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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3월 29일 사순 제5주일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9-03-29 조회수914 추천수17 반대(0) 신고

 

3월 29일 사순 제5주일 - 요한 12,20-33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한 알 밀알이 된다는 것>


   일본에서 '밤의 선생님'으로 유명한 미즈타니 오사무 선생님의 체험을 다룬 책 「애들아, 너희가 나쁜 게 아니야」를 감명 깊게 읽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던지시는 한 말씀 한 말씀이 제게는 너무나 감명 깊고 소중해서 마치 착한 목자 예수님 말씀을 듣는 듯합니다. 살아있는 돈보스코 음성을 듣는 듯합니다.


   "교사 생활 21년 동안 꼭 한 가지 자랑스럽게 내세울 만한 것이 있다. 그건 바로 한 번도 학생을 야단치거나, 때린 일이 없다는 점이다. 나는 학생들을 절대 야단치지 않는다. 아이들은 모두 '꽃을 피우는 씨앗'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미처 꽃피우지 못한 씨앗들을 만나기 위해 나는 오랫동안 밤거리에서 살았다. 그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나는 그저 그들 옆에 있고 싶었다."


   고된 하루 일과가 끝나면 미즈타니 선생님은 어김없이 밤거리로 나섭니다. 선생님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십니다.


   "내가 보기에 밤거리를 헤매는 아이들도 역시 사랑스런 아이들이다. 따스한 태양빛이 비추는 밝은 세계에 사는 어른들이 매정하게도 그 아이들을 더욱 어두운 밤의 세계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큰 상처를 입고 슬퍼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매일 내 사랑스런 아이들이 있는 밤거리로 들어서고 매일 그들을 만나고 있다."


   한 아이가 선생님께 묻습니다.


   "미즈타니 선생님, 선생님께서 우리들에게 제일 많이 하는 말씀이 뭔지 아세요?"


   "몰라, 그게 뭔데?"


   "'괜찮아!'예요. 선생님의 그 '괜찮아' 때문에 우리들이 지금까지 살아 있잖아요. 선생님의 '괜찮아!' 때문에 저희가 구원받았어요."


   경찰에 붙잡혀 있을 때 선생님께서 면회오시자마자 뭐라고 하셨는지 아세요?


   "뭐라고 했는데?"


   "'괜찮다. 할 수 없지. 이미 저지른 일인데' 저희에겐 그 한 말씀이 정말 컸지요."


   아이들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 '왜 그랬니?' 라고 다그치기보다 '괜찮아!' 하고 던진 그 말 한 마디는 수많은 밤거리 아이들을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오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약물이나 폭력에서 아이들을 지킬 수만 있다면 조직 폭력단 사무실까지도 스스럼없이 찾아가십니다. 급기야 선생님은 조직폭력배들에게서 한 아이를 빼내려고 자신의 손가락 하나를 잘라내야만 했습니다. '한알 밀알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선생님은 온 몸으로 보여주고 계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머지않아 세상과 인류 구원을 위해 기꺼이 땅에 떨어져 죽는 한 알 밀알이 될 것임을 암시하십니다. 또한 우리도 당신 모범을 따라 자기희생과 헌신의 삶을 살라고 초대하십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사제서품을 준비하던 피정 때 두고두고 묵상하던 시(詩) 한 구절이 생각납니다. 김용석 시인의 '가을이 오면'이라는 시입니다.


 "나는 꽃이에요. 잎은 나무에게 주고 꽃은 솔방벌에게 주고 향기는 바람에게 보냈어요. 그래도 난 잃은 건 하나도 없어요. 더 많은 열매로 태어날 거예요. 가을이 오면."


   사제서품식 핵심에 후보자들이 바닥에 엎드리는 순간이 있습니다. 참으로 의미 있는 몸짓이지요. 또 다른 생명의 탄생을 위해 자신을 남김없이 내어놓는 꽃처럼 살겠다는 다짐의 표현입니다. 더 많은 결실을 위해 기꺼이 땅에 떨어져 죽는 한 알 밀알이 되겠다는 의미입니다. 이 세상에 죽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살겠다는 맹세입니다. 교회 공동체 가장 밑바닥에 서서 섬김과 봉사의 삶을 살겠다는 공적 약속입니다.


   '밤거리'라는 가장 밑바닥에서 가장 상처 입은 아이들을 위해 기꺼이 한 알 밀알이 되신 미즈타니 선생님의 삶, 그 어떤 보상도 기대하지 않고 그저 아이들이 좋아서, 한 아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고달픈 몸을 이끌고 위험한 밤거리를 떠도는 미즈타니 선생님의 삶, 남아있는 제 사제생활의 이정표로 삼고 싶습니다.


   신앙인에게 있어 인생이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언제일까요? 자신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날 때입니다. 나와 남이 하나가 될 때입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이웃을 향할 때입니다. 사심 없이 이웃에게 선행을 베풀 때입니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땅에 떨어져 죽는 한 알 밀알이 될 때입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가톨릭성가 211번 / 주여 나의 몸과 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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