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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9-03-30 조회수964 추천수16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09년 3월 30일 사순 제5주간 월요일
 
 
 
 "Let the one among you who is without sin
be the first to throw a stone at her."
(Jn.8.7)
 
 
제1독서 다니엘 13,1-9.15-17.19-30.33-62
복음 요한 8,1-11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가 그린 '최후의 만찬'이라는 그림에는 많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다 빈치는 그림을 구상하면서 유다 이스카리옷을 어떻게 그릴까 생각하다가 자기가 제일 싫어하고 미워하는 사람의 얼굴을 그려서 유다 이스카리옷을 삼았습니다. 그리고 통쾌한 마음까지 가졌지요.

그리고서는 예수님의 얼굴을 그리려고 했는데, 아무리 노력을 해도 그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이유가 무엇인가를 오랫동안 생각하다가 자기가 미워하여 유다 이스카리옷으로 그린 그 친구를 찾아갔답니다. 그리고서 그에게 사과를 했습니다.

“내가 사실 자네가 너무나 미워서 당신의 얼굴을 유다 이스카리옷의 얼굴로 그렸다네. 그런데 문제는 나머지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거야.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자네를 미워하는 마음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지. 그래서 깊이 뉘우치고 당신께 용서를 청하기 위해 이렇게 왔다네.”

이렇게 용서를 청하고 나서 그린 그림이 그 유명한 ‘최후의 만찬'입니다. 남을 미워하고 시기할 때는 위대한 창조적인 일을 또 그러한 작품도 나올 수가 없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너무나도 나약하고 부족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 따라 용서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다시 생각하면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면서 보복해야 한다는 마음도 가득하게 됩니다.

이렇게 용서해야 한다는 마음과 보복해야 한다는 마음에 각각의 발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특히 보복해야 한다는 마음은 늪과 같기에 한번 빠지면 좀처럼 나오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용서해야 한다는 마음에서 발을 떼어버리는 순간, 늪과 같은 보복해야 한다는 마음에 푹 빠질 수밖에 없고 그래서 더욱 더 힘들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된다는 것을 잘 아시는 주님께서는 우리가 용서하기를 원하실까요? 아니면 보복하기를 원하실까요? 비록 지금은 억울하고 힘들겠지만, 용서해야 더 큰 일을 할 수 있고 또한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어떻게든 용서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생명에 관한 부분은 하느님의 영역에만 있는 것이기에, 남을 판단하고 단죄하는 것 역시 사람의 영역이 아니라 하느님의 영역에 있음을 강조하십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도 간음한 여인을 향해 돌을 던지려는 유다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이제까지 용서의 마음과 보복의 마음 각각에 발을 딛고 있었다면, 보복의 마음 쪽에 있는 발을 떼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보복의 마음은 늪과 같아서 점점 깊숙이 빠질 수밖에 없지만, 용서의 마음은 마른 땅과 같아서 그곳에 양발을 딛는 순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어느 땅에 양발을 딛겠습니까? 진정한 행복이 있는 곳은 바로 용서의 마음이 있는 곳입니다.



용서란 판단이라는 말과 정 반대의 표현이다. 판단하는 것 보다 쉬운 것은 없고, 용서하는 것 보다 어려운 것은 없다. 하지만 용서보다 더 큰 축복을 받는 것도 없다.(에머슨 이게릭스)




매일 같은 길을 걸어도(‘좋은 글’ 중에서)

매일 같은 길을 걷고 같은 골목을 지나도
매일 같은 길은 아니었습니다.

어느 날은 햇빛이 가득차 눈이 부시고
어느 날엔 비가 내려 흐려도 투명하거나
어느 날엔 바람에 눈이 내려 바람 속을 걷는 것인지
길을 걷는 것인지 모를것 같던 날들도 있었습니다.

골목 어귀 한그루 나무조차
어느 날은 꽃을 피우고
어느 날은 잎을 틔우고

무성한 나뭇잎에 바람을 달고 빗물을 담고
그렇게 계절을 지나고 빛이 바래고..

낙엽이 되고 자꾸 비워 가는 빈 가지가 되고
늘 같은 모습의 나무도 아니었습니다.

문밖의 세상도 그랬습니다.
매일 아침 집을 나서고
저녁이면 돌아오는 하루를 살아도
늘 어제 같은 오늘이 아니고
또 오늘 같은 내일은 아니었습니다

슬프고 힘든 날 뒤에는
비 온 뒤 개인 하늘처럼 웃을 날이 있었고
행복하다 느끼는 순간 뒤에도
조금씩 비켜갈수없는 아픔도 있었습니다.

느려지면 서둘러야하는 이유가 생기고
주저앉고 싶어지면 일어서야 하는 이유가 생겼습니다.

매일 같은 날을 살아도
매일 같은 길을 지나도

하루하루 삶의 이유가 다른 것처럼
언제나 같은 하루가 아니고

계절마다 햇빛의 크기가 다른 것처럼
언제나 같은 길은 아니었습니다.

돌아보니 나는 그리 위험한
지류를 밟고 살아오진 않은 모양입니다.

남들보다 빠르게 꿈에 다다르는 길은 알지 못하고 살았지만
내 삶을 겉돌 만큼 먼 길을 돌아오지는 않았으니 말입니다.

아직도 가끔씩 다른 문밖의 세상들이 유혹을 합니다.
조금 더 쉬운 길도 있다고
조금 더 즐기며 갈 수 있는 길도 있다고
조금 더 다른 세상도 있다고..

어쩌면 나라는 사람은 우둔하고 어리석어서
고집처럼 힘들고 험한 길을 걷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돌아보고 잘못된 길을 왔다고 후회한 적 없으니
그것으로도 족합니다.

이젠 내가 가지지 못한 많은 것들과
내가 가지 않은 길들에 대하여
욕심처럼 꿈꾸지 않기로 합니다.

이젠 더 가져야 할것보다
지키고 잃지 말아야 하는 것들이 더 많습니다.

어느새 내 나이...
한가지를 더 가지려다 보면
한가지를 손에서 놓아야하는 그런 나이가 되었으니까요.

내가 행복이라 여기는 세상의 모든 것들
이젠 더 오래 더 많이 지키고 잃지 않는 일이 남았습니다.

세상으로 발을 내디디는 하루하루
아직도 어딘가 엉뚱한 길로 이끄는 지류가
위험처럼 도사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흘러가는 삶도 남아 있어서
아직도 세상 속으로 문을 나서는 일이
위험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나는 믿지요.
길은 결국 선택하는 사람의 것이라는 걸...
행복은 결국 지키는 사람의 것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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