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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 4.1,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9-04-02 조회수571 추천수3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9.4.1 사순 제5주간 수요일
                                          
다니3,14-20.91-92.95 요한8,31-42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여러분은 자유롭습니까?
 
자유로울 때 행복합니다.

과연 자유롭다 생각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요?
 
자유가 무엇인 지 국어사전에서 찾아보았습니다.
‘남에게 얽매이거나 구속 받거나 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는 일’ 이라 설명되어 있었습니다.
 
과연 이런 자유를 누리십니까?
 
사전의 내용대로 자기 마음대로 한다고
과연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본능적으로 자유를 찾는 인간입니다.
자유로워 비로소 사람입니다.

사람이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되었다는 것은
바로 자유를 추구하는 사람으로 창조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느님은 자유 자체이십니다.
 
하느님을 추구한다는 것은
바로 자유를 추구한다는 뜻입니다.

본능적으로 좁은 공간에 답답하여 넓은 공간을 찾는 것,
어둔 방안에서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창으로 향하는 눈길은
생명과 빛을, 자유를 찾는 인간임을 보여줍니다.
 
수도생활을 더 큰 내적 자유의 여정이라 정의하기도 합니다.
 
과연 살아갈수록 자유로워지는 삶인지 반성하게 됩니다.

주님은 오늘 복음에서 참 자유의 원리를 가르쳐 주십니다.
공간이 넓어서,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어서 자유가 아니라
진리를 깨달아 살 때 자유롭다 하십니다.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될 것이다.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참 자유에 이르는 길은 이 말씀 하나뿐입니다.
 
주님 말씀 안에 머무른다는 것은
바로 주님 안에 머무른다는 말씀입니다.
 
주님과 깊은 일치의 친교 상태를 말해줍니다.  
 
자유도 능력입니다.
다 똑같은 자유의 능력이 아니라
주님과의 친교 상태의 정도에 따라 누리는
자유의 능력입니다.

이렇게 늘 주님 말씀 안에 머물 때
참으로 주님의 제자가 되어 진리를 깨닫게 되고
깨달은 진리가 그를 자유롭게 합니다.
 
외적환경에 따른 자유이기보다는
진리를 깨달아 갈수록
내적변화와 치유에 따른 자유임을 알게 됩니다.
 
이래서 주님 말씀 안에 머물러 삶으로
진리를 깨닫고 자유의 능력을 신장시키고자
끊임없이 미사와 성무일도를 바치고
성독을 하는 우리 수도자들입니다.
 
이어 계속되는 다음 말씀도
자유의 본질을 명확히 밝혀 줍니다.

“죄를 짓는 자는 누구나 죄의 종이다.
  종은 언제까지나 집에 머무르지 못하지만,
  아들은 언제까지나 집에 머무른다.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는 정녕 자유롭게 될 것이다.”

죄의 종, 세상의 종으로 살 때
자유인의 삶 같지만 노예의 삶이요,
말씀의 종, 주님의 종으로 살 때
부자유의 삶 같지만 자유인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거짓 자유에 속아
세상의 종, 죄의 종 되어 살고 있는지요.
 
자유는 쟁취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주님의 선물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진리 자체이신 아드님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할 때
비로소 자유로운 삶이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의 종이, 말씀의 종이 되어 살 때 자유롭습니다.
 
세상 시련과 고난의 불가마 속에서도
몸과 마음 하나 다치지 않고 참 자유를 누립니다.
 
주님께서 불가마의 시련과 고난 중에 있는 그를
지켜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게 진정한 자유요 하느님의 은총입니다.
 
1독서에서 바빌론의 임금인 네부카드네자르가
불가마 속의 이스라엘 세 젊은이들을 통해
이 진리를 깊이 체험했습니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네 사람이 결박이 풀렸을 뿐만 아니라,
  다친 곳 하나 없이 불 속을 거닐고 있다.
  그리고 넷째 사람의 모습은 신의 아들 같구나.”
신의 아들의 모습을 한 넷째 사람은
바로 시련의 불가마 한 복판에 있는
젊은이들의 보호자가 되어 함께 하시는 주님을 상징합니다.
 
이어 하느님을 고백하는 네부카드네자르 임금의 모습이
아주 감동적이고 고무적입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느님은 찬미 받으소서.
  그분께서는 당신의 천사를 보내시어,
  자기들의 하느님을 신뢰하여 몸을 바치면서까지
  임금의 명령을 어기고,
  자기들의 하느님 말고는 다른 어떠한 신도
  섬기거나 절하지 않은 당신의 종들을 구해 내셨다.”

진정 하느님은 당신 말고는
어떤 우상도 섬기거나 절하지 않은
당신의 종들을 세상 시련의 불가마 속에서 구해주시고
자유롭게 하십니다.
 
주님은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을 통해
우리 모두 진리를 깨닫게 하시고
세상 시련과 고난의 불가마 속에서도
몸과 마음 하나 다치지 않고 자유롭게 살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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