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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요셉 수사님의 성소이야기] 나를 이끄신 하느님 6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9-04-03 조회수687 추천수11 반대(0) 신고
 

[요셉 수사님의 성소이야기] 나를 이끄신 하느님 6

                      

   그리고 내가 가르멜 수도원에 들어가려고 하는 것이 혹시 세상에서의 도피, 혹은 신자들의 의무인 사도직 활동에 대한 회피 수단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그 무렵 학교에서는 여름 방학을 기하여 소록도에 가서 몇 주 동안 환자들에게 봉사하며 교리를 가르칠 지원자를 모집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것을 알고 처음에는 두렵고 겁나는 마음에서 얼마동안 망설였지만, 용기를 내어 지원을 하였습니다. 마침내 우리의 봉사단은 다섯 명으로 구성 되었는데, 50 대의 수녀님을 단장으로 하여, 젊은 평신도 자매님 두 명과 나 외에 다른 젊은 평신도 형제님 한 분이었습니다.


   우리는 8월1일 고속 터미널에서 만나 출발하기로 약속했었지만, 후에 나의 예비군 훈련 관계로 나 혼자만 하루 늦게 출발하여 현지에서 합류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일 주일 간의 전방에서의 예비군 동원 훈련이 끝나 피로가 채 가시기 전에, 밤늦게 집으로 돌아온 바로 다음 날, 나는 고속버스로 여수까지 가서 거기서 시외버스로 고흥반도의 녹동 항구까지 갔는데, 저녁 늦게 도착하여 소록도 행 배편이 이미 끊겨, 거기서 난생 처음으로 여관방 신세를 지게 되었습니다.


   다음날 오전에 첫 번째로 출발하는 소록도행 여객선을 탔는데, 항해 시간은 반시간도 채 못 되는 잠깐 동안이었습니다.


   섬에 도착하자 곧바로 검문소 비슷한 곳을 통과해야 했는데, 앞으로도 이런 곳을 몇 번 더 거쳐야 했습니다. 소록도는 섬 전체가 <국립 나병원> 으로 크게 두 구역으로 나눠져서 일반인인  병원 직원들이 사는 지역과 환자들이 사는 지역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성당도 각 지역마다 하나씩 있었습니다.


   우리는 일반인 지역에 있는 성당의 사제관과 수녀원에 머물면서, 환자 지역에 들어가서 봉사하고 돌아오는 식이었습니다. 당시 소록도에는 약 1500 명 정도의 환자들이 살고 있었는데, 그곳은 하나의 작은 독립국과 같은 체제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거기에는 그들이 자율적으로 운영하는 우체국, 경찰서, 구치소 등의 역할을 하는 곳도 있었고, 소규모의 공장, 농장, 시장이나 상점들도 있었고, 종교 시설로는 천주교 성당이 섬 중앙에 하나가 있는데 반해, 장로파 개신교 교회는 10 여개 안팎  되는 마을마다 있었습니다.


   내가 맨 처음으로 환자들을 접한 것은 그날 저녁 어두울 무렵 성당 마당에서였는데, 그들 중 몇 명의 남자 교우들과 인사를 하며 악수를 하는데, 손에 닿는 촉감이 매우 건조하고 딱딱하다는 정도였습니다.


   다음 날 낮에 중환자들이 수용된 중앙 병원에서 그들의 참혹하게 일그러진 모습을 보고 받은 충격은 미리 단단히 각오를 하였지만, 내가 상상하였던 것 이상이었습니다.  손발이 다 떨어져 나가고 몸체만 있는 이, 두 눈이 다 빠져나간 이, 코나 입술이 떨어져 나간 이 등등, 한 마디로 말해서 ‘참혹’ 그 자체였습니다. 나는 그들의 흉한 모습을 보고, 하느님이 보시기에 죄로 물든 우리 인간들의 영혼 모습이 저와 같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였습니다.


   그 중환자 병동의 환우들은 조금이라도 처지가 좋아서 더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자기보다 못한 이들을 도와주면서 지내고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무척 감동했습니다. 병원이 아닌 환자들이 사는 마을에서는 거기서도 하나의 인간세계라, 각자의 능력과 처지에 따라 수준 차이가 많이 났습니다. 어떤 이들은 TV, 냉장고와 선풍기까지 갖추고 사회의 보통 사람들처럼 문화생활을 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어떤 이는 기본적으로 배급되는 주식과 부식으로 하루하루 목숨만 연명하는 이들도 많았습니다.


   그들 중에는 눈이 전혀 안 보이는 이가 혼자 살면서 마늘농사를 아주 잘 짓는다고 소문난 분도 있었고, 갈고리만 있는 손으로도 많은 연장을 다루며 생활에 큰 불편을 느끼지 않고 사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그들 모두가 처음에는 우리를 별로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지나가는 구경꾼 정도로 생각하며 우리의 접근을 달가워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나 자신도 처음 며칠 동안은 그들에게 접근하기가 힘들었습니다. 환자들의 마을에 다녀와서는 입맛도 없었고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들에게서 풍기는 특유의 냄새 때문에 줄곧 머리가 아팠습니다. 나는 잠시 용기를 잃을 뻔 했습니다.


   ‘내가 이렇게 하려고 여기에 왔나?’하고 생각하니 자신이 너무 한심스러워, 하느님께 용기를 달라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환자들의 지역 성당에서 미사들 드릴 때, 발가락이 떨어져 나가 몸의 중심을 못 잡아 뒤뚱거리는 걸음으로 영성체를 하기 위해 제단 쪽으로 가는 환자들을 보고, 나도 모르게 그들의 몸을 감싸 안고 부축하며 도와 준 뒤로 전에 없던 용기가 생겨 그들을 자연스럽게 대할 수 있었습니다.


   그 후로 내가 그들의 집을 방문했을 때, 서로 인사를 나눈 뒤 대화를 하는 중에 그들이 건네주는 음식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받아먹는 것을 보고서야 그들은 나에게 마음을 터놓기 시작했습니다. 그리하여 3주일 동안 계속 그들과 어울려 지내다 보니 이제 오히려 건강한 일반 사람들의 모습이 이상스럽게 보일 정도였습니다.


   비록 그들의 모습은 흉하고 보기 싫을지 몰라도, 그들의 영혼은 정말 순박하고 착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겉으로 보기에 멀쩡한 육신과 보기 좋은 얼굴을 한 이들 중에서, 그 영혼 상태가 죄로 일그러진 상태로 사는 사람이 세상에 많이 있다는 것, 그리고 우리가 세상에서 아무리 살기가 힘들다고 해도, 저들이 저런 상태에서도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리며 살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우리는 아무 것도 불평할 수 없고, 우리는 어떤 처지에서도  그저 감지 득지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거기서 3 주일간의 봉사활동이 끝나고 우리가 그 섬을 떠나올 때, 거기 남겨진 그들도, 떠나오는 우리도 모두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서로 정이 들었고, 하느님 안에서  진정한 형제적 사랑을 나눌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게는 인생의 진실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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