람입니다.
 
생명의 물을 찾아 땅 속 깊이 뿌리 내린 나무 같은,
햇빛을 찾아 하늘 높이 가지 뻗은 나무 같은 사람입니다.
 
생명과 빛이 결핍될 때 온갖 병과 죽음이요 고통입니다.
생명의 빛의 하느님을 만나야 살아나는 영혼, 육신입니다.
오늘 말씀의 한 복판에 자리 잡고 있는 생명의 주님이십니다.
 
독서와 복음의 배경은 흡사 절망의 어둠이 덮고 있는 세상 같습니다.
 
절망의 어둠 세상 한 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거룩한 성전이요
생명의 주님이십니다.
 
에제키엘 예언자가 본 환시에 나오는
성전에서 나오는 물은 바로 하느님의 충만한 생명을 상징합니다.

“이 물이 바다로 흘러 들어가면, 그 바닷물이 되살아난다.
  그래서 이 강이 흘러가는 곳마다 생물이 우글거리며 살아난다.
  ~이렇게 이 강이 닿는 곳마다 모든 것이 살아난다.~
  이 물이 성전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마치 이 성전에서의 미사은총을 상징하는 듯합니다.
 
절망의 어둠 광야 세상을 향해 흐르는 성체성사 은총의 강입니다.
 
‘이 강이 닿는 곳마다 모든 것이 살아난다.’ 말씀처럼
성체성사 은총의 강에 닿아 치유되어 살아나는
우리의 영혼 육신이요 세상입니다.
 
복음의 예수님 역시 고해 세상 한 가운데
생명과 빛으로 현존하시는 모습입니다.

‘그 벳자타라고 불리는 못에는 주랑이 다섯 채 딸렸는데,
  그 안에는 눈먼 이, 다리 저는 이, 팔다리가 말라비틀어진 이 같은
  병자들이 많이 누워있었다.’

누워있는 병자들 얼마나 서기도 하고 걷기도 하고 싶을 까요.
 
서서 걸을 수 있는 것도 큰 행복임을 깨닫습니다.
 
복음의 이 장면, 그대로 고해 세상을 상징합니다.
 
특히 서른여덟 해나 누워 지낸 병자는
절망의 극한 상황 중에 있는 인간 실존을 상징합니다.

“일어나 네 들 것을 들고 걸어가라.”

생명과 빛의 주님을 만나자
그 병자는 곧 건강해져 자기 들 것을 들고 걸어갔다 합니다.
 
주님을 만남으로 절망의 무기력한 누워 지내던 삶에서
일어나 걸어가는 역동적 부활의 삶을 살게 된 병자입니다.

“자, 너는 건강하게 되었다.
  더 나쁜 일이 너에게 일어나지 않도록 다시는 죄를 짓지 마라.”

생명의 주님께 치유와 더불어 죄까지 용서받음으로
영육이 온전히 치유 구원된 서른여덟 해 동안 누워 지내던 병자입니다.
 
오늘도 이 은혜로운 성체성사 생명의 강에 닿아
치유되어 살아나는 우리들이요 세상입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 나는 아쉬울 것 없어라.
  푸른 풀밭에 나를 쉬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이끄시도다.”
(시편23,1-2).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