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4월 4일 야곱의 우물- 요한 11, 45-56 묵상/ 꼬리 자르기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09-04-04 조회수561 추천수3 반대(0) 신고

 

꼬리 자르기

그때에 마리아에게 갔다가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본 유다인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몇 사람은 바리사이들에게 가서,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알렸다. 그리하여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이 의회를 소집하고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저렇게 많은 표징을 일으키고 있으니,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겠소? 저자를 그대로 내버려 두면 모두 그를 믿을 것이고, 또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의 이 거룩한 곳과 우리 민족을 짓밟고 말 것이오.” 그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그해의 대사제인 카야파가 말하였다. “여러분은 아무것도 모르는군요. 온 민족이 멸망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여러분에게 더 낫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헤아리지 못하고 있소.” 이 말은 카야파가 자기 생각으로 한 것이 아니라, 그해의 대사제로서 예언한 셈이다.
 
곧 예수님께서 민족을 위하여 돌아가시리라는 것과, 이 민족만이 아니라 흩어져 있는 하느님의 자녀들을 하나로 모으시려고 돌아가시리라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그날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의하였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더 이상 유다인들 가운데로 드러나게 다니지 않으시고, 그곳을 떠나 광야에 가까운 고장의 에프라임이라는 고을에 가시어, 제자들과 함께 그곳에 머무르셨다.
 
유다인들의 파스카 축제가 가까워지자, 많은 사람이 자신을 정결하게 하려고 파스카 축제 전에 시골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 그들은 예수님을 찾다가 성전 안에 모여 서서 서로 말하였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그가 축제를 지내러 오지 않겠소?”
(요한 11,45-­56)
 
 
 
 
◆도마뱀은 위기에 처하면 꼬리를 자른다고 합니다. 꼬리를 내줌으로써 위기를 극복한다는 말이지요. 요즘 뉴스를 보면 자주 나오는 이야기 중 하나가 ‘꼬리 자르기’입니다. 여론의 폭풍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꼬리를 잘라냄으로써 그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요즘에만 보는 양상이 아닙니다. 역사상 모든 독재자에게 위기란 억압을 정당화하는 데 더없이 좋은 구실이었습니다. 말이 좋아서 극복이지 그 본질을 보면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이며 사건을 덮으려는 또 하나의 폭력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카야파의 말이 떠오릅니다. “온 민족이 멸망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더 낫다.” 카야파 편에서 보자면, 예수님을 믿는 이들의 세력이 커지는 것을 잠재우는 좋은 수단이 되고, 자신들의 세력을 결집하는 데 좋은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본 것입니다. 관점을 달리해서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인간 사랑의 절정인 십자가 죽음은 ‘꼬리 자르기’란 이름으로 치부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사건입니다. 그 십자가는 2000년 전 끝난 사건이 아니라 해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현재의 사건이며, 우리에게 “너희도 그렇게 살아라.”라고 하는 모범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라는 말씀을 실천하는 삶입니다.

내일부터 예수님 수난의 절정인 성주간으로 들어갑니다. 당신 것을 철저히 내려 놓으셨던 예수님의 십자가는 권력자들 편의 ‘꼬리 자르기’가 아니라 인간 사랑의 결정체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모범이 되어, 너희도 그렇게 살라는 초대입니다.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 15,13)는 삶을 철저하게 보여주신 예수님을 보며 우리 또한 그분의 삶을 닮아갈 수 있었으면 합니다.
진병섭 신부(광주대교구 해외선교 준비)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