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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요셉 수사님의 성소이야기] 나를 이끄신 하느님 5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9-04-02 조회수801 추천수6 반대(0) 신고
 

[요셉 수사님의 성소이야기] 나를 이끄신 하느님 5

                     

   그래서 나는 그날, 학교 소풍은 빼먹고 인천 변두리의 어느 산에서 오두막을 지키고 있다는 그 수사님을 만나보러 가기로 했습니다.  우선 경인선 전철을 타고 부평역에서 내려서, 거기서 강화도로 가는 시외버스를 타고 박촌 이라는 곳 못미처 산기슭에서 내려 논둑길 밭둑길을 지나 부평 향교를 뒤 돌아 배밭, 포도밭을 지나 개울을 따라 진명이 고개 쪽으로 산길을 올라가면 중턱에 옛 목장터가 있는데, 거기 牛舍(우사)에 기거하고 있다고 안내 받은 대로, 길 가는 사람이나 밭에서 일하는 농부들에게 물으며 한 시간 반 이상 걸어서 겨우 도착을 했는데, 광야 한 복판에 있는 외로운 천막 같은 오두막집 문을 두드리니 성소 담당 신부님이 놀랍고 반갑게 나를 맞이하며 하시는 말씀이 “여기까지 찾아오느라고 얼마나 고생했느냐?” 고 하셨는데, 나는 그 말씀을 듣는 순간 내가 나중에 천국에 가게 되면 하느님께서 나에게 꼭 이렇게 말씀하실 것 같다는 생각에 마음속으로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때는 한창 무르익는 봄이어서 사람들이 사는 마을에는 화사한 꽃들이 만발하고 있건만, 여기 광야와 같은 계양산 기슭은  울퉁불퉁 바위투성이에 키가 작은 소나무들이 듬성듬성 억새풀과 함께 자라고 있을 뿐 아직 봄기운은 느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마치 <폭풍의 언덕> 같이 세찬 바람이 얼마나 무섭게 울어대는지 창문 밖으로 들리는 그 소리가 꼭 귀신들의 울음소리 같았습니다.


   거기에 갈 때는 당일에 다녀올 생각으로 갔지만, 도착하였을때 이미 늦은 오후였고, 그 오두막의 고독한 분위기가 너무 좋아 나는 그날 밤을 거기서 묵기로 했습니다. 수사님이 직접지어 주신 저녁밥을 먹고 우리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하며 밤늦게 자리에 들었는데, 그 오두막에는 작은 방이 두 개 밖에 없어 나는 성체는 모셔져 있지 않고 임시 성당으로 쓰는 작은 마루방에서 자게 되었습니다. 밖에서는 밤새도록 거센 바람이 귀곡성처럼 무섭게 울부짖고 있었지만, 주님을 섬기는 형제들의 집, 더구나 수사님들이 밤낮으로 주님께 기도드리는 그 방은 아늑하기만 했습니다.


   마치 사막의 은수자들의 집 같은 거기를 다녀와서 내 마음은 더욱 가르멜로 끌려서, 이때부터는 길을 가다가 보이는 간판의 글자에서 ‘가’자

만 보여도 가르멜이 생각났고, ‘수’ 자만 보여도 수도원이 연상되었으며, 공부하다가 책장이나 노트에 무심코 연필로  끌적이는 낙서에서도 ‘가르멜수도원’이라고 밖에 다른 것이 없었습니다.


   그 무렵 수도원의 성소 담당 신부님은 나에게 입회에 필요한 서류들을 준비하여 정식으로 제출하라고 하셨는데, 그 종류가 많았습니다. 이를테면,


   호적등본, 주민등록등본, 영세 증명서, 견진 증명서, 최종학교 졸업 증명서, 성적 증명서, 본당 신부님의 추천서, 부모의 동의서, 종합병원의 건강진단서 등이었습니다. 이 중에서 영세,  견진 증명서를 준비하기 위해서 나는 걱정이 많았는데, 그것은 내가 처음에도 밝힌 대로 영세, 견진을 군대에서 하였기에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여기 저기 전화를 해서 알아 본 결과 결국 C.C.K 군종 사업부에서 수많은 서류들을 뒤적거려서 찾아 본 결과, 결국 확인하여 증명서를 발급 받을 수 있었습니다. 나는 그 모든 서류를 준비하여 7월 15일에 그것을 제출하러 수도원에 갔는데, 신부님은 그것을 받으신 후 나를 정식으로 입회 청원자로 인정하신다면서 다음 날, 즉 7월 16일 날이 수도원의 최대 축일인 ‘가르멜산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인데, 이날 수도원 공동체와 함께 서울 수유리에 있는 봉쇄 가르멜 수녀원을 방문하는데, 나도 함께 가자고 초대하셨습니다.


   그날, 수녀원의 성당에서는 재속회원들의 피정도 있어서 대축일 미사 때 가르멜 1,2,3회가 함께 참례하여 참으로 성대하고 장엄한 예식이었습니다.


   저녁식사는 수녀님들이 온갖 정성을 들여 준비한 것으로 신부님들과 함께 하였는데, 내가 생전 처음으로 대하는 고급 음식들이 많았습니다. 나는 지금까지의 나의 세계와는 다른 곳에 와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들떠 있었는데, 식사가 끝난 후에 응접실에서 수녀님들을 면회하였을 때 나의 감동은 절정에 달했습니다. 마치 감옥의 철창 같은 격자 너머로 보이는 수녀님들의 맑고 밝은 얼굴들을 처음 대하는 순간,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들을 보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고, 분명히 우리 눈앞에서  우리와 재미있게 대화를 하는 그들이 이 세상의 사람들처럼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한 평생을 높은 봉쇄 담장 안에서 침묵과 고독 가운데 사시면서, 살아계신 하느님과 내밀한 대화를 하며, 끊임없는 영적 교류와 사귐으로 내적 생활을 하는 그들인지라 아무 말 없이 그냥 앉아 계시는 모습과 얼굴에서도 광채와 거룩함의 분위기가 풍겨 나왔습니다.


   내가 가르멜 수도원의 청원자라고 해서 그들은 내게 여러 가지 질문을 했는데, 보통 때 같으면 말 주변이 없어서 우물쭈물하던 나였지만, 무슨 일이지 그날은 막힘없이 자연스럽게 이야기 할 수 있는 내 모습에 스스로 놀라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짓궂게도 내게 노래를 시켰는데, 나는 그 밝은 분위기에 맞지도 않게 평소 즐겨 부르던 슬픈 곡조의 <이스라엘 사람들의 이별곡> 을 불렀습니다. 그 가사 내용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샬 롬 하베림(안녕 친구여)


     샬 롬 하베림(안녕 친구여)


     샬 롬        (안녕)


     샬 롬        (안녕)


     레힛 라오    (다시 만날 때까지)


     레힛 라오    (다시 만날 때까지)


     샬 롬        (안녕)


     샬 롬”      (안녕)


   두 시간 이상이나 걸렸던 수녀님들과의 감격적인 면회 시간이 끝나고 수녀원을 나와 집으로 오는 동안, 나의 심정은 정말이지 천국에 있다가 세상으로 쫓겨난 기분이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가르멜 수녀님들의 인상은 내 영혼 속에 깊이 각인되었고, 내 마음은 더욱 더 가르멜로 끌렸습니다. 그 무렵 언제 부터인가 나는 이런 화살기도를 바쳤는데, 그것은 내가 어디서나 성모상이나 성모 성화를 볼 때마다 바치는 습관이 붙었습니다. “가르멜의 성모여, 저를 위하여 빌으소서.”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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