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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궁극의 피신처" - 3.28,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9-03-28 조회수472 추천수5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9.3.28 사순 제4주간 토요일
                                                    
예레11,18-20 요한7,40-53

                                                          
 
 
 
 
"궁극의 피신처"
 


오늘 복음 묵상과 관련되어 떠오른
아침 성무일도 중 시편 두 구절입니다.

“주님, 하신 일들이 얼마나 크옵시며,
  생각하심 그 얼마나 깊으시니이까.
  미욱한 자 이를 깨닫지 못하고,
  투미한 자 이를 깨닫지 못하나이다.”(시편92,6-7).

인간의 무지와 교만, 탐욕이 영원한 화근입니다.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세 악덕은
우리와 하느님과의 관계를 철벽같이 차단합니다.
 
인간의 근본 조건이자 원죄의 결과물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인간의 무지와 편견, 교만과 탐욕으로 인해
하느님의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이들을 박해받고 죽였으며,
성전이라는 미명하에 얼마나 많은 무죄한 이들이 피를 흘렸는지요.
 
무지와 편견, 교만과 탐욕은 영혼의 중병임이 분명합니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이나 독서의 예레미야 예언자의 처지가 흡사합니다.
 
똑같이 하느님을 믿는다 하는 이들의 무지와 편견으로
박해 받는 두 분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에 정통하다는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 보다
무식한 성전 경비병들이 예수님의 하느님 배경을 알아봅니다.

“그분처럼 말하는 사람은 지금까지 하나도 없었습니다.”

민심이 천심이라는 말도 있듯이
성전 경비병들이 편견 없이 예수님의 정체를 알아챘습니다.
 
무지와 편견에 눈 먼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은
가차 없이 성전 경비병들을 단죄합니다.

“너희도 속은 것이냐?…율법을 모르는 저 군중은 저주 받은 자들이다.”

역시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의 하느님 배경을 감지한
니코데모 조심스런 반론에도 요지부동입니다.
 
“당신도 갈릴래아 출신이라는 말이오?
  성경을 연구해 보시오.
  갈릴래아에서는 예언자가 나지 않소.”

아집과 편견의 벽을 넘어
예수님의 하느님 배경을 알아채지 못하는 무지와 교만의 사람들,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입니다.
 
오늘의 제도권의 성직자들에게도 경종이 되는 말씀입니다.
 
예레미아 예언자 역시 하느님의 사람으로 제대로 대우 받지 못하고
반대편 사람들의 편견과 몰이해로 인해 극심한 박해를 받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
이스라엘의 멸망을 예언함으로 자초한 예레미야 예언자의 박해입니다.
 
마지막 피신처는 하느님뿐입니다.

“주님 저의 하느님, 제가 주님께 피신하나이다.”

화답송 후렴 말씀처럼,
모든 박해 받은 예언자들의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궁극의 배경이자 피신처인 하느님께 기도하는 예레미야 예언자입니다.

“정의롭게 판단하시고,
  마음과 속을 떠보시는 만군의 주님,
  당신께 제 송사를 맡겨 드렸으니,
  당신께서 저들에게 복수하시는 것을 보게 해 주소서.”

한계상황 속에서
마지막 피신처인 하느님께 바치는 예레미야의 간절한 기도입니다.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시간,
무지와 편견, 교만과 탐욕을 말끔히 벗어버리고
깨끗한 마음으로 하느님께 기도 바치는 우리들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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